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다크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장미 한송이 2
내 마누라는 엘프.
22화. 다크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장미 한송이 2
"뭘 그렇게 보나?"
"……."
프리드는 엑셀의 말을 듣고는 슬금슬금 이리사의 등뒤로 몸을 숨기고 그녀의
허벅지 뒤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로 엑셀을 올려다보며 엘프어로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리사는 약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자신의 다리에 몸을
숨기고있는 프리드를 달래며 말했다.
"당신의 원래 모습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엘프는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있다고 하지 않았나?"
엑셀은 자신의 몸을 덥고있는 커다란 망토에서 후드를 끌어 올려 뒤집어쓰며
말했고 그 모습을 보고있던 르네가 엑셀의 물음에 답했다.
"진실을 보는 눈은 성인식이 지나야 그 능력을 발휘한답니다. 엘프들의 아이는
워낙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성인식 이전엔 그렇게 별다른 기술 같은 것은 배
우지 않아요."
"하지만, 성인식을 치루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순간부터는 하나의 성
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모두 배우게 되지요. 그 자신의 부모로부터."
르네의 말을 듣고있던 이리사가 좀더 말을 더했고, 머리에 후드를 쓴 채 가만히
프리드를 내려다보던 엑셀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시루나? 시루나디스 루니, 디바 카니트. 데릴키드 이이라 라이 드리트미."
그의 말을 들은 프리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옆에선 이리사와 르네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난 그들의 모습을 잠깐 보
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그러자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
는 루나가 시야에 들어왔는데. 그녀는 르네가 구해온 새옷이 몸에 안맞는지 시
선은 창가를 향한 채로 연신 손으로 목 언저리를 잡아당기거나 아니면 바지자
락을 밑으로 끌어내리곤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북풍이 불
어닥치는 것 같은 차가운 말이 날아들었다.
"뭘봐? 당신 마누라나 봐줘, 옆에서 빤히 보고있잖아."
난 루나의 말투에 넌더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르네를 바라보았고 르네는 내 옆
에서서 나와 루나를 번갈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조금 어렵겠군요."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그럴까요?"
"응. 당신과 나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해보면, 루나도 비슷하지 않을까하는데."
내 말에 루나는 고개를 갸웃했고 르네는 방긋 웃으며 내팔을 꼭 껴안더니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와 조용히 속삭였다.
"내 처음 모습을 아직 기억하나요?"
난 그녀의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내는 얼굴, 당황해하는 얼굴, 슬픈 얼굴, 곤란해
하는 얼굴 그리고 당신의 처음 모습들, 모두 다 기억해. 절대로 잊을수없어."
그녀는 입술을 오무리며 눈웃음을 지어보였고 난 그녀의 그런 얼굴을 기억한
다음 빙긋 웃어보였다. 그러던 중 옆에서 얼굴에 붕대를 감고있던 엑셀과 조나
단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잘도 그런말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보군,"
"동감이에요. 언제쯤 철이 들련지."
난 고개를 돌려서 둘에게 인상을 써주었지만, 엑셀과 조나단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선 내 시선을 무시해 버렸다. 옆에서 내팔을 안고있던 르네는 그들에게 빙
긋 미소를 지어줄 뿐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리고 이리사는 프리드의 손을 잡
은채 서서 우리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지어주고있었지만, 그 옆 테이블에 앉아있
던 루나는 쌀쌀맞은 얼굴로 잠깐 우리들을 돌아보더니 그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장난은 그만하고 언제 갈거지? 난 어디든 좋아, 하루빨리 이 빌어먹을 인간의
도시에서 나가고 싶어."
난 그녀의 말버릇을 조금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만으
로 남겨둬야겠다. 왜냐면 그녀는 엘프니까. 다크엘프는 혹 모르지만, 엘프는 내
가 아는 바로는 자신의 가족이 아닌 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을 조금 싫어하는 편이지. 그리고 루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엑셀이 말했다.
"알았다. 자, 준비 됐으면 갑시다."
그말을 듣자 루나는 조금 편한 얼굴을 하더니 곧바로 엘셀의 뒤를 따라 걸어
나갔고 그 뒤로 이리사와 프리드가 손을 꼭잡고 나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우
리들을 배웅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조나단에게 셔츠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보석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여관비랑 기타등등이다."
"항상 보석이네요. 잔돈도 않받아가면서 늘상 이러면 우리야 고맙지만, 그건 그
렇고 르네 누나? 저기 방에 있는 짐들은 또 저번처럼 보내드려요?"
조나단의 말에 르네는 방긋 웃으면서 자신의 목에 손을 넣어 목걸이를 풀어서
녀석의 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부탁해."
"예. 항상 그 시간대에 보낼테니까. 기다리세요."
"알았다. 그럼 다음에 보자꾸나."
"잘가세요. 한 아저씨. 르네 누나. 반년 후에 다시 보자구요."
나와 르네는 조나단에게 작별 인사를 건내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먼저
나와있던 일행들 중 엑셀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음? 타르시스양, 그러고보니 짐들은 다 어쩌실겁니까?"
르네는 그의 말에 내 팔을 안으며 환하게 웃어주었고 나 역시 궁금하다는 얼굴
로 고개를 기울인 복면사내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저녁 시간에 가까워져 분주해보이는 길을 따라 외성까지 걸어
갔고 그동안 엑셀과 르네를 포함한 아가씨들은 거대한 몸과 하나같이 머리에
두르고있는 두건 때문에 적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특히나, 루나는 자신에게 손
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에게 인상을 쓰면서 조용히 손을 들어
마법을 날리려고해서 나와 르네가 상당한 애를 먹어야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들은 외성의 검문을 통과해 각자의 보금자리가 있는 버려진 숲속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숲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큼직한 바위에 걸터앉아 얼굴에 감겨있는 붕대에 손을 옮기던 엑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조용하군."
"그거야. 당신같은 변태가 있기 때문이지. 어디 몬스터가 변태에게 달려들겠어?"
"변태변태 하는데 내 어디가 변태로 보이나? 꼬마."
얼굴에 감아두었던 붕대를 끌러내고있는 엑셀에게 숲속을 둘러보던 루나가 비
아냥 거리는 투로 말했고 그리고 둘은 서로 능글능글한 얼굴을 한채로 말싸움
을 하기 시작했다.
"꼬마? 난 이제 13살이야. 꼬마가 아니라고."
"꼬마를 꼬마라고 부르는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리고, 13살이라고? 미안
하지만, 네가 변태라고 부르는 난 몇살로 보이나? 적어도 난 너보다 많은 양의
보름달이 뜨고 지는 것을 보았다."
"나이 많은게 대수야? 침을 질질흘리며 병사들을 두들겨 댄게 누군데? 아무리
봐도 그때 당신의 눈은 변태의 눈이었어."
그러자 붕대를 풀어내던 엑셀의 손가락이 조금 움찔하더니 다시 천천히 움직이
기 시작해고 엑셀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허리에도 오지않는 루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언제 침까지 흘리며 그들을 두들겼단 말이냐? 난 그저 재미있어서 그런
것 뿐이다. 힘없는 인간 주제에 감히 그들보도 훨씬 우월한 엘프들를 잡아 거래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그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려는 우리에게 무기를 뽑아든 인
간들의 생각이 황당하고 재미있어서 그들을 좀 가지고 놀았다. 그런 그때의 내
모습이 네 눈엔 변태 같았다면, 뭐 좋아 인정하지.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떻단 말
인가? 가슴도 쪼그만 꼬마 엘프야."
그말이 결정타였다. 가슴이 쪼그맣다는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들은 루나는 차분한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오르더니 입을 꾹닫고 고개를 팩 돌렸고 엑셀은 승리감
에 젖은 얼굴로 나와 르네 그리고 이리사가 앉아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곤 두
손을 번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겼다."
"…축하해."
난 귀족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흉내내며 그렇게 말했고 엑셀의 옆에있던 루
나는 엑셀과 우리에게 등을 돌린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분을 참고있는건
가? 난 작은 루나의 등을 바라보며 빙긋 웃어준다음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풀림, 여기저기 커다란 나무가 자신들의 키를 자랑하듯이 우리들을 내
려다보고있고 근처 나무에는 커다란 덩굴식물이 타고올라가 여기 저기에 매달
려있었다. 그리고 가을인지라, 주변엔 낙엽같은 것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땅바닥
에 가득 쌓여 바람이 불때마다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야.
단지 이곳이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못한다는 버려진 숲이란 것을 제외하
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 숲속이라 해가 빨리
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숲속에있는 몬스터들이 우리일행 가까이 오지않
는다는거다.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몇번 몬스터들을 만나적은 있었지만, 덤벼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방금전에 만났던 식인 원숭이 떼들도 그랬다. 이 근처에서
제일 귀찮은 녀석들인데. 생긴 건 원숭이 같은 녀석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적들
을 공격해 잡아먹는다. 녀석들은 갑자기 몰려나와 우리들을 잠깐 쳐다보더니 곧
바로 뒤도 않돌아보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난 내 옆에 앉아서 수통에서 물을따
라 이리사의 옆에 기대어 있는 프리드에게 컵을 건내고있는 르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몬스터들이 다가오지 않아. 잘된일이지만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군, 당신 뭐
짐작가는거 없어?"
프리드에게 컵을 건내준 르네는 수통의 뚜껑을 닫은 다음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루나를 가르키며 말했다.
"루나 덕분이에요. 몬스터들은 보통엘프는 공격해도 다크엘프만은 공격하지 않
거든요. 이유는 모르지만, 그리고 또하나…,"
호오, 루나 덕분에 공격받지않은 거라고? 그런데 또 하나라니? 내가 궁금한 얼
굴로 르네를 바라보자 르네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빙긋 미소지으면서 루나의
옆에서 팔짱을 낀채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있는 엑셀을 가르켰다.
"그들을 엑셀을 보더니 그대로 겁에 질린 모습으로 날아났어요. 아까 원숭이떼
가 그것인데. 엑셀, 설명해줄수있나요?"
고개는 옆으로 돌려 숲속을 향한채 눈과 한쪽 귀만 우리쪽으로 향해있던 엑셀
은 르네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고 계셨나요?"
르네는 손을 들어 옆에 앉아있는 이리사를 가르키며 말했다.
"저도 이리사에게 들었어요."
엑셀은 이리사를 돌아보았고 이리사는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그는 목
뒤의 갈기를 조금 벅벅 긁더니 말했다.
"예. 맞습니다. 저 때문이지요. 놈들중 몇몇이 날 기억하고있어서 일겁니다."
"기억하다니?"
내말에 루나도 등을 돌리고 그를 올려다보았고 엑셀은 큰 어깨를 으쓱이며 말
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놈들이 계속 습격해 오더군, 화가나서 숲속을 한바탕
휘젖고 다녔지. 아마 그때 내 모습을 기억하는 놈들이 있어서 일거야."
우리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보단 무식하게 일을 해결하는 스타일
이군. 적당히 주위놈들만 쫓아내면 될 것을 이 숲속을 모조리 휘젖고 다녔다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르네가 옆에 앉아있는 이리사를 바라보며 말했
다.
"이제 조그만 더 가면 되답니다. 참, 저희 집엔 욕탕도 있으니까. 오랜만에 목욕
하시는 것도 괜찮겠군요."
그 말을 들은 이리사는 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옆에 앉아있는 프리
드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어서가요."
그리고 엑셀에게 말싸움에서 밀려나 화가 나있던 루나도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우리쪽으로 다가왔고 엑셀은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풋하며 웃었다.
그리고 나와 르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방긋 웃어보인 다음 자리에서 일
어나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아까 숲속으로 들어왔던 형태대로 그러니까.
나와 르네가 앞장을 서고 그뒤에 이리사와 프리드, 그리고 엑셀과 루나 이런식
으로 대형을 만들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걸어서 가는 것이긴 하지만, 일행의 과
반수가 엘프이고 늑대인간에 엘프와 경주를 벌일 정도의 인간 남자가 이루어진
파티니까. 굉장한 속도로 걸어 나갈수있었다. 단지, 문제가 하나있다면 네명의
엘프들중 두명이 어린아이란 것이다. 간혹 우리들의 걸음을 따라오지못한 프리
드가 넘어지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철푸덕~!
"프리드. 괜찮니?"
보통 인간식이었다면 아마도 이리사는 후다닥 프리드에게 달려가 녀석을 들어
올려 어디 다친곳없나 하고 살펴보며 수선을 떨었겠지만, 엘프들의 방식은 남달
랐다. 이리사는 넘어진 프리드에게 다가가더니 조용히 녀석의 앞에 앉아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엄마손 잡고 일어서렴. 프리드는 혼자서 일어설수 있지?"
"응. …아악~"
이리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던 프리드는 갑자기 이를 악물며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고 그러자 이리사는 눈꼬리를 내린 얼굴로 말했다.
"다리. 다쳤니?"
"…으응."
프리드는 이마를 찌뿌리며 무릅을 꿇은채 발목을 감싸쥐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러자 뒤에서 물끄러미 프리들의 뒷통수를 바라보던 루나가 팔짱을 하며 중얼거
렸다.
"이런, 다쳐서 엄마한테 업혀 가야겠네? 누군 좋겠다."
나와 르네는 뒤에 있는 루나를 바라보았고 루나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슬쩍 돌
리더니 엑셀의 이럴 때 잘하는 짓을 흉내 내어 보였고(어깨 으쓱) 우리들은 조
금 씁쓸이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리사는 그저 작은 미소만 지은채
자신의 아들에게 손을 내밀고있었지만, 정작 프리드는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
보고있었다. 루나는 그런 프리드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더니 허리에 손을 얻고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난 자신의 다리로 걷지 않고 남의 다리로만 걸으려는 사람이 제일 싫어,"
그말을 들은 프리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에서 앉아서 손을 내밀고있
는 이리사를 바라보았고 이리사는 루나가 무슨 말을 하던 그저 조용한 미소를
머금 채로 아들에게 손을 내밀고있었다.
"프리드? 엄마 손 잡아, 어서 집에 돌아가야지?"
자신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이리사의 하얀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프리드는
발목을 잡고있던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한쪽으로 밀어내었다. 이리사는 약간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뜨며 밀려진 자신의 손을 잡고 프리드를 멀뚱히 바라보
았고 그리고 프리드는 혼자서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 이익!"
몇번 휘청거리며 넘어질뻔도 했지만, 녀석은 이를 악물며 겨우 일어설수 있었고
옆에선 이리사가 약한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녀석은 고
개를 뒤로 슥 돌리더니 씨익 웃으며 더듬거리는 말로 입을 열었다.
"나, 난 이제, 내 다리로 걸어가, 남의…. 남의 다리로, 걷지않아. 다,
다시는… 다시는 내, 어…, 내 소중한 것을, 잃고 울지 않을거야."
"그래. 장하구나."
루나는 쌀쌀맞게 말을 내던진 다음 그대로 그들을 지나쳐 먼저 앞으로 걸어 나
갔고 이리사는 자신의 다리로 서있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앞서서 걸어가는 루나의 등을 쳐다본 후 다시 고개를 돌리곤 작은 미소를 지으
면서 머리에 두르고있던 두건을 풀어서 프리드의 발목에 감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너의 다리로 일어서겠다는 내 말
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만, 그것은 우리 식이 아니란다. 그러니 가끔은 이렇게
남이 내미는 손을 감사히 잡을줄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알겠니?"
"응, 엄마."
프리드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리사는 프리드와 시선을 맞춘채로 따
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프리드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는 약간은 절
뚝 거리며 걸음를 옮겼다.
우리와 함께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있던 엑셀은 재미있다는 얼굴을 해
보이며 말했다.
"일으켜 세워주지 않고 손을 내밀어주며 아이가 스스로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
길 바란다. 이거, 어쩌면…."
엑셀은 고개를 슬쩍 돌려서 르네를 바라보며 말했고 르네는 뒤도 돌아보지않은
채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예. 맞아요. 저희는 어릴때부터 저런 식으로 부모님들께 교육을 받아요. 전부
도와주지 않아요. 대신 조금씩 일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작은 도움을 줄뿐, 그렇
게 어릴때부터 작은 도움으로 일을 해결해 나가다보면 한사람의 성인 되어 남
이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난 그녀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거였군, 그런거였어. 인간과 엘프
가 다른점이 그런거였어. 갑자기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이거, 르네에게 키스라
도 해주고 싶지만, 엑셀이 있어서 안돼겠는걸? 엑셀은 르네의 말을 듣더니 고개
를 끄덕이며 말했다.
"으음, 그런건가요? 어릴때부터 교육을 시켜서 한사람의 완전한 성인을 만든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도 빨리 가도록하지요. 앞에 간 사람들은 당신들
의 집이 어딘지 모르잖습니까."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앞에서 걸어가고있는 루나와 이리사들의 뒤를 따
라 걸어갔다. 하늘을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 바람이 조금 차갑게 부는게 오
늘 저녁은 제법 쌀쌀할 것 같다.
오늘 저녁안에는 집에 도착해야 되겠는데….
22화. 다크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장미 한송이 2
"뭘 그렇게 보나?"
"……."
프리드는 엑셀의 말을 듣고는 슬금슬금 이리사의 등뒤로 몸을 숨기고 그녀의
허벅지 뒤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로 엑셀을 올려다보며 엘프어로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리사는 약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자신의 다리에 몸을
숨기고있는 프리드를 달래며 말했다.
"당신의 원래 모습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엘프는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있다고 하지 않았나?"
엑셀은 자신의 몸을 덥고있는 커다란 망토에서 후드를 끌어 올려 뒤집어쓰며
말했고 그 모습을 보고있던 르네가 엑셀의 물음에 답했다.
"진실을 보는 눈은 성인식이 지나야 그 능력을 발휘한답니다. 엘프들의 아이는
워낙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성인식 이전엔 그렇게 별다른 기술 같은 것은 배
우지 않아요."
"하지만, 성인식을 치루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순간부터는 하나의 성
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모두 배우게 되지요. 그 자신의 부모로부터."
르네의 말을 듣고있던 이리사가 좀더 말을 더했고, 머리에 후드를 쓴 채 가만히
프리드를 내려다보던 엑셀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시루나? 시루나디스 루니, 디바 카니트. 데릴키드 이이라 라이 드리트미."
그의 말을 들은 프리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옆에선 이리사와 르네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난 그들의 모습을 잠깐 보
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그러자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
는 루나가 시야에 들어왔는데. 그녀는 르네가 구해온 새옷이 몸에 안맞는지 시
선은 창가를 향한 채로 연신 손으로 목 언저리를 잡아당기거나 아니면 바지자
락을 밑으로 끌어내리곤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북풍이 불
어닥치는 것 같은 차가운 말이 날아들었다.
"뭘봐? 당신 마누라나 봐줘, 옆에서 빤히 보고있잖아."
난 루나의 말투에 넌더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르네를 바라보았고 르네는 내 옆
에서서 나와 루나를 번갈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조금 어렵겠군요."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그럴까요?"
"응. 당신과 나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해보면, 루나도 비슷하지 않을까하는데."
내 말에 루나는 고개를 갸웃했고 르네는 방긋 웃으며 내팔을 꼭 껴안더니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와 조용히 속삭였다.
"내 처음 모습을 아직 기억하나요?"
난 그녀의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내는 얼굴, 당황해하는 얼굴, 슬픈 얼굴, 곤란해
하는 얼굴 그리고 당신의 처음 모습들, 모두 다 기억해. 절대로 잊을수없어."
그녀는 입술을 오무리며 눈웃음을 지어보였고 난 그녀의 그런 얼굴을 기억한
다음 빙긋 웃어보였다. 그러던 중 옆에서 얼굴에 붕대를 감고있던 엑셀과 조나
단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잘도 그런말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보군,"
"동감이에요. 언제쯤 철이 들련지."
난 고개를 돌려서 둘에게 인상을 써주었지만, 엑셀과 조나단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선 내 시선을 무시해 버렸다. 옆에서 내팔을 안고있던 르네는 그들에게 빙
긋 미소를 지어줄 뿐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리고 이리사는 프리드의 손을 잡
은채 서서 우리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지어주고있었지만, 그 옆 테이블에 앉아있
던 루나는 쌀쌀맞은 얼굴로 잠깐 우리들을 돌아보더니 그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장난은 그만하고 언제 갈거지? 난 어디든 좋아, 하루빨리 이 빌어먹을 인간의
도시에서 나가고 싶어."
난 그녀의 말버릇을 조금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만으
로 남겨둬야겠다. 왜냐면 그녀는 엘프니까. 다크엘프는 혹 모르지만, 엘프는 내
가 아는 바로는 자신의 가족이 아닌 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을 조금 싫어하는 편이지. 그리고 루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엑셀이 말했다.
"알았다. 자, 준비 됐으면 갑시다."
그말을 듣자 루나는 조금 편한 얼굴을 하더니 곧바로 엘셀의 뒤를 따라 걸어
나갔고 그 뒤로 이리사와 프리드가 손을 꼭잡고 나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우
리들을 배웅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조나단에게 셔츠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보석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여관비랑 기타등등이다."
"항상 보석이네요. 잔돈도 않받아가면서 늘상 이러면 우리야 고맙지만, 그건 그
렇고 르네 누나? 저기 방에 있는 짐들은 또 저번처럼 보내드려요?"
조나단의 말에 르네는 방긋 웃으면서 자신의 목에 손을 넣어 목걸이를 풀어서
녀석의 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부탁해."
"예. 항상 그 시간대에 보낼테니까. 기다리세요."
"알았다. 그럼 다음에 보자꾸나."
"잘가세요. 한 아저씨. 르네 누나. 반년 후에 다시 보자구요."
나와 르네는 조나단에게 작별 인사를 건내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먼저
나와있던 일행들 중 엑셀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음? 타르시스양, 그러고보니 짐들은 다 어쩌실겁니까?"
르네는 그의 말에 내 팔을 안으며 환하게 웃어주었고 나 역시 궁금하다는 얼굴
로 고개를 기울인 복면사내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저녁 시간에 가까워져 분주해보이는 길을 따라 외성까지 걸어
갔고 그동안 엑셀과 르네를 포함한 아가씨들은 거대한 몸과 하나같이 머리에
두르고있는 두건 때문에 적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특히나, 루나는 자신에게 손
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에게 인상을 쓰면서 조용히 손을 들어
마법을 날리려고해서 나와 르네가 상당한 애를 먹어야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들은 외성의 검문을 통과해 각자의 보금자리가 있는 버려진 숲속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숲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큼직한 바위에 걸터앉아 얼굴에 감겨있는 붕대에 손을 옮기던 엑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조용하군."
"그거야. 당신같은 변태가 있기 때문이지. 어디 몬스터가 변태에게 달려들겠어?"
"변태변태 하는데 내 어디가 변태로 보이나? 꼬마."
얼굴에 감아두었던 붕대를 끌러내고있는 엑셀에게 숲속을 둘러보던 루나가 비
아냥 거리는 투로 말했고 그리고 둘은 서로 능글능글한 얼굴을 한채로 말싸움
을 하기 시작했다.
"꼬마? 난 이제 13살이야. 꼬마가 아니라고."
"꼬마를 꼬마라고 부르는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리고, 13살이라고? 미안
하지만, 네가 변태라고 부르는 난 몇살로 보이나? 적어도 난 너보다 많은 양의
보름달이 뜨고 지는 것을 보았다."
"나이 많은게 대수야? 침을 질질흘리며 병사들을 두들겨 댄게 누군데? 아무리
봐도 그때 당신의 눈은 변태의 눈이었어."
그러자 붕대를 풀어내던 엑셀의 손가락이 조금 움찔하더니 다시 천천히 움직이
기 시작해고 엑셀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허리에도 오지않는 루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언제 침까지 흘리며 그들을 두들겼단 말이냐? 난 그저 재미있어서 그런
것 뿐이다. 힘없는 인간 주제에 감히 그들보도 훨씬 우월한 엘프들를 잡아 거래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그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려는 우리에게 무기를 뽑아든 인
간들의 생각이 황당하고 재미있어서 그들을 좀 가지고 놀았다. 그런 그때의 내
모습이 네 눈엔 변태 같았다면, 뭐 좋아 인정하지.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떻단 말
인가? 가슴도 쪼그만 꼬마 엘프야."
그말이 결정타였다. 가슴이 쪼그맣다는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들은 루나는 차분한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오르더니 입을 꾹닫고 고개를 팩 돌렸고 엑셀은 승리감
에 젖은 얼굴로 나와 르네 그리고 이리사가 앉아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곤 두
손을 번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겼다."
"…축하해."
난 귀족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흉내내며 그렇게 말했고 엑셀의 옆에있던 루
나는 엑셀과 우리에게 등을 돌린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분을 참고있는건
가? 난 작은 루나의 등을 바라보며 빙긋 웃어준다음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풀림, 여기저기 커다란 나무가 자신들의 키를 자랑하듯이 우리들을 내
려다보고있고 근처 나무에는 커다란 덩굴식물이 타고올라가 여기 저기에 매달
려있었다. 그리고 가을인지라, 주변엔 낙엽같은 것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땅바닥
에 가득 쌓여 바람이 불때마다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야.
단지 이곳이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못한다는 버려진 숲이란 것을 제외하
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 숲속이라 해가 빨리
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숲속에있는 몬스터들이 우리일행 가까이 오지않
는다는거다.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몇번 몬스터들을 만나적은 있었지만, 덤벼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방금전에 만났던 식인 원숭이 떼들도 그랬다. 이 근처에서
제일 귀찮은 녀석들인데. 생긴 건 원숭이 같은 녀석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적들
을 공격해 잡아먹는다. 녀석들은 갑자기 몰려나와 우리들을 잠깐 쳐다보더니 곧
바로 뒤도 않돌아보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난 내 옆에 앉아서 수통에서 물을따
라 이리사의 옆에 기대어 있는 프리드에게 컵을 건내고있는 르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몬스터들이 다가오지 않아. 잘된일이지만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군, 당신 뭐
짐작가는거 없어?"
프리드에게 컵을 건내준 르네는 수통의 뚜껑을 닫은 다음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루나를 가르키며 말했다.
"루나 덕분이에요. 몬스터들은 보통엘프는 공격해도 다크엘프만은 공격하지 않
거든요. 이유는 모르지만, 그리고 또하나…,"
호오, 루나 덕분에 공격받지않은 거라고? 그런데 또 하나라니? 내가 궁금한 얼
굴로 르네를 바라보자 르네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빙긋 미소지으면서 루나의
옆에서 팔짱을 낀채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있는 엑셀을 가르켰다.
"그들을 엑셀을 보더니 그대로 겁에 질린 모습으로 날아났어요. 아까 원숭이떼
가 그것인데. 엑셀, 설명해줄수있나요?"
고개는 옆으로 돌려 숲속을 향한채 눈과 한쪽 귀만 우리쪽으로 향해있던 엑셀
은 르네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고 계셨나요?"
르네는 손을 들어 옆에 앉아있는 이리사를 가르키며 말했다.
"저도 이리사에게 들었어요."
엑셀은 이리사를 돌아보았고 이리사는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그는 목
뒤의 갈기를 조금 벅벅 긁더니 말했다.
"예. 맞습니다. 저 때문이지요. 놈들중 몇몇이 날 기억하고있어서 일겁니다."
"기억하다니?"
내말에 루나도 등을 돌리고 그를 올려다보았고 엑셀은 큰 어깨를 으쓱이며 말
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놈들이 계속 습격해 오더군, 화가나서 숲속을 한바탕
휘젖고 다녔지. 아마 그때 내 모습을 기억하는 놈들이 있어서 일거야."
우리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보단 무식하게 일을 해결하는 스타일
이군. 적당히 주위놈들만 쫓아내면 될 것을 이 숲속을 모조리 휘젖고 다녔다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르네가 옆에 앉아있는 이리사를 바라보며 말했
다.
"이제 조그만 더 가면 되답니다. 참, 저희 집엔 욕탕도 있으니까. 오랜만에 목욕
하시는 것도 괜찮겠군요."
그 말을 들은 이리사는 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옆에 앉아있는 프리
드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어서가요."
그리고 엑셀에게 말싸움에서 밀려나 화가 나있던 루나도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우리쪽으로 다가왔고 엑셀은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풋하며 웃었다.
그리고 나와 르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방긋 웃어보인 다음 자리에서 일
어나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아까 숲속으로 들어왔던 형태대로 그러니까.
나와 르네가 앞장을 서고 그뒤에 이리사와 프리드, 그리고 엑셀과 루나 이런식
으로 대형을 만들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걸어서 가는 것이긴 하지만, 일행의 과
반수가 엘프이고 늑대인간에 엘프와 경주를 벌일 정도의 인간 남자가 이루어진
파티니까. 굉장한 속도로 걸어 나갈수있었다. 단지, 문제가 하나있다면 네명의
엘프들중 두명이 어린아이란 것이다. 간혹 우리들의 걸음을 따라오지못한 프리
드가 넘어지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철푸덕~!
"프리드. 괜찮니?"
보통 인간식이었다면 아마도 이리사는 후다닥 프리드에게 달려가 녀석을 들어
올려 어디 다친곳없나 하고 살펴보며 수선을 떨었겠지만, 엘프들의 방식은 남달
랐다. 이리사는 넘어진 프리드에게 다가가더니 조용히 녀석의 앞에 앉아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엄마손 잡고 일어서렴. 프리드는 혼자서 일어설수 있지?"
"응. …아악~"
이리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던 프리드는 갑자기 이를 악물며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고 그러자 이리사는 눈꼬리를 내린 얼굴로 말했다.
"다리. 다쳤니?"
"…으응."
프리드는 이마를 찌뿌리며 무릅을 꿇은채 발목을 감싸쥐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러자 뒤에서 물끄러미 프리들의 뒷통수를 바라보던 루나가 팔짱을 하며 중얼거
렸다.
"이런, 다쳐서 엄마한테 업혀 가야겠네? 누군 좋겠다."
나와 르네는 뒤에 있는 루나를 바라보았고 루나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슬쩍 돌
리더니 엑셀의 이럴 때 잘하는 짓을 흉내 내어 보였고(어깨 으쓱) 우리들은 조
금 씁쓸이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리사는 그저 작은 미소만 지은채
자신의 아들에게 손을 내밀고있었지만, 정작 프리드는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
보고있었다. 루나는 그런 프리드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더니 허리에 손을 얻고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난 자신의 다리로 걷지 않고 남의 다리로만 걸으려는 사람이 제일 싫어,"
그말을 들은 프리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에서 앉아서 손을 내밀고있
는 이리사를 바라보았고 이리사는 루나가 무슨 말을 하던 그저 조용한 미소를
머금 채로 아들에게 손을 내밀고있었다.
"프리드? 엄마 손 잡아, 어서 집에 돌아가야지?"
자신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이리사의 하얀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프리드는
발목을 잡고있던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한쪽으로 밀어내었다. 이리사는 약간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뜨며 밀려진 자신의 손을 잡고 프리드를 멀뚱히 바라보
았고 그리고 프리드는 혼자서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 이익!"
몇번 휘청거리며 넘어질뻔도 했지만, 녀석은 이를 악물며 겨우 일어설수 있었고
옆에선 이리사가 약한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녀석은 고
개를 뒤로 슥 돌리더니 씨익 웃으며 더듬거리는 말로 입을 열었다.
"나, 난 이제, 내 다리로 걸어가, 남의…. 남의 다리로, 걷지않아. 다,
다시는… 다시는 내, 어…, 내 소중한 것을, 잃고 울지 않을거야."
"그래. 장하구나."
루나는 쌀쌀맞게 말을 내던진 다음 그대로 그들을 지나쳐 먼저 앞으로 걸어 나
갔고 이리사는 자신의 다리로 서있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앞서서 걸어가는 루나의 등을 쳐다본 후 다시 고개를 돌리곤 작은 미소를 지으
면서 머리에 두르고있던 두건을 풀어서 프리드의 발목에 감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너의 다리로 일어서겠다는 내 말
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만, 그것은 우리 식이 아니란다. 그러니 가끔은 이렇게
남이 내미는 손을 감사히 잡을줄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알겠니?"
"응, 엄마."
프리드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리사는 프리드와 시선을 맞춘채로 따
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프리드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는 약간은 절
뚝 거리며 걸음를 옮겼다.
우리와 함께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있던 엑셀은 재미있다는 얼굴을 해
보이며 말했다.
"일으켜 세워주지 않고 손을 내밀어주며 아이가 스스로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
길 바란다. 이거, 어쩌면…."
엑셀은 고개를 슬쩍 돌려서 르네를 바라보며 말했고 르네는 뒤도 돌아보지않은
채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예. 맞아요. 저희는 어릴때부터 저런 식으로 부모님들께 교육을 받아요. 전부
도와주지 않아요. 대신 조금씩 일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작은 도움을 줄뿐, 그렇
게 어릴때부터 작은 도움으로 일을 해결해 나가다보면 한사람의 성인 되어 남
이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난 그녀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거였군, 그런거였어. 인간과 엘프
가 다른점이 그런거였어. 갑자기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이거, 르네에게 키스라
도 해주고 싶지만, 엑셀이 있어서 안돼겠는걸? 엑셀은 르네의 말을 듣더니 고개
를 끄덕이며 말했다.
"으음, 그런건가요? 어릴때부터 교육을 시켜서 한사람의 완전한 성인을 만든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도 빨리 가도록하지요. 앞에 간 사람들은 당신들
의 집이 어딘지 모르잖습니까."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앞에서 걸어가고있는 루나와 이리사들의 뒤를 따
라 걸어갔다. 하늘을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 바람이 조금 차갑게 부는게 오
늘 저녁은 제법 쌀쌀할 것 같다.
오늘 저녁안에는 집에 도착해야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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