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그들에게 돈 주고 산 물건 10
내 마누라는 엘프
16화. 그들에게 돈 주고 산 물건 10
"이럴수가, 다크엘프(Dark elf)라니?!"
…좀 새까맷다.
나와 엑셀, 그리고 다른 경매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경악에 휩쌓여있을 때 가만
히 앉아있던 이리사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다크엘프
를 한번 돌아보며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오기전부터 있던 아이에요. 자신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저 아이
는 이곳으로 잡혀올 때 상처를 입은 몬스터들을 모두 치료해주더군요. 착한 아
이에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난 그 꼬마 다크엘프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엘프가 다 그렇듯 이 꼬마 다크엘프는 풀어내린 가는 실 마냥 쭉쭉 늘어진 기
다란 흑발을 가지고있었다. 그리고 피부는 약간 까무잡잡해서 어두운곳에 있다
면 왠만해선 찾을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르네에게 들었던 것과
같이….
'엘프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다크엘프들은 신의 미소를 흉내낼 수 있는 미
(美)를 가지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다크엘프는 엘프들중에서도 꼽을 수 있는
미인이란 소리죠.'
굉장한 미인이었다.
비록 인간 나이로 한 13~4살 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았지만, 잠깐. 그럼 아까
저기 후작씨가 직원의 귀속말을 듣고 가볍게 이리사를 포기한건 이것 때문이었
나?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그 제르갈이라던 후작씨도 날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
다. 그는 날 보더니 씨익 웃어주었고 난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쓰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엑셀에게로 고개를 돌린 나는 한가롭게 미소를 지어보였
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여기 온 이상 오늘 부로 이곳은 장사 다한거야.
난 고개를 돌려 엑셀을 바라보았고 엑셀은 입술을 올리며 씨익 웃고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서 말했다.
"잠깐, 이번엔 내가 저 후작이랑 해보지. 어차피 늦었으니 더 늦어도 상관없잖
아?"
"그도 그렇지. 어차피 다 부숴버릴테니까. 알았어, 맘대로 해."
난 그렇게 말하며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고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리사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기, 그럼 저 아이도?"
"저 아이 뿐 아니라. 이곳에 잡혀있는 몬스터까지도. 모두."
이리사는 내 말을 듣고는 약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그
녀는 내손을 붙잡아 올려서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요. 모두들 기뻐할거에요. 정말 기뻐할거에요."
그때 옆에서 후작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웃고있던 엑셀이 나와 이리사를 보게
되었고 그러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능글맞게 웃어보이더니 말했다.
"호오, 타르시스양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리드 자넨 어떻게 될까?"
"…아무말하지 말아줘."
난 차마 내손을 잡고있는 그녀를 뿌리리치지 못한채 황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단상에 서서 한참동안 다크엘프에 대한 소개를 해대던 사회자가 말 끝에
이런 말을 붙이며 소개를 끝내자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스치
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더 말씀드리자면 다크엘프는 방금 저기 저분께 낙찰된
보통의 엘프처럼 그 고귀한 자존심 때문에 자살하지 않습니다. 좀 심하게 굴려
도 상관없지요. 그럼 가격은 5000만 워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이 들어올려졌고 단상에 올라있던 사
회자는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빠르게 가격을 올려대기 시작했다. 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얀 벽도제가 발라져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이 갑자기 싫어지는군,
그때 옆에서 가만히 사회자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있던 보통 엘프 이리사는 한
숨을 폭 내쉬더니 두 손을 모아 허벅지 위에 올리고 바닥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짓더니 혼자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사실이에요. 우리들은 자존심 때문에 자살하죠. 하지만 저 다크엘프들은 그런
우리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은 자를 응징해요. 이것이 다크엘프와
보통엘프의 차이점이라고 할수있지요. 다른 것은 다 같지만 그것이 달라요.
우린 받을 줄 알지만 남에게 내어줄 줄은 몰라요, 하지만 다크엘프는 둘다 할수
있죠.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과 닮아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가?
확실히 처음 경비병들에게 이끌려 단상위로 올라왔을 때 이리사는 몹시 불안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었다.
'그녀는 내어줄 줄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저기 단상위에 두팔이 항마족쇄에 결박당한채 마치 숲속에서 지저분한
벌레라도 보고있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에 돈을 걸며 히히덕 거리고있는
자들을 바라보는 꼬마 다크엘프는 전혀 불안해 하지않았다.
'저 아이는 내어줄 줄 알기 때문에,'
엘프란 거,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이군, 이런 이야기는 르네도 해주지
않았는데, 하긴 그녀와 나 둘 사이엔 사랑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사랑은 단순한
거야. 복잡하지 않지, 난 그렇게 상각하며 옆에서 가만히 다크엘프에게 범상치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는 엑셀을 바라보았다. 그는 날 의식하더니 싱글거리며
말했다.
"자, 지금쯤 시작할까? 리드, 준비해. 그리고 이리사라고 했나요? 당신은 내가
검을 뽑아들면 귀를 막아요. 좀 시끄러울 테니까."
이리사는 엑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머리좋은 엘프답게 지금 우리들이
하려는 것을 알아내곤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의 말에 주머니속에 넣어둔 건틀
릿을 꺼내어서 그것을 조용히 손에 끼기 시작했다.
주위는 시끄러웠다. 여기저기서 손과 돈 가방이 들어올려지며 방금전에 나왔던
액수의 두, 세배의 액수가 불러졌고 그럴때마다 단상위의 사회자는 즐거운 비명
을 지르며 더 높은 가격을 불러 젖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제르갈인가 하는 후작씨가 외쳤다.
"에에에잇!! 사지도 않을거면서 가격만 올리지 말란 말이다!! 2억! 내가 지금 가
지고있는 돈의 액수다! 전부 내겠어!! 따라오지 못할거면 포기해!"
"………."
대단하군, 기백만으로 욕망에 미친 이 많은 인간들의 입을 다물게 하다니.
제르갈 후작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문채 멍한 얼굴로 자신에게 시선을 던지
자 일어선채로 두손을 들어 자신의 외투 깃을 잡고 두어번 탁탁 잡아당기더니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시한번 말하지, 지금 내가 가진 돈은 모두 2억 위니요. 다 내겠소이다. 그러
니 따라오지 못할사람은 조용히 나에게 양보하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허탈하게 웃거나 아니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 어디선가 멍하니 있던 사람 하나가 손을 들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곧 그
박수소리는 실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이리사가 귀를 막을 정도로 장내
는 박수소리와 환호소리로 가득해져 버렸다.
그때 가만히 팔짱을 하며 앉아있던 엑셀이 같잖은 얼굴로 피식 웃더니 말했다.
비록 지금 경매장안은 시끄럽게 변해있었지만 그의 말은 똑똑히 들을수있었다.
왜냐면 바로 옆자리니까.
"대리만족인가? 자기가 아닌 남에게서 자신이 느끼지 못한 기분을 느끼겠다는
말이지? 웃기는군, 세상어디에 이렇게 웃긴 말이 있을까? 대리만족. 자신의 꿈
을 이루지 못해 끝내 포기해버리고, 자기가 못한 일을 해낸 남을 바라보며 즐거
워하는 자가 말하는 추잡한 자기변명."
"틀리진 않았어."
"명언이라고 해주면 어디 덧나나?"
"독설이 명언이 될수없다는건 너도 알잖아?"
내말에 엑셀은 고개를 조금 숙이며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지금 이상태로는 남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할수없다는
것을 파악하더니 곧 이리사에게 롱 코트를 내어줄 때 미리 빼놓은 건 블레이드
를 집어들어서 천장에 매달려있는 멋들어진 샹드리에를 겨냥했고 그러자 건 블
레이드가 굉장한 폭음과 함께 불을 뿜어내었다.
"콰아아아아앙!!" 챠라라락~ 와장창!! 콰앙!!"
"허허허, 참 대단하시… 으악! 뭐, 뭐야?!"
"으아앗~ 귀! 귀가?!"
천장에 매달려있던 샹드리에는 엑셀의 건 블레이드에 의해 그대로 수직낙하해
서 밑의 테이블에 떨어져 테이블과 함께 박살이 나 사방으로 유리조각과 나무
조각을 흩날렸고 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천장에서 샹드리에가 떨어지
자 자다가 벼락맞은 얼굴로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서 얼굴에 튀는
파편을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우리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귀
를 막고 이맛살를 찌뿌리며 폭발음이 들린 곳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옆에는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리고 샹드리에는 겨냥하던 바로 그 모습
을 잠깐 유지하고있던 엑셀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시선을 받으며 발을 내리곤
건 블레이드를 든 팔을 높이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건 블레이드입니다. 무기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아시겠지요? 이 검은
이 세계에 단 두자루뿐인 검입니다. 하나는 나르셀 후작가의 첫 째 따님이신 그
란디아양이 가지고 계시고 그리고 남은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웃나라 세르피즈의 이탄 국왕께서 친필로 나르셀 후작가에 서신을 보
낸 적이 있었지요. 그란디아양이 가지고있는 건 블레이드를 자신에게 넘기지 않
겠냐고, 나르셀 후작가에선 정중하게 그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그때 이탄 국왕께
서 나르셀 후작가에 거론한 건 블레이드의 가격은…."
"이 나라 메르세스의 돈으로 약 5억 8천만 워니 였지요."
이 말은 엑셀이 한 말이 아니고 저 앞 테이블에 앉아있던 어떤 남자의 말이었
다. 그는 엑셀이 들고있는 건 블레이드를 모습을 입을 딱벌리며 바라보고 있었
고, 엑셀은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그러자 콧수염이 멋진 중년 남자는
얼떨결에 그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고개를 든 엑셀은 2억 워니를 내겠다는 제
르갈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5억 8천입니다. 어떻습니까? 양보하시죠. 후작님."
후작의 얼굴은 그야말로 뭐씹은 얼굴이었다. 그는 엑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
다음 시선을 내려 나와 내옆에 앉아있는 이리사를 한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
개를 돌려 이번엔 단상위에서 이런 소란이 있었음에도 항마족쇄가 채워진 손을
들어서 귀를 조금 만지고있던 꼬마 다크엘프를 잠깐 바라봤다가 시선을 내려
우리들을 쳐다보며 이를 갈아대었다. 그리곤 분에 못이겼는지 주먹을 들어서 테
이블을 내려쳤다.
콰앙!
"이런, 제기랄!"
그는 테이블을 노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엑셀을 조금 노려본후 등을 홱
돌려 그 짧은 다리를 놀려 위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걸어가며 소리쳤다.
"카알! 가자! 그냥 집에서 차나 마시는게 나을뻔했어!!"
그리고 그는 툴툴거리며 계단을 올라갔고 그뒤로 가방과 처음에 경매에서 산
가짜 그림을 들고 젊은이 하나가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후작이 사라지자 잠시동안 정적이 흐르던 장내에선 곧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회자가 손을 천천히 들어 엑셀을 가르키더니 조금 더듬대며 말했다.
"오… 5억 8천만의 건 블레이드가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경매장은 고요했다.
사회자는 침을 한번 삼키더니 손을 높이 들어올리곤 다크엘프를 가르켰다가 다
시 엑셀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 다크엘프는 저 은발 손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여러분 저 손님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하지만 그 누구도 박수나 환호를 지르진 않았다. 사회자는 조금 무안해진 얼굴
로 옆에 서있는 경비병들을 불러 꼬마 다크 엘프를 엑셀에게 인도하도록 했고
곧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다크엘프와 아까 그 눈이 벌게져있던 경비
병, 그리고 그 차가운 눈의 제복입은 남자가 우리앞에 섰다. 눈이 벌게져있던
경비병은 이번엔 우릴 쳐죽일 것 같은 얼굴을 한채로 묵묵히 서있다가 옆의 차
가운 눈을 한 남자가 그의 어깨를 툭치자 잔뜩 억눌린 말투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낙찰, 받으신 경매품을, …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낙찰금은
…빠드득~ …죄송합니다. 네, 선불입니다."
방금 전 그 소리, 이빨 가는…. 소리같은데?
그러면서 그는 다크 엘프의 어깨에 손을 얻어서 엑셀쪽으로 살짝 밀었고 그러
자 꼬마 다크엘프는 천천히 걸어서 보다는 밀려서, 엑셀의 바로 앞까지 걸어가
더니 걸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엑셀 역시 그 꼬마를 조용
히 내려다보았고 잠시동안 그렇게 둘은 눈싸움이라고 불러줘야 할 정도로 서로
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리고 잠시 후 엑셀이 입술을 올리며 씨익 웃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산 주인으로서 너의 이름을 알고싶다."
항마족쇄 때문에 두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로 고개를 삐딱하게 만들어 엑셀을
올려다보던 꼬마 엘프는 고개를 든채로 그를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내 이름은…."
16화. 그들에게 돈 주고 산 물건 10
"이럴수가, 다크엘프(Dark elf)라니?!"
…좀 새까맷다.
나와 엑셀, 그리고 다른 경매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경악에 휩쌓여있을 때 가만
히 앉아있던 이리사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다크엘프
를 한번 돌아보며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오기전부터 있던 아이에요. 자신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저 아이
는 이곳으로 잡혀올 때 상처를 입은 몬스터들을 모두 치료해주더군요. 착한 아
이에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난 그 꼬마 다크엘프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엘프가 다 그렇듯 이 꼬마 다크엘프는 풀어내린 가는 실 마냥 쭉쭉 늘어진 기
다란 흑발을 가지고있었다. 그리고 피부는 약간 까무잡잡해서 어두운곳에 있다
면 왠만해선 찾을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르네에게 들었던 것과
같이….
'엘프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다크엘프들은 신의 미소를 흉내낼 수 있는 미
(美)를 가지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다크엘프는 엘프들중에서도 꼽을 수 있는
미인이란 소리죠.'
굉장한 미인이었다.
비록 인간 나이로 한 13~4살 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았지만, 잠깐. 그럼 아까
저기 후작씨가 직원의 귀속말을 듣고 가볍게 이리사를 포기한건 이것 때문이었
나?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그 제르갈이라던 후작씨도 날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
다. 그는 날 보더니 씨익 웃어주었고 난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쓰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엑셀에게로 고개를 돌린 나는 한가롭게 미소를 지어보였
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여기 온 이상 오늘 부로 이곳은 장사 다한거야.
난 고개를 돌려 엑셀을 바라보았고 엑셀은 입술을 올리며 씨익 웃고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서 말했다.
"잠깐, 이번엔 내가 저 후작이랑 해보지. 어차피 늦었으니 더 늦어도 상관없잖
아?"
"그도 그렇지. 어차피 다 부숴버릴테니까. 알았어, 맘대로 해."
난 그렇게 말하며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고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리사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기, 그럼 저 아이도?"
"저 아이 뿐 아니라. 이곳에 잡혀있는 몬스터까지도. 모두."
이리사는 내 말을 듣고는 약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그
녀는 내손을 붙잡아 올려서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요. 모두들 기뻐할거에요. 정말 기뻐할거에요."
그때 옆에서 후작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웃고있던 엑셀이 나와 이리사를 보게
되었고 그러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능글맞게 웃어보이더니 말했다.
"호오, 타르시스양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리드 자넨 어떻게 될까?"
"…아무말하지 말아줘."
난 차마 내손을 잡고있는 그녀를 뿌리리치지 못한채 황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단상에 서서 한참동안 다크엘프에 대한 소개를 해대던 사회자가 말 끝에
이런 말을 붙이며 소개를 끝내자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스치
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더 말씀드리자면 다크엘프는 방금 저기 저분께 낙찰된
보통의 엘프처럼 그 고귀한 자존심 때문에 자살하지 않습니다. 좀 심하게 굴려
도 상관없지요. 그럼 가격은 5000만 워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이 들어올려졌고 단상에 올라있던 사
회자는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빠르게 가격을 올려대기 시작했다. 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얀 벽도제가 발라져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이 갑자기 싫어지는군,
그때 옆에서 가만히 사회자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있던 보통 엘프 이리사는 한
숨을 폭 내쉬더니 두 손을 모아 허벅지 위에 올리고 바닥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짓더니 혼자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사실이에요. 우리들은 자존심 때문에 자살하죠. 하지만 저 다크엘프들은 그런
우리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은 자를 응징해요. 이것이 다크엘프와
보통엘프의 차이점이라고 할수있지요. 다른 것은 다 같지만 그것이 달라요.
우린 받을 줄 알지만 남에게 내어줄 줄은 몰라요, 하지만 다크엘프는 둘다 할수
있죠.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과 닮아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가?
확실히 처음 경비병들에게 이끌려 단상위로 올라왔을 때 이리사는 몹시 불안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었다.
'그녀는 내어줄 줄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저기 단상위에 두팔이 항마족쇄에 결박당한채 마치 숲속에서 지저분한
벌레라도 보고있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에 돈을 걸며 히히덕 거리고있는
자들을 바라보는 꼬마 다크엘프는 전혀 불안해 하지않았다.
'저 아이는 내어줄 줄 알기 때문에,'
엘프란 거,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이군, 이런 이야기는 르네도 해주지
않았는데, 하긴 그녀와 나 둘 사이엔 사랑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사랑은 단순한
거야. 복잡하지 않지, 난 그렇게 상각하며 옆에서 가만히 다크엘프에게 범상치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는 엑셀을 바라보았다. 그는 날 의식하더니 싱글거리며
말했다.
"자, 지금쯤 시작할까? 리드, 준비해. 그리고 이리사라고 했나요? 당신은 내가
검을 뽑아들면 귀를 막아요. 좀 시끄러울 테니까."
이리사는 엑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머리좋은 엘프답게 지금 우리들이
하려는 것을 알아내곤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의 말에 주머니속에 넣어둔 건틀
릿을 꺼내어서 그것을 조용히 손에 끼기 시작했다.
주위는 시끄러웠다. 여기저기서 손과 돈 가방이 들어올려지며 방금전에 나왔던
액수의 두, 세배의 액수가 불러졌고 그럴때마다 단상위의 사회자는 즐거운 비명
을 지르며 더 높은 가격을 불러 젖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제르갈인가 하는 후작씨가 외쳤다.
"에에에잇!! 사지도 않을거면서 가격만 올리지 말란 말이다!! 2억! 내가 지금 가
지고있는 돈의 액수다! 전부 내겠어!! 따라오지 못할거면 포기해!"
"………."
대단하군, 기백만으로 욕망에 미친 이 많은 인간들의 입을 다물게 하다니.
제르갈 후작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문채 멍한 얼굴로 자신에게 시선을 던지
자 일어선채로 두손을 들어 자신의 외투 깃을 잡고 두어번 탁탁 잡아당기더니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시한번 말하지, 지금 내가 가진 돈은 모두 2억 위니요. 다 내겠소이다. 그러
니 따라오지 못할사람은 조용히 나에게 양보하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허탈하게 웃거나 아니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 어디선가 멍하니 있던 사람 하나가 손을 들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곧 그
박수소리는 실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이리사가 귀를 막을 정도로 장내
는 박수소리와 환호소리로 가득해져 버렸다.
그때 가만히 팔짱을 하며 앉아있던 엑셀이 같잖은 얼굴로 피식 웃더니 말했다.
비록 지금 경매장안은 시끄럽게 변해있었지만 그의 말은 똑똑히 들을수있었다.
왜냐면 바로 옆자리니까.
"대리만족인가? 자기가 아닌 남에게서 자신이 느끼지 못한 기분을 느끼겠다는
말이지? 웃기는군, 세상어디에 이렇게 웃긴 말이 있을까? 대리만족. 자신의 꿈
을 이루지 못해 끝내 포기해버리고, 자기가 못한 일을 해낸 남을 바라보며 즐거
워하는 자가 말하는 추잡한 자기변명."
"틀리진 않았어."
"명언이라고 해주면 어디 덧나나?"
"독설이 명언이 될수없다는건 너도 알잖아?"
내말에 엑셀은 고개를 조금 숙이며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지금 이상태로는 남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할수없다는
것을 파악하더니 곧 이리사에게 롱 코트를 내어줄 때 미리 빼놓은 건 블레이드
를 집어들어서 천장에 매달려있는 멋들어진 샹드리에를 겨냥했고 그러자 건 블
레이드가 굉장한 폭음과 함께 불을 뿜어내었다.
"콰아아아아앙!!" 챠라라락~ 와장창!! 콰앙!!"
"허허허, 참 대단하시… 으악! 뭐, 뭐야?!"
"으아앗~ 귀! 귀가?!"
천장에 매달려있던 샹드리에는 엑셀의 건 블레이드에 의해 그대로 수직낙하해
서 밑의 테이블에 떨어져 테이블과 함께 박살이 나 사방으로 유리조각과 나무
조각을 흩날렸고 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천장에서 샹드리에가 떨어지
자 자다가 벼락맞은 얼굴로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서 얼굴에 튀는
파편을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우리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귀
를 막고 이맛살를 찌뿌리며 폭발음이 들린 곳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옆에는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리고 샹드리에는 겨냥하던 바로 그 모습
을 잠깐 유지하고있던 엑셀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시선을 받으며 발을 내리곤
건 블레이드를 든 팔을 높이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건 블레이드입니다. 무기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아시겠지요? 이 검은
이 세계에 단 두자루뿐인 검입니다. 하나는 나르셀 후작가의 첫 째 따님이신 그
란디아양이 가지고 계시고 그리고 남은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웃나라 세르피즈의 이탄 국왕께서 친필로 나르셀 후작가에 서신을 보
낸 적이 있었지요. 그란디아양이 가지고있는 건 블레이드를 자신에게 넘기지 않
겠냐고, 나르셀 후작가에선 정중하게 그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그때 이탄 국왕께
서 나르셀 후작가에 거론한 건 블레이드의 가격은…."
"이 나라 메르세스의 돈으로 약 5억 8천만 워니 였지요."
이 말은 엑셀이 한 말이 아니고 저 앞 테이블에 앉아있던 어떤 남자의 말이었
다. 그는 엑셀이 들고있는 건 블레이드를 모습을 입을 딱벌리며 바라보고 있었
고, 엑셀은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그러자 콧수염이 멋진 중년 남자는
얼떨결에 그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고개를 든 엑셀은 2억 워니를 내겠다는 제
르갈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5억 8천입니다. 어떻습니까? 양보하시죠. 후작님."
후작의 얼굴은 그야말로 뭐씹은 얼굴이었다. 그는 엑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
다음 시선을 내려 나와 내옆에 앉아있는 이리사를 한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
개를 돌려 이번엔 단상위에서 이런 소란이 있었음에도 항마족쇄가 채워진 손을
들어서 귀를 조금 만지고있던 꼬마 다크엘프를 잠깐 바라봤다가 시선을 내려
우리들을 쳐다보며 이를 갈아대었다. 그리곤 분에 못이겼는지 주먹을 들어서 테
이블을 내려쳤다.
콰앙!
"이런, 제기랄!"
그는 테이블을 노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엑셀을 조금 노려본후 등을 홱
돌려 그 짧은 다리를 놀려 위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걸어가며 소리쳤다.
"카알! 가자! 그냥 집에서 차나 마시는게 나을뻔했어!!"
그리고 그는 툴툴거리며 계단을 올라갔고 그뒤로 가방과 처음에 경매에서 산
가짜 그림을 들고 젊은이 하나가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후작이 사라지자 잠시동안 정적이 흐르던 장내에선 곧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회자가 손을 천천히 들어 엑셀을 가르키더니 조금 더듬대며 말했다.
"오… 5억 8천만의 건 블레이드가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경매장은 고요했다.
사회자는 침을 한번 삼키더니 손을 높이 들어올리곤 다크엘프를 가르켰다가 다
시 엑셀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 다크엘프는 저 은발 손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여러분 저 손님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하지만 그 누구도 박수나 환호를 지르진 않았다. 사회자는 조금 무안해진 얼굴
로 옆에 서있는 경비병들을 불러 꼬마 다크 엘프를 엑셀에게 인도하도록 했고
곧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다크엘프와 아까 그 눈이 벌게져있던 경비
병, 그리고 그 차가운 눈의 제복입은 남자가 우리앞에 섰다. 눈이 벌게져있던
경비병은 이번엔 우릴 쳐죽일 것 같은 얼굴을 한채로 묵묵히 서있다가 옆의 차
가운 눈을 한 남자가 그의 어깨를 툭치자 잔뜩 억눌린 말투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낙찰, 받으신 경매품을, …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낙찰금은
…빠드득~ …죄송합니다. 네, 선불입니다."
방금 전 그 소리, 이빨 가는…. 소리같은데?
그러면서 그는 다크 엘프의 어깨에 손을 얻어서 엑셀쪽으로 살짝 밀었고 그러
자 꼬마 다크엘프는 천천히 걸어서 보다는 밀려서, 엑셀의 바로 앞까지 걸어가
더니 걸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엑셀 역시 그 꼬마를 조용
히 내려다보았고 잠시동안 그렇게 둘은 눈싸움이라고 불러줘야 할 정도로 서로
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리고 잠시 후 엑셀이 입술을 올리며 씨익 웃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산 주인으로서 너의 이름을 알고싶다."
항마족쇄 때문에 두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로 고개를 삐딱하게 만들어 엑셀을
올려다보던 꼬마 엘프는 고개를 든채로 그를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내 이름은…."
작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에피소드 본문 복사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