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제12장 - 황천부(皇天富) 2
독로무한
26화. 제12장 - 황천부(皇天富) 2
“그래서요?”
몽뇌산은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짐짓 궁금하단 얼굴로 공야선표를 쳐다보았다.
그는 지금 공야선표의 과거 강호 활약담을 듣는 중이었다.
공야선표는 손으로 부채 펼치는 시늉을 하며 그때를 떠올리는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래서 내가 섭선을 촤악 펼쳐 놈을 두말 못 하게 단숨에 제압했지. 그때 내가 동해의 마왕이라는 흑산룡(黑山龍), 그놈을 무릎 꿇리는 데 몇 초를 썼는지 아나?”
“몇 초였는데요?”
공야선표는 말없이 위엄있는 동작으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일 초요?”
“그렇지! 단 일 초였어.”
공야선표의 얼굴에는 뻐기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나 그의 의기 양양해 하는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왕이 아니라 마졸이었나 보군요.”
“뭐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몽뇌산은 침까지 튀겨 가며 길길이 뛰는 공야선표를 외면한 채 불쑥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죠?”
몽뇌산은 마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행인들의 모습에 진짜 놀란 눈치였다.
아닌게아니라 그들이 막 들어선 개봉 성내는 북경, 남경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대도(大都)답게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각지에서 온 온갖 사람들이 뒤엉켜 그들이 하는 말만 듣고 있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원체 땅덩이가 넓어 각 지방마다 언어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이 처음인 몽뇌산으로선 놀랄 만도 했다.
“강북상권의 중심지라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이니 어딜 가나 사람 천지지, 개봉은! 그래도 개봉 사람들은 호쾌하고 정이 많으니 지내 보면 마음에
들 걸세. 암! 성격은 개봉 사람이 제일로 좋지. 내가 젊은 시절 개봉에서 얼마 동안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말이야, 그때……”
공야선표가 아는 척을 하며 또다시 옛이야기를 꺼낼 기미를 보이자 몽뇌산은 서둘러 말을 막았다.
“개봉 성내에 도착하자마자 어디 갈 데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느 때 같았으면 어른의 말을 가로막았다고 핀잔이 대단했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실 개봉까지 오는 동안 두 사람이 아옹다옹한 횟수를 일일이 다 세자면 그들 일행 모두의 세 끼 밥 먹은 횟수를 전부 합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러면서도 그냥 돌아가라고 하지 않는 공야선표나, 툭탁대면서도 안 가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몽뇌산을 보면
제삼자가 보기에도 이미 정이 들 대로 든 듯했다.
그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하후극이나 혁무빙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묘했다.
서로에 대해 살가운 정을 느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은 많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분위기가 무거우면서도 어떤 동질의 느낌이 풍기는 까닭은 단순히 두 사람이 동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일까?
아무튼 공야선표는 말없이 일어나 마차 밖으로 나서더니 이내 사람들 틈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디 가시는 건지 아십니까?”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몽뇌산은 마부석에 앉아 있는 하후극에게 소리 높여 물었다.
그러나 하후극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몽뇌산의 생각과는 달리 묵직한
그의 대답은 그를 실망시키지도, 만족시키지도 않았다.
“좀 있으면 알게 될 걸세. 여기서 잠시 마차를 세우고 기다리기로 하지.”
“그냥 가버리는 게 어떨까요?”
맥빠져 하던 몽뇌산이 장난스런 눈빛을 던지며 물어 오자, 하후극이 피식 실소를 지었다.
만약 공야선표를 그냥 두고 갔을 경우, 세상 무너진 것처럼 노발대발할 강호 노고수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몽뇌산은 빙글거리며 자리에 바로 앉다 말고 맞은편 자리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혁무빙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쭉 마부석에 앉은 하후극의 옆자리에 있던 그가 마차 안으로 들어온 것은 개봉성에 가까워지면서부터였다.
그들을 스쳐 가는 사람들 중 여인네란 여인네는 모조리 다 혁무빙을 향해 감탄을 금치 못하며 다가와 선망 어린 눈길을
보내니 천성적으로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혁무빙으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혁무빙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자 불편해진 것은 몽뇌산이었다.
몽뇌산은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혁무빙을 가만히 주시했다.
고개를 들며 별안간 눈을 뜬 혁무빙과 그의 눈빛이 마주치는 찰나, 마차 문이 열리며 공야선표가 바람처럼 들어와 앉았다.
혁무빙의 눈길에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몽뇌산에겐 공야선표가 지금처럼 고마운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마차 안을 감도는 수상쩍은 분위기에 공야선표가 궁금한 듯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니요!”
“아닙니다.”
공야선표는 동시에 부인(否認)하고 나선 두 사람을 묘한 눈길로 빤히 살폈다.
여전히 냉정한 모습의 혁무빙과 딴청을 피우고 있는 몽뇌산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공야선표는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우리가 묵을 곳이 정해졌네. 무사히 와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나저러나 거기 가설랑은 제발 좀 친하게 지내게, 응?”
고개를 돌려 똑같이 무언의 거부를 나타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공야선표는 가벼운 마음으로 웃었다.
마침내 개봉에 도착한 것이다.
겨울바람이 기승을 부리던 만력 사십년 정월의 서른 번째 날, 바로 감진택이 몽뇌산에게 기한으로 정해 줬던 그날이었다.
그들이 개봉성에 도착해서 첫날 밤을 보내고 있던 개봉성 인근의 고풍스런 장원에 손님이 찾아든 것은 삼경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몽뇌산은 보통보다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에 견고함이 눈으로 느껴질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육두마차에서 내리던
그를 처음 본 순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살들!
그 순간의 감탄을 되새기며 몽뇌산은 앞자리를 슬쩍 건너다보았다.
불빛 아래서 다시 보아도 황천부는 넓어 보였다.
몽뇌산과 혁무빙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수인사를 나눈 후, 신비무리들의 습격부터 시작해서 공야선표가 일행이 겪은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하자 좌중은 놀람과 감탄으로 한동안 술렁거렸다.
특히 그러한 분위기는 몽뇌산이 남몰래 진짜와 똑같은 가짜 열쇠를 하나 만들어 두었던 걸 얘기하는 대목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얘기가 끝난 후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의견을 제시하던 황천부가 몽뇌산의 시선을 느낀 듯 잠시 시선을 돌리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보냈다.
몽뇌산은 대단한 부호라고 들은 것과는 달리 그가 보여 주는 소탈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혁무빙의
친구라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뭐, 친구라고 해서
꼭 같으란 법은 없으니까!
그에게 호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금색 일색인 그의 복장은 몽뇌산이 보기에 뭐랄까, 대단히 요란스러워 보였다.
탁자에 놓인 그의 손에서 빛나는 오색 찬란한 보광을 보며 몽뇌산은 혀를 내둘렀다.
‘저런 걸 하고도 편안해 보이니…… 대단하군!’
몽뇌산은 그의 옷깃 사이로 살짝 엿보이는 금목걸이부터 팔목의 금팔찌까지, 그것들을 한 번에 주욱 훑어 내렸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몽 소협?”
“예?”
몽뇌산은 난데없이 들려 온 질문에 얼른 고개를 들며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눈길들을 마주보았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소?”
“괜찮겠냐구요?”
되묻는 그를 보며 질문을 던졌던 마의노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걸로 알고, 지금 말한 계획대로 합시다.”
몽뇌산은 영문을 모르는 눈길로 마의노인, 그 이름도 유명한 만금장주 황금복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황금복의 모습은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평범해서 어찌 보면 궁상맞아 보일 정도였다.
사실 검박(儉朴)한 마의 차림만 보고서는 누구도 그가 천하제일부호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모용도도도 실수를 했던 것이 아닌가!
평범한 시골의 촌부처럼 보이는 그의 홀쭉한 몸은 아들과 대조되어 더욱 그러한 생각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와 한마디라도 얘기를 나눠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멀찌감치 접어 두어야만 할 정도로 그는 신념이 있는
대상인이요,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 온, 존경받아 마땅한 인생의
선배였
그러나 그에 대한 모든 감탄사도 지금 몽뇌산의 어리둥절한 심정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몽뇌산이 계속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서 보고 있던 황천부가 눈치 빠르게 얼른 그를 구원하고 나섰다.
“남경까지 함께 가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정말! 진짜 열쇠를 북경으로 보내어 일을 처리하는 동안, 여러분들께서 남경으로 움직이시면 적들의 이목을 흐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몽 형의 사부님께서도 계시니 실로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닙니까?”
몽뇌산은 그제서야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알아차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몸을 빼기는 늦은 것 같군요. 하긴 이왕 뛰어든 일이니 끝까지 함께해야겠죠. 어차피 그들에게
진 빚도 있고! 그나저나 빨리 사부님을 뵙고 싶은데, 언제 출발하는 겁니까?”
“음`─` 오늘, 내일은 다들 편히 쉬시고, 모레쯤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황금복이 좌중을 둘러보며 의향을 물었다.
“그쯤이면 적당할 것 같소이다, 장주!”
“북경 쪽에 시간을 벌어 주자면 적들이 의심하지 않게 시간 안배를 적절히 해야겠지요. 하루 뒤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공야선표와 하후극이 동의하고 나서자 일행의 출발 날짜는 단숨에 이월 초하루로 못박히고 말았다.
만족스런 좌중의 표정과는 달리 몽뇌산은 속으로 잔뜩 푸념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 사문에 귀환해서 이틀 만에 떠밀려 나온 것으로도 모자라 고생고생해서
온 개봉에서도 또 이틀 만에 떠나야 하다니……!
몽뇌산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일행들과 함께 황금복과 황천부 부자를 배웅했다.
두 사람을 태운 육두마차가 장원을 떠나자 몽뇌산은 일행들과 같이 숙소가 있는 장원의 내원으로 향하며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사부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자면 내일밖에 시간이 없겠군. 그나저나 백림서원이라……!”
사형은 어떤 모습일까?
몽뇌산은 내일이면 만나게 될 사형의 모습을 상상하며 천천히 처소로 발길을 옮겼다.
26화. 제12장 - 황천부(皇天富) 2
“그래서요?”
몽뇌산은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짐짓 궁금하단 얼굴로 공야선표를 쳐다보았다.
그는 지금 공야선표의 과거 강호 활약담을 듣는 중이었다.
공야선표는 손으로 부채 펼치는 시늉을 하며 그때를 떠올리는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래서 내가 섭선을 촤악 펼쳐 놈을 두말 못 하게 단숨에 제압했지. 그때 내가 동해의 마왕이라는 흑산룡(黑山龍), 그놈을 무릎 꿇리는 데 몇 초를 썼는지 아나?”
“몇 초였는데요?”
공야선표는 말없이 위엄있는 동작으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일 초요?”
“그렇지! 단 일 초였어.”
공야선표의 얼굴에는 뻐기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나 그의 의기 양양해 하는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왕이 아니라 마졸이었나 보군요.”
“뭐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몽뇌산은 침까지 튀겨 가며 길길이 뛰는 공야선표를 외면한 채 불쑥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죠?”
몽뇌산은 마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행인들의 모습에 진짜 놀란 눈치였다.
아닌게아니라 그들이 막 들어선 개봉 성내는 북경, 남경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대도(大都)답게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각지에서 온 온갖 사람들이 뒤엉켜 그들이 하는 말만 듣고 있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원체 땅덩이가 넓어 각 지방마다 언어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이 처음인 몽뇌산으로선 놀랄 만도 했다.
“강북상권의 중심지라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이니 어딜 가나 사람 천지지, 개봉은! 그래도 개봉 사람들은 호쾌하고 정이 많으니 지내 보면 마음에
들 걸세. 암! 성격은 개봉 사람이 제일로 좋지. 내가 젊은 시절 개봉에서 얼마 동안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말이야, 그때……”
공야선표가 아는 척을 하며 또다시 옛이야기를 꺼낼 기미를 보이자 몽뇌산은 서둘러 말을 막았다.
“개봉 성내에 도착하자마자 어디 갈 데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느 때 같았으면 어른의 말을 가로막았다고 핀잔이 대단했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실 개봉까지 오는 동안 두 사람이 아옹다옹한 횟수를 일일이 다 세자면 그들 일행 모두의 세 끼 밥 먹은 횟수를 전부 합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러면서도 그냥 돌아가라고 하지 않는 공야선표나, 툭탁대면서도 안 가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몽뇌산을 보면
제삼자가 보기에도 이미 정이 들 대로 든 듯했다.
그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하후극이나 혁무빙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묘했다.
서로에 대해 살가운 정을 느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은 많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분위기가 무거우면서도 어떤 동질의 느낌이 풍기는 까닭은 단순히 두 사람이 동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일까?
아무튼 공야선표는 말없이 일어나 마차 밖으로 나서더니 이내 사람들 틈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디 가시는 건지 아십니까?”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몽뇌산은 마부석에 앉아 있는 하후극에게 소리 높여 물었다.
그러나 하후극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몽뇌산의 생각과는 달리 묵직한
그의 대답은 그를 실망시키지도, 만족시키지도 않았다.
“좀 있으면 알게 될 걸세. 여기서 잠시 마차를 세우고 기다리기로 하지.”
“그냥 가버리는 게 어떨까요?”
맥빠져 하던 몽뇌산이 장난스런 눈빛을 던지며 물어 오자, 하후극이 피식 실소를 지었다.
만약 공야선표를 그냥 두고 갔을 경우, 세상 무너진 것처럼 노발대발할 강호 노고수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몽뇌산은 빙글거리며 자리에 바로 앉다 말고 맞은편 자리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혁무빙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쭉 마부석에 앉은 하후극의 옆자리에 있던 그가 마차 안으로 들어온 것은 개봉성에 가까워지면서부터였다.
그들을 스쳐 가는 사람들 중 여인네란 여인네는 모조리 다 혁무빙을 향해 감탄을 금치 못하며 다가와 선망 어린 눈길을
보내니 천성적으로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혁무빙으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혁무빙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자 불편해진 것은 몽뇌산이었다.
몽뇌산은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혁무빙을 가만히 주시했다.
고개를 들며 별안간 눈을 뜬 혁무빙과 그의 눈빛이 마주치는 찰나, 마차 문이 열리며 공야선표가 바람처럼 들어와 앉았다.
혁무빙의 눈길에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몽뇌산에겐 공야선표가 지금처럼 고마운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마차 안을 감도는 수상쩍은 분위기에 공야선표가 궁금한 듯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니요!”
“아닙니다.”
공야선표는 동시에 부인(否認)하고 나선 두 사람을 묘한 눈길로 빤히 살폈다.
여전히 냉정한 모습의 혁무빙과 딴청을 피우고 있는 몽뇌산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공야선표는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우리가 묵을 곳이 정해졌네. 무사히 와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나저러나 거기 가설랑은 제발 좀 친하게 지내게, 응?”
고개를 돌려 똑같이 무언의 거부를 나타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공야선표는 가벼운 마음으로 웃었다.
마침내 개봉에 도착한 것이다.
겨울바람이 기승을 부리던 만력 사십년 정월의 서른 번째 날, 바로 감진택이 몽뇌산에게 기한으로 정해 줬던 그날이었다.
그들이 개봉성에 도착해서 첫날 밤을 보내고 있던 개봉성 인근의 고풍스런 장원에 손님이 찾아든 것은 삼경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몽뇌산은 보통보다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에 견고함이 눈으로 느껴질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육두마차에서 내리던
그를 처음 본 순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살들!
그 순간의 감탄을 되새기며 몽뇌산은 앞자리를 슬쩍 건너다보았다.
불빛 아래서 다시 보아도 황천부는 넓어 보였다.
몽뇌산과 혁무빙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수인사를 나눈 후, 신비무리들의 습격부터 시작해서 공야선표가 일행이 겪은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하자 좌중은 놀람과 감탄으로 한동안 술렁거렸다.
특히 그러한 분위기는 몽뇌산이 남몰래 진짜와 똑같은 가짜 열쇠를 하나 만들어 두었던 걸 얘기하는 대목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얘기가 끝난 후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의견을 제시하던 황천부가 몽뇌산의 시선을 느낀 듯 잠시 시선을 돌리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보냈다.
몽뇌산은 대단한 부호라고 들은 것과는 달리 그가 보여 주는 소탈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혁무빙의
친구라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뭐, 친구라고 해서
꼭 같으란 법은 없으니까!
그에게 호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금색 일색인 그의 복장은 몽뇌산이 보기에 뭐랄까, 대단히 요란스러워 보였다.
탁자에 놓인 그의 손에서 빛나는 오색 찬란한 보광을 보며 몽뇌산은 혀를 내둘렀다.
‘저런 걸 하고도 편안해 보이니…… 대단하군!’
몽뇌산은 그의 옷깃 사이로 살짝 엿보이는 금목걸이부터 팔목의 금팔찌까지, 그것들을 한 번에 주욱 훑어 내렸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몽 소협?”
“예?”
몽뇌산은 난데없이 들려 온 질문에 얼른 고개를 들며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눈길들을 마주보았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소?”
“괜찮겠냐구요?”
되묻는 그를 보며 질문을 던졌던 마의노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걸로 알고, 지금 말한 계획대로 합시다.”
몽뇌산은 영문을 모르는 눈길로 마의노인, 그 이름도 유명한 만금장주 황금복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황금복의 모습은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평범해서 어찌 보면 궁상맞아 보일 정도였다.
사실 검박(儉朴)한 마의 차림만 보고서는 누구도 그가 천하제일부호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모용도도도 실수를 했던 것이 아닌가!
평범한 시골의 촌부처럼 보이는 그의 홀쭉한 몸은 아들과 대조되어 더욱 그러한 생각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와 한마디라도 얘기를 나눠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멀찌감치 접어 두어야만 할 정도로 그는 신념이 있는
대상인이요,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 온, 존경받아 마땅한 인생의
선배였
그러나 그에 대한 모든 감탄사도 지금 몽뇌산의 어리둥절한 심정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몽뇌산이 계속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서 보고 있던 황천부가 눈치 빠르게 얼른 그를 구원하고 나섰다.
“남경까지 함께 가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정말! 진짜 열쇠를 북경으로 보내어 일을 처리하는 동안, 여러분들께서 남경으로 움직이시면 적들의 이목을 흐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몽 형의 사부님께서도 계시니 실로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닙니까?”
몽뇌산은 그제서야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알아차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몸을 빼기는 늦은 것 같군요. 하긴 이왕 뛰어든 일이니 끝까지 함께해야겠죠. 어차피 그들에게
진 빚도 있고! 그나저나 빨리 사부님을 뵙고 싶은데, 언제 출발하는 겁니까?”
“음`─` 오늘, 내일은 다들 편히 쉬시고, 모레쯤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황금복이 좌중을 둘러보며 의향을 물었다.
“그쯤이면 적당할 것 같소이다, 장주!”
“북경 쪽에 시간을 벌어 주자면 적들이 의심하지 않게 시간 안배를 적절히 해야겠지요. 하루 뒤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공야선표와 하후극이 동의하고 나서자 일행의 출발 날짜는 단숨에 이월 초하루로 못박히고 말았다.
만족스런 좌중의 표정과는 달리 몽뇌산은 속으로 잔뜩 푸념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 사문에 귀환해서 이틀 만에 떠밀려 나온 것으로도 모자라 고생고생해서
온 개봉에서도 또 이틀 만에 떠나야 하다니……!
몽뇌산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일행들과 함께 황금복과 황천부 부자를 배웅했다.
두 사람을 태운 육두마차가 장원을 떠나자 몽뇌산은 일행들과 같이 숙소가 있는 장원의 내원으로 향하며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사부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자면 내일밖에 시간이 없겠군. 그나저나 백림서원이라……!”
사형은 어떤 모습일까?
몽뇌산은 내일이면 만나게 될 사형의 모습을 상상하며 천천히 처소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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