8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

등록 2026.10.14 6.3천자 조회 1 좋아요 0 댓글 0 15세 이상 이용가
Pride

8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


"한 가지만 묻자."
"뭐, 뭔데?"
"너 이제 막 나가기로 한거냐?"
"응?"
그러면서 수민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 꿈뻑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저...형...무슨 일인데..."
그 얼굴을 한참동안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일순 번쩍 하고 스치는게 있다.

"휴- 그러면 그렇지. 쳇."
나의 바보같은 성급함에 화가났다.
그 용의주도한 녀석이....나를 엿먹인게 분명한데,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미친 듯이 달려왔으니......

이가갈리는군.

"형.."
다시 조심스럽게 부르는 음성.
돌아보니 여전히 근심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순진한 얼굴을 보자니 불끈하고 솟는게...

"너, 내가 사진영 그 자식과 붙어 다니지 말라고 했지. 기억 못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버렸다.
"아......하지만"
"그 놈은 얼마든지 안면몰수하고 널 뒤에서 밀어 넘어뜨릴 녀석이야. 너같이 순진한 놈은 죽었다 깨도 그런 놈이 속으로 뭘 생각하는지 알지도 못할 거고."
다시 숨을 들이키고 두 손으로 그 녀석의 어깨를 꼭 붙들었다.

"절대 너에게 해를 끼칠 녀석이야. 그러니까 떨어져."
"형, 진영이가 좀ㅡ 성격이 나빠서 그런거지-"
"그놈이 작정하면 넌 절.대. 못 빠져 나와."
내가 박력있게 노려보자 일순 숨을 삼키고 굳어버렸다.

"네가 그런 놈한테 휘둘리는 거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그 놈이 어떤 눈으로 널 보고 있는 줄이나 알아?"
다 말해 버릴까보다. 열받는데...

".........휘둘리지 않아. 그리고 그 문제라면.....알고 있어"

뭐?
어깨를 쥐고 있던 손에서 서서히 힘이 풀려갔다.

"알.....고..있다고?"
"응."
............
황당함에 일순 할말을 잃었다.



"그런데도......붙어 지내는 거야?
한참만에, 정신을 수습하고 가까스로 물은 말이다.
"으응"
"너 언제부터 그렇게 너그럽게 됐니? 그런 인종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네 형의 일만해도 넌 그렇게 충격받았었잖아."
".............."
"말 좀 해봐. 너 싫었던거 아니었어? 그런거 혐오했잖아."
".............."
"한수민."
"형.....난 말이지, 이런 말이 제일 싫어. 전부가 아니면 전무다......"
"............."
"사람들은 흔히 쉽게 그렇게들 말해. 전부가 아니면 소용없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럼?"
"내가 진영이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진영이를 철저히 피하거나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 없어. 그게 상대에게 잔인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버림받는게 더 잔인해."
"그래서?"
"난 진영이가 원하는 형태의 사랑은 줄 수 없어. 하지만.........내가 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애정이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녀석은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 필요하고, 난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줄 거야. 그 녀석에게는 내가 필요해"

"하-"
네가 줄 수 있는 것을 주겠다고?
넌.....순진한거니, 아니면 멍청한거니......

"넌 아직도 인간을 너무 몰라."
"형, 하지만 진영이는"
"그 자식은 항상 널 따먹을 궁리만 하고 있어. 네가 생각하는 대로 네가 주는 그런 순수한 애정만 받고 감사하며 만족할 녀석이라고 생각해?"
"..............."
"네가 주지 않는다고 그녀석이 널 안가질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웃기지마! 그놈이 어떤 놈인데. 보면 모르겠냐? 네가 안주면 억지로라도, 강제로라도 가질 수 있는 녀석이야!"
"왜이래 형. 형이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어쨌든 이건 내 일이야. 형이 그렇게까지 걱정 안해도 된다고. 그렇게 진영이가 싫으면 신경쓰지마."

뭐? 네 일?


짝-

손이 먼저 나갔다.

정말로 열받게 만드는 녀석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렇게까지 사람을 열받게 하다니...
바보 같은 놈.



그 이후로 수민이는 어떻게든 화해해보려고 내 주의를 얼쩡거렸다.
나도 선뜻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그럴 때면 꼭 그 자식이 들러 붙어 있다.
바보 같은 수민이는 여전히 그 녀석을 떨쳐 버릴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초조하다...

수민이는 절대 그 녀석이 원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의외로 지나치게 도덕적인 녀석..............아무리 설사 자기가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끝까지 억누르고 괴로워하면 괴로워했지 사진영 그 녀석의 말대로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절대 노말인데....
수민일 먹었다고?
하-
그 자식이 수민이랑 자고 싶다면 정말 강간이 아닌 한, 합의해 의한 섹스는 절대 불가능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수민이의 성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불안한 거다.
도무지 잔 머리를 굴릴 줄도 모르고, 빠르게 회전하는 두뇌를 가진 것도 아니다.
더구나 저 놈은 수민이의 약한 곳을 공략하고 있다. 철저히....
저대로 두면 언젠가는......

미치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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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뭐하냐?"
"우-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거야? 게다가 핸드폰은 왜 안 받고!"
"그러니까 네가 이 시간에 나한테 급하게 연락할 일이 뭐가 있는데? 지금쯤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잔소리 말고 빨리 열기나 해. 추워 죽겠다."

가수라는 녀석이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저렇게 옷을 얇게 입고 온거야?
은성이는 들어오자마자,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너, 잠 못 잤냐?"
"아니, 추워서"
"온도 더 올릴까?"
"응"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꼬박꼬박 대꾸하는 녀석이 심상치 않았다.
방 온도를 대충 올리고 이불을 확 걷어냈다.

"왜 그래?"
"................"
"야-"
"응."
"설마......그 놈이 너 쫓아 낸거야?"
"아니."
참...아쉽게됐군
그랬다면 내가 그놈 멱을 따줄텐데-

"그런데 왜 이러고 있어?"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어서."
"뭘?"
"..............."
"쳇, 말 안 하면 쫓아낸다?"

그제서야 은성이는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넌....누구 사랑해본 적 있어?"
에.....
"아니, 사랑받아 본적은 많아도 누굴 그렇게 사랑해본 적은 별로 없는데?"
"뻔뻔한 놈"
"이건 뻔뻔한게 아니라 솔직한 거지."
".........핏"
내가 한 말이 유머라고 생각했는지 은성이는 가볍게 웃어 버렸다.


"나 말이지, 지금 초조해"
"....왜?"
"사실, 지금까지......시현씨를 사랑한다는 확신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어. 어쩌면 그냥 그 사람이 나를 너무 좋아해주니까, 그 사람 곁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제, 새벽에 깨어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는데 갑자기 두려워졌어."
은성이는 연신 손톱을 깨물어댔다.
저건....아주 예전에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되면 하던 행동이다..

"만일 그가 날 떠나면 어쩌지....하는 생각에....감당할 수 없이 무서워졌어."
"너...악몽이라도 꿨던 거냐? 그 질기디 질긴 인간이 왜 너를 떠나? 네가 죽었다고 해도 포기 못하던 놈인데."
"사람일은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그리고?"
"그 사람 주변에는 너무 많아. 나를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이 자식 지금 배부른 고민하고 있는 거 아냐?

"그 사람이 속한 곳이 얼마나 화려한 곳인지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했어. 아마 그가 손만 뻗으면 얼마든지-"
"그래서? 그가 정말 그렇게 하기라도해?"
"아니. 아직은-"
"그럼 뭘 고민해?"
".............미안, 하려던 말이 이게 아니라......."

그제서야 물어뜯던 입을 멈추고, 손을 내렸다.

"이게 아니라........우리 부모님........내가 평생 이렇게 살수는 없잖아."
"너......."
"............."
"너, 설마"

평소같으면 좋아서 그 변태녀석을 실컫 비웃었을 테지만......

"정작 떠날 생각을 하는 건 너구나."
"............"
"그 사람 주변 운운했던건, 네가 그를 떠나면 그도 쉽게 널 잊을까봐 두려워진 거야?"

신은성, 너 비겁해.

"아니. 모르겠어. 이게 아닌데-, 그냥 혼란스러워. 내가 누군가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부모님 일도, 왜 이렇게 단순하지 않은지 모르겠어."
"............"
"아니, 내가 하려는 말은...........나 정말 시현씨를 사랑하나봐. 그런데 그 사실이 인정하기가 힘들어. 예전에는 내가 감정적으로 우위에 서 있다는 만족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나 용서하기 힘들던 그를 그래도 수용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나도 그 사람처럼 그 사람과 관계된 일들에 뭔가 초조해지기 시작했어. 그래, 그가 혹시나 나를 버릴까봐 두렵기도 하고, 나말고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질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게 돼. 이제, 섹스도 거부하지 못하겠어. 힘들어도, 혹시나 그가 만족하지 못할까봐 그냥 다 받아주게 되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이 녀석은 지금 자신의 자존심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자존심 상하겠지....
뭐...사랑에 빠지면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엄청 비굴해지니까...
그렇게나 독하고 그렇게나 자기 자신에 대해 긍지로 넘쳐흐르던 이 녀석도, 결국 그 놈한테 넘어간거 구나...

더 허탈하다.....

그래도 이 녀석은 무지 똑똑하고, 고집세고, 강단있고 한마디로 내가 존경할 만큼 강한 녀석이었다. 상대가 상대여서 그렇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초조해 하는 모습이라니......

순간,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수민인......젠장, 이 녀석도 이런데 하물며 그녀석이 다를 리가 없다.
지금은 저렇게 안넘어갈 것처럼 하지만 강제로 당하고 넘어가서 끝내 나를 찾아와 그개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 난 어쩌지? 응?



"너.....말야.....나 때리지 않을 거지? 화내지 않을 거지?"
밤을 새워 서로 이야기하다 수민이 이야기가 나왔다.
사진영 그자식도....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일
그러자 느닷없이 이렇게 묻는 거다.

"뭔데?"
"너....혹시........혹시...."
"혹시 뭐?"
"너도 남자가 좋은 거야?"
딱-

"우씨- 안 때린다며?"
"내가 언제 안 때린다고 했어? 그리고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화가 나서 노려보니, 은성이는 은성이 대로 화를 냈다.

"네가 말하는 폼이 딱 그거잖아!"
"무슨 소리야?"
"네가 지금 완전히 질투에 빠져서 어쩔줄 모르는 인간의 전형이다. 너 도대체 수민이한테 왜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는 건데? 그리고 수민이 말대로 그건 수민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네가 이렇게까지 열내는 것도 비정상적이라고"

"너.....수민이 좋아하는게 분명하다고"



은성이는 이내 잠들었지만 난 잠들 수 없었다.
정말, 은성이의 말이 전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충격받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난 충격받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리고 새벽이 될 무렵 옆에서 자고 있는 은성이를 내려다보며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그랬어....
그랬던 거야.....

왜 그렇게 단순한 사실이 이토록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삐리리리-'
벨소리에 움찔거리며 몸을 일으켰지만 은성이는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은성이, 여기 있습니까?"

항상 보았던 깔끔하고 상쾌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한마디로 사신같은 분위기로 서 있었다. 그 변.태.가.
"네, 자고 있어요. 깨울까요?"
순간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는걸 놓칠 수가 없었다.
야...사람 잡겠다.
날 노려봐서 어쩌겠다고?

"아뇨. 놔두세요. 제가 그냥 데려가겠습니다."
그는 성큼성큼 들어와 이내 침실을 발견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장 안아들고 나와서 내게 눈짓으로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그 와중에 은성이는 한번도 깨지 않았다. 한번도....

왠지 조금쯤 은성이가 걱정되었다.
그가 항상 은성이 앞에서는 비굴하게 굴었지만, 난 안다.
저놈이 무서운 놈이란 걸.


내가 수민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해서, 우리가 달라졌느냐 하면.....그건 전혀 아니다.
내가 고백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지금 수민이는 사진영만도 감당하기 벅찰 텐데. 게다가 운이 좋아서 그 녀석을 떼어 논다해도 나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난 사진영 그 자식처럼 사악하거나, 인간성이 야비하고 못되거나 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차라리 수민이가 여자였다면 내가 이렇게 비굴하게 사진영 따위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냥 내 식대로 했다면 넘어올 여지는 충분하니까.
하지만 수민이다.
정공법으로 한다고 해서 넘어올 녀석은 절대 아니다...
아주 정중하게 거절할걸?
내가 미안해 질정도로 말이야....


나도....그럼 비겁한 수를 써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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