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뒤틀린 애정의 거래
Pride
9화. 뒤틀린 애정의 거래
"설마.......마음에 들어?"
힐끗 택현이를 쳐다보았지만 거기에 대구를 한 건 아니었다.
마음에 들고 안들고의 차원이 아니거든.
"느낌이 이상해."
훅-
녀석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고 화면을 주시한다.
"데려고 올까?"
즉각적인 반응.
이 녀석이 좋은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친우니 뭐니 이런 차원이 아니다. 즉각적인 반응과 간결한 대응을 좋아하는 나에게 여지없이 딱이었다. 게다가 말도 많지 않다. 난 주저리 주저리 말 많은 인간은 질색이거든. 아무튼 내가 지금까지 택현이만을 옆에 두는 것은 바로 편안함, 편리함 때문이다.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다. 택현이도 나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녀석은 만족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상하관계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떠날 생각조차 않는다. 자기네 꼰대가 계속 2인자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그다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천성이 순종적인 녀석은 아닌데....
"너니까."
그 간결한 대답에 나도 만족했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보다, 저 녀석이 다음에 찍을게 뭔지 알아봐. 그리고 관련자들도 수배해놓고."
나의 변덕에 택현이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 변덕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TV속에서 본 인간 때문에 내가........이 사진영이.......뭔가 엉뚱한 짓이 하고 싶어진 거다. 물론 내가 연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 하지만 그저 우습게 여겨져 턱아래로 쳐다보던 세계.....
그녀석이 불을 당긴 거다.
"그 동안 잘 있으셨어? 우리 탤런트씨."
저게......
"내가 얼마나 놀랐는줄 아냐? 푸하하하하, 천하의 사진영이 광대짓이라니- 내가 이렇게 놀랐는데 우리집 영감은 얼마나 놀랐겠냐? 응? 거품물고 쓰러졌단다. 낄낄낄-"
하나...
"덕분에 나만 주가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둘...
"그래도 사전에 그런 티라도 냈어야지. 고혈압인 양반 그러다 쇼크받아서 병원신세지면 어쩔려고 그랬어?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
셋
"그런데 제법이던데? 언제 그렇게 연기를 한거야?"
거기까지다. 사진성.
"아니지, 이건 타고난거야......그랬었어...그런데 이상한걸? 우리 사씨 집안에도 그런 재능이 있었단 말이야. 아니지...... 역시 정가 피가 그런가? 피는 못속이는 건가?"
손에 잡히는 걸 그대로 미간에 가져가 댔다. 정확히 0.1미리의 오차로
대충 보니 만년필?
"이대로 박아줄까? 아니면 입다물고 얌전히 처박혀 있을래?"
"너- 이 자식"
그대로 박았다. 살짝.
피가 흘러나오네. 철철 흘러넘치지 못한게 유감이다. 하긴 그 정도로 찔러 넣으면 급소라서 죽었겠지.
역시 피를 보자 얌전해진다.
금새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소심한 새끼. 그런 콩알만한 심장가지고 어떻게 조직을 맡겠다는 거야? 네 주제나 알고 넘볼걸 넘봐라. 응?"
"..............."
"그 단순무식한 머리가 그 높은 예술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겠어. 어쩔 수 없지. 피가 그런걸. 이가 피는 원래 그렇게 무식하잖아."
새끼, 역시 한마디도 못하는 군. 단단히 쫄았냐? 그러게 왜 기어올라.
"게다가 그런 돌대가리로 조직 맡았다간, 넌 하루아침에 말아먹을 놈이야. 아버지가 쥐약먹었냐? 그런 너한테 후계자자리를 넘기게? 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원들도 눈도 있고 귀가 있단다. 응?"
물론 지금은 이렇게 쫄아 있지만, 저 단순무식한 놈은 금방 잊어버리고, 그 입을 주체못하고 개지랄을 떨거다. 하루가 멀다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패놔도, 반죽음을 시켜서 철저히 기게 만들어도 어느 순간 그 머리 나쁜 것 때문에 또다시 같은 패턴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보통은 조금만 인상을 써도 금새 쫄아서 설설 기는데 이렇게 뭔가 건수를 잡으면 뇌를 어디다가 빼놓고 오는지 저렇게 발광을 한다.
"아, 아버지가, 화 많이 나셨어. 정말-"
이게 그런데, 왜 자꾸
"입 쳐 닫아"
"................"
"너 말야 아직도 모르나본데, 내가 누구 무서워하는거 봤어?"
도리도리-
"아버지라고 예외겠냐? 응? 화가 나서 어쩌겠데? 날 손봐주겠다는 거야?"
도리도리-
"그럼 가서 전해. 내가 발광하는 꼴 보고싶지 않으면 얌전히 내가 나오는 TV나 열심히 보시라고."
끄덕끄덕-
단순한 새끼.
이런걸 형이라고.....
"너도 내가 이런 일 하는게 싫으냐?"
"아니."
역시 간결.
"앞으로 저새끼 집에 들여놓지마."
"응"
"지금, 나간다."
택현이는 차를 대기시키고 따라 나왔다.
"넌 뭘 해도 어울려. 어디서든 넌 최고야."
택현이가 한 말중 유난히 길었지 싶다.
이 녀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깨닫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면 넌 내가 반할만한 인간인게 분명하겠지.
하지만 그걸 알고 네가 무너져 내린다면 난 널 버릴 거야.
네가 너에게 끌린게 너의 그런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넌 더 이상 가치가 없으니까.
물론......네가 날 받아들이게 만들려면 같이 더러운 편이 낳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난 너를 내가 있는 이곳까지 잡아끌어 내릴거야.
------------------------------------------
"나? 당연하지. 난 프로야. 그리고 내 연기는 일류지."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
난 어딜 가도 나랑 비슷한 인간을 만나면 역시나 기분이 뒤틀린다.
이런 놈은 확실하게 눌러버려야 직성이 풀리는데, 만만치 않은 놈이다.
예상이외의 강적.
이놈도 나름대로 머리 꽤나 쓸 줄 안다. 눈뜬 채로 수민이를 미국으로 끌고 가는 걸 몰랐다.
이걸 그냥 없애버릴까....
그렇지만 역시, 자존심문제다......능력으로 승부하는게 역시 훨씬 기분 좋겠지...
"난...너만 원해. 너만 있어주면 된다고."
속으로 이 말도 안돼는 대사에 아찔해졌지만, 동시에 감탄했다.
진영아....역시 넌 타고난 연기자야.
막 이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 한수민이라는 인간을 파악하고 당황스러웠다.
이내가....이 사진영이 당황이라니.....
그러니까, 순진한거 같으면서 바보는 아니고 쉬워보이면서 의외로 고집이 있다.
더구나, 스스로 왜 그렇게 착해지고 싶어하는 건지.....혹시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 같은게 아닌가 한다. 아무튼 백치도 아니면서 원론적인 것을 무지 고집하는 녀석이다.
그냥 대충 훑어보고 별볼일 없으면 관심 끊고
그래도 조금 뭔가가 있으면 적당히 구슬려서 조금 놀아 볼까...
라는 생각이었는데.....웬걸 우습게도 이 녀석 상대로 별의별 연기연습을 다해봤을 지경이다.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 때문에 더더욱 어울리지도 않은 열혈 연기자인척.....연기까지하고..
그리고 끝내는 이런 말도 안되는 대사까지...
사진영 인생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을 거다.
사진성...그놈이 봤다면 그대로 넘어갔을 뿐 아니라, 나와 자기를 아는 모든 인간을 붙들고 그 입이 붙어 있는 한 쉬지 않고 나불거렸을 거다. 그뿐인가 평생을 두고두고 놀려먹었겠지. 아마 택현이 조차.........할말을 잃고 하늘만 쳐다봤을지도..
한참을 머리 속에서 갖은 상상을 하고 있을 때, 품에 따뜻한 느낌이 들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수민이가 나를 끌어안았다.
"고맙다 진영아. 날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어."
어....
"내가 나에 대해 이렇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니 다행이야."
뭐, 뭐가 이렇게 쉬워?
내심 놀라면서도 같이 끌어안고 한번 등을 쓸어보았다.
보나마나 처음일텐데, 쳇....이 나이에 처녀라니.
이거 엄청 신경써야겠네.
그래도 이 녀석도 꽤 건장한 체격이니 해볼 때 까지 해봐도 되겠지?
"하지만 좀더 달리 생각해 줄 수 없니?"
...........
"너에게 내가 그런 유일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너도 알고 보면 이렇게 좋은 녀석이고 정도 많은 녀석인데, 왜 그 사랑을 내가 독차지 해야해?"
...........
"난....네가 나 말고 정말 더 많은 사람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어."
너......지금 날 놀리냐....
"한수민....내 말-"
"네가 나한테 어떤 말을 하는 건지는 알아. 그 말에 대답을 먼저 하자면.....난 네가 원하는 종류의 애정 나에게는 없어. 하지만 난 다른 것을 줄 수 있어. 그리고 너 또한 나에게 다른 것을 줄 수 있으리라 믿어."
뭐라고 하는 거야..
한마디로, 싫다..이 뜻이잖아? 그걸 뭘 그렇게 복잡하게 말하는 거야? 응? 사람 헷갈리게-
게다가 저 교과서적인 말하며.....정말 힘빠진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네 말은 내 감정은 못 받아줘도, 나와의 지금까지의 관계는 끝내지 않겠다. 이 뜻이지?"
"응"
저 반짝거리는 눈 좀 봐....하....
너 말이다.....그냥 순진한거니, 아니면 정말 바보였던 거니?
하긴, 그냥 바보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 쥐고 흔들지는 못하지.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대신 나랑 약속해.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그래. 약속해"
아직 때가 이르구나...
분위기 잡아놓고ㅡ 더구나 이렇게 외딴곳에서 난 밤새 수민이 손만 붙들고 자야했다.
기가차서-
물론 그 순간에 다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말이야...........아무리 나라도.......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뭐, 나중에 생각해보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 임에 분명하지만, 그때는 정말 무슨 수호천사라도 있어서 이 녀석을 지켜주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전혀...그런 생각이 안들었으니.....
물론 더 나중에 깨닫고 결론을 내리기는..........내가 정말로 한수민...이란 인간을 단순한 섹슈얼한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좋아한 것이 아닐까....였다. 아니 정말 그랬다.
그래서........더 순수하게 욕심이 났다.
한수민이라는 인간이.
그러면서 동시에, 짖궂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이 교과서처럼 살고 싶어하는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에게 세상의 혹독함을 알려주고 싶다고나 할까?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인간이 얼마나 비열하고, 추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보는 것만큼 세상이 그렇게 인정넘치고 따뜻하고 다정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웃어 보이며 친절을 베푸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욕구 또한 더 강렬해져갔다.
정말 말도 못하게 추악하고 구역질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게 되면 이 녀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깨닫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면 넌 내가 반할만한 인간인게 분명하겠지.
하지만 그걸 알고 네가 무너져 내린다면 난 널 버릴 거야.
네가 너에게 끌린게 너의 그런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넌 더 이상 가치가 없으니까.
물론......네가 날 받아들이게 만들려면 같이 더러운 편이 낳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난 너를 내가 있는 이곳까지 잡아끌어 내릴거야.
그러던 찰나.....새롭게 발견한게 있다면........이승현, 그가 수민이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달라져있었다.
확실히.
내가 엿먹인 사건 이후부터 분명히...
그녀서은 그 동안 아닌척 하면서 수민이를 철저히 자기것처럼 길들여왔다. 그래놓고도 오히려 나에게서 수민이를 지키겠다고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넌....착각하고 있어.
너라는 인간 나와는 동류라고.
수도 없이 그 인간을 보며 속으로 비웃어 주었다.
물론 얼마든지 비웃으며 말해줄 수 있었지만 난 그런 친절따위 베풀 의향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이제 스스로 자각을 했는지 명백해 욕망의 눈으로 수민이를 보고 있다. 소유욕이 넘쳐흐르는...
수민이가 더렵혀지지 않는다고?
넌 이미 더럽히고 있잖아. 그 눈으로...
나와 그가 경쟁한다면 수민이는 어떤 쪽으로 기울까?
이승현?
아니면 우리 둘 다 패배?
두 가지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절대 없을 거다.
내가 이기는 경우는.....
나를 동정하는 녀석이 순수하게 자신의 도덕적 고집을 포기하고 마음을 허락할리 없다. 어디까지나 이 녀석은 가진게 많아서 나를 동정하는 수준 이상은 아니다. 받은 정이 많고 그래서 가진 사랑이 많아서 그 중에 조금 남아도는 것으로 자선을 베푸는.....
그 이상이 아니니 자신을 포기하는 희생따위 치룰 이유가 없겠지....
그러니....
이 경우 내가 택할 수 있는 패는 후자의 경우는 아니다. 우리 둘 다 패하는 경우는 나도 얻을 것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승현이라는 패에 편승해서 얻어 보는게 유리하지 않을까?
그가 정말 승낙해 줄지는 의문이지만....
9화. 뒤틀린 애정의 거래
"설마.......마음에 들어?"
힐끗 택현이를 쳐다보았지만 거기에 대구를 한 건 아니었다.
마음에 들고 안들고의 차원이 아니거든.
"느낌이 이상해."
훅-
녀석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고 화면을 주시한다.
"데려고 올까?"
즉각적인 반응.
이 녀석이 좋은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친우니 뭐니 이런 차원이 아니다. 즉각적인 반응과 간결한 대응을 좋아하는 나에게 여지없이 딱이었다. 게다가 말도 많지 않다. 난 주저리 주저리 말 많은 인간은 질색이거든. 아무튼 내가 지금까지 택현이만을 옆에 두는 것은 바로 편안함, 편리함 때문이다.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다. 택현이도 나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녀석은 만족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상하관계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떠날 생각조차 않는다. 자기네 꼰대가 계속 2인자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그다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천성이 순종적인 녀석은 아닌데....
"너니까."
그 간결한 대답에 나도 만족했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보다, 저 녀석이 다음에 찍을게 뭔지 알아봐. 그리고 관련자들도 수배해놓고."
나의 변덕에 택현이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 변덕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TV속에서 본 인간 때문에 내가........이 사진영이.......뭔가 엉뚱한 짓이 하고 싶어진 거다. 물론 내가 연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 하지만 그저 우습게 여겨져 턱아래로 쳐다보던 세계.....
그녀석이 불을 당긴 거다.
"그 동안 잘 있으셨어? 우리 탤런트씨."
저게......
"내가 얼마나 놀랐는줄 아냐? 푸하하하하, 천하의 사진영이 광대짓이라니- 내가 이렇게 놀랐는데 우리집 영감은 얼마나 놀랐겠냐? 응? 거품물고 쓰러졌단다. 낄낄낄-"
하나...
"덕분에 나만 주가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둘...
"그래도 사전에 그런 티라도 냈어야지. 고혈압인 양반 그러다 쇼크받아서 병원신세지면 어쩔려고 그랬어?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
셋
"그런데 제법이던데? 언제 그렇게 연기를 한거야?"
거기까지다. 사진성.
"아니지, 이건 타고난거야......그랬었어...그런데 이상한걸? 우리 사씨 집안에도 그런 재능이 있었단 말이야. 아니지...... 역시 정가 피가 그런가? 피는 못속이는 건가?"
손에 잡히는 걸 그대로 미간에 가져가 댔다. 정확히 0.1미리의 오차로
대충 보니 만년필?
"이대로 박아줄까? 아니면 입다물고 얌전히 처박혀 있을래?"
"너- 이 자식"
그대로 박았다. 살짝.
피가 흘러나오네. 철철 흘러넘치지 못한게 유감이다. 하긴 그 정도로 찔러 넣으면 급소라서 죽었겠지.
역시 피를 보자 얌전해진다.
금새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소심한 새끼. 그런 콩알만한 심장가지고 어떻게 조직을 맡겠다는 거야? 네 주제나 알고 넘볼걸 넘봐라. 응?"
"..............."
"그 단순무식한 머리가 그 높은 예술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겠어. 어쩔 수 없지. 피가 그런걸. 이가 피는 원래 그렇게 무식하잖아."
새끼, 역시 한마디도 못하는 군. 단단히 쫄았냐? 그러게 왜 기어올라.
"게다가 그런 돌대가리로 조직 맡았다간, 넌 하루아침에 말아먹을 놈이야. 아버지가 쥐약먹었냐? 그런 너한테 후계자자리를 넘기게? 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원들도 눈도 있고 귀가 있단다. 응?"
물론 지금은 이렇게 쫄아 있지만, 저 단순무식한 놈은 금방 잊어버리고, 그 입을 주체못하고 개지랄을 떨거다. 하루가 멀다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패놔도, 반죽음을 시켜서 철저히 기게 만들어도 어느 순간 그 머리 나쁜 것 때문에 또다시 같은 패턴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보통은 조금만 인상을 써도 금새 쫄아서 설설 기는데 이렇게 뭔가 건수를 잡으면 뇌를 어디다가 빼놓고 오는지 저렇게 발광을 한다.
"아, 아버지가, 화 많이 나셨어. 정말-"
이게 그런데, 왜 자꾸
"입 쳐 닫아"
"................"
"너 말야 아직도 모르나본데, 내가 누구 무서워하는거 봤어?"
도리도리-
"아버지라고 예외겠냐? 응? 화가 나서 어쩌겠데? 날 손봐주겠다는 거야?"
도리도리-
"그럼 가서 전해. 내가 발광하는 꼴 보고싶지 않으면 얌전히 내가 나오는 TV나 열심히 보시라고."
끄덕끄덕-
단순한 새끼.
이런걸 형이라고.....
"너도 내가 이런 일 하는게 싫으냐?"
"아니."
역시 간결.
"앞으로 저새끼 집에 들여놓지마."
"응"
"지금, 나간다."
택현이는 차를 대기시키고 따라 나왔다.
"넌 뭘 해도 어울려. 어디서든 넌 최고야."
택현이가 한 말중 유난히 길었지 싶다.
이 녀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깨닫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면 넌 내가 반할만한 인간인게 분명하겠지.
하지만 그걸 알고 네가 무너져 내린다면 난 널 버릴 거야.
네가 너에게 끌린게 너의 그런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넌 더 이상 가치가 없으니까.
물론......네가 날 받아들이게 만들려면 같이 더러운 편이 낳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난 너를 내가 있는 이곳까지 잡아끌어 내릴거야.
------------------------------------------
"나? 당연하지. 난 프로야. 그리고 내 연기는 일류지."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
난 어딜 가도 나랑 비슷한 인간을 만나면 역시나 기분이 뒤틀린다.
이런 놈은 확실하게 눌러버려야 직성이 풀리는데, 만만치 않은 놈이다.
예상이외의 강적.
이놈도 나름대로 머리 꽤나 쓸 줄 안다. 눈뜬 채로 수민이를 미국으로 끌고 가는 걸 몰랐다.
이걸 그냥 없애버릴까....
그렇지만 역시, 자존심문제다......능력으로 승부하는게 역시 훨씬 기분 좋겠지...
"난...너만 원해. 너만 있어주면 된다고."
속으로 이 말도 안돼는 대사에 아찔해졌지만, 동시에 감탄했다.
진영아....역시 넌 타고난 연기자야.
막 이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 한수민이라는 인간을 파악하고 당황스러웠다.
이내가....이 사진영이 당황이라니.....
그러니까, 순진한거 같으면서 바보는 아니고 쉬워보이면서 의외로 고집이 있다.
더구나, 스스로 왜 그렇게 착해지고 싶어하는 건지.....혹시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 같은게 아닌가 한다. 아무튼 백치도 아니면서 원론적인 것을 무지 고집하는 녀석이다.
그냥 대충 훑어보고 별볼일 없으면 관심 끊고
그래도 조금 뭔가가 있으면 적당히 구슬려서 조금 놀아 볼까...
라는 생각이었는데.....웬걸 우습게도 이 녀석 상대로 별의별 연기연습을 다해봤을 지경이다.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 때문에 더더욱 어울리지도 않은 열혈 연기자인척.....연기까지하고..
그리고 끝내는 이런 말도 안되는 대사까지...
사진영 인생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을 거다.
사진성...그놈이 봤다면 그대로 넘어갔을 뿐 아니라, 나와 자기를 아는 모든 인간을 붙들고 그 입이 붙어 있는 한 쉬지 않고 나불거렸을 거다. 그뿐인가 평생을 두고두고 놀려먹었겠지. 아마 택현이 조차.........할말을 잃고 하늘만 쳐다봤을지도..
한참을 머리 속에서 갖은 상상을 하고 있을 때, 품에 따뜻한 느낌이 들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수민이가 나를 끌어안았다.
"고맙다 진영아. 날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어."
어....
"내가 나에 대해 이렇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니 다행이야."
뭐, 뭐가 이렇게 쉬워?
내심 놀라면서도 같이 끌어안고 한번 등을 쓸어보았다.
보나마나 처음일텐데, 쳇....이 나이에 처녀라니.
이거 엄청 신경써야겠네.
그래도 이 녀석도 꽤 건장한 체격이니 해볼 때 까지 해봐도 되겠지?
"하지만 좀더 달리 생각해 줄 수 없니?"
...........
"너에게 내가 그런 유일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너도 알고 보면 이렇게 좋은 녀석이고 정도 많은 녀석인데, 왜 그 사랑을 내가 독차지 해야해?"
...........
"난....네가 나 말고 정말 더 많은 사람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어."
너......지금 날 놀리냐....
"한수민....내 말-"
"네가 나한테 어떤 말을 하는 건지는 알아. 그 말에 대답을 먼저 하자면.....난 네가 원하는 종류의 애정 나에게는 없어. 하지만 난 다른 것을 줄 수 있어. 그리고 너 또한 나에게 다른 것을 줄 수 있으리라 믿어."
뭐라고 하는 거야..
한마디로, 싫다..이 뜻이잖아? 그걸 뭘 그렇게 복잡하게 말하는 거야? 응? 사람 헷갈리게-
게다가 저 교과서적인 말하며.....정말 힘빠진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네 말은 내 감정은 못 받아줘도, 나와의 지금까지의 관계는 끝내지 않겠다. 이 뜻이지?"
"응"
저 반짝거리는 눈 좀 봐....하....
너 말이다.....그냥 순진한거니, 아니면 정말 바보였던 거니?
하긴, 그냥 바보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 쥐고 흔들지는 못하지.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대신 나랑 약속해.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그래. 약속해"
아직 때가 이르구나...
분위기 잡아놓고ㅡ 더구나 이렇게 외딴곳에서 난 밤새 수민이 손만 붙들고 자야했다.
기가차서-
물론 그 순간에 다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말이야...........아무리 나라도.......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뭐, 나중에 생각해보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 임에 분명하지만, 그때는 정말 무슨 수호천사라도 있어서 이 녀석을 지켜주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전혀...그런 생각이 안들었으니.....
물론 더 나중에 깨닫고 결론을 내리기는..........내가 정말로 한수민...이란 인간을 단순한 섹슈얼한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좋아한 것이 아닐까....였다. 아니 정말 그랬다.
그래서........더 순수하게 욕심이 났다.
한수민이라는 인간이.
그러면서 동시에, 짖궂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이 교과서처럼 살고 싶어하는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에게 세상의 혹독함을 알려주고 싶다고나 할까?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인간이 얼마나 비열하고, 추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보는 것만큼 세상이 그렇게 인정넘치고 따뜻하고 다정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웃어 보이며 친절을 베푸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욕구 또한 더 강렬해져갔다.
정말 말도 못하게 추악하고 구역질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게 되면 이 녀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깨닫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면 넌 내가 반할만한 인간인게 분명하겠지.
하지만 그걸 알고 네가 무너져 내린다면 난 널 버릴 거야.
네가 너에게 끌린게 너의 그런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넌 더 이상 가치가 없으니까.
물론......네가 날 받아들이게 만들려면 같이 더러운 편이 낳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난 너를 내가 있는 이곳까지 잡아끌어 내릴거야.
그러던 찰나.....새롭게 발견한게 있다면........이승현, 그가 수민이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달라져있었다.
확실히.
내가 엿먹인 사건 이후부터 분명히...
그녀서은 그 동안 아닌척 하면서 수민이를 철저히 자기것처럼 길들여왔다. 그래놓고도 오히려 나에게서 수민이를 지키겠다고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넌....착각하고 있어.
너라는 인간 나와는 동류라고.
수도 없이 그 인간을 보며 속으로 비웃어 주었다.
물론 얼마든지 비웃으며 말해줄 수 있었지만 난 그런 친절따위 베풀 의향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이제 스스로 자각을 했는지 명백해 욕망의 눈으로 수민이를 보고 있다. 소유욕이 넘쳐흐르는...
수민이가 더렵혀지지 않는다고?
넌 이미 더럽히고 있잖아. 그 눈으로...
나와 그가 경쟁한다면 수민이는 어떤 쪽으로 기울까?
이승현?
아니면 우리 둘 다 패배?
두 가지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절대 없을 거다.
내가 이기는 경우는.....
나를 동정하는 녀석이 순수하게 자신의 도덕적 고집을 포기하고 마음을 허락할리 없다. 어디까지나 이 녀석은 가진게 많아서 나를 동정하는 수준 이상은 아니다. 받은 정이 많고 그래서 가진 사랑이 많아서 그 중에 조금 남아도는 것으로 자선을 베푸는.....
그 이상이 아니니 자신을 포기하는 희생따위 치룰 이유가 없겠지....
그러니....
이 경우 내가 택할 수 있는 패는 후자의 경우는 아니다. 우리 둘 다 패하는 경우는 나도 얻을 것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승현이라는 패에 편승해서 얻어 보는게 유리하지 않을까?
그가 정말 승낙해 줄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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