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다크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장미 한송이 10
내 마누라는 엘프
30화. 다크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장미 한송이 10
"…부탁이니 제발 말하지마."
"다크엘프다! 으와! 이럴수가!"
루나의 부탁은 지금 그녀를 보고 호들갑을 떨고있는 제프에게 완전히 무시당했
고 루나는 인상을 쓰며 그를 제지하기 위해 들어올린 손을 이마로 가져다 대고
있었다.
"이제 나온 거니?"
"밖이 시끄러워서 더 잘수가 없었어. 그보다 그 인간 좀 말려봐 턱빠지겠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제프는 입을 크게 벌린 모습으로 손가락을
들어 루나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돌아보자 곧바로 입을 다물고 손을 내
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궁금한게 있는데 대답해 주쇼."
"뭡니까?"
그는 손을들어 루나를 가르키며 말했다.
"당신 딸이요?"
난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루나가 내 딸이라니 그럼 뭐야? 엘프와 인간사이에선
다크엘프가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나르쉬양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에
서있던 루나는 이마를 찡그린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있었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르쉬양은 빙긋 웃는 얼굴로 우리들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
과 내 웃음을 본 제프는 이마에 세로 주름을 만들어 보이더니 다시 한번 더 말
했다.
"웃지만 말고 좀 가르쳐주쇼. 진짜요?"
난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고 대신 루나가 하얀
이를 들어내며 그에게 말했다.
"내 어디가 인간의 피를 이어받은 것처럼 보이나, 비록 인정할순 없지만 그래도
난 내가 다크엘프란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디서 이 나를 너처럼 약하고
겁많은 보통인간에 비유하는거냐."
루나의 차갑고 분노와 증오가 적절히 섞여있는 말투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계속 인간들에게 잡혀있었으니까. 그에대한 증오는 금방 사라질 순 없겠지. 어
쨌든 버림만 받아온 다크엘프의 말에 제프는 화를 내기는커녕 상당히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왔다. 그는 이를 들어내고 독설을 내뱉는 루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
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예쁜데 입은 거친 꼬마군."
"꼬마? 겨우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 주제에 나보고 꼬마라고?
"100년도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 너보단 내가 더 나이가 많아. 꼬마야."
그말에 루나는 "칫" 하는 소릴 내며 고개를 돌렸고 제프는 능글능글 웃으며 말
했다.
"난 알아, 엘프나 인간이나 어릴 땐 다 똑같다는거, 둘 다 어릴 땐 같지만 성인
이 되면 달라지기 시작한다지? 엘프는 성인 되면 그때부터 몸의 시간이 멈추고
죽을때까지 천천히 나이를 먹어, 그런데 인간은 그런 것 없이 계속 같은 속도로
시간이 흘러서 결국엔 100년도 못돼서 꼬부랑 늙은이가 돼서 죽지. 그리고 여기
서 유감스러운 것은 보통 사람들은 어린 엘프 역시 보통 인간의 아이보다 나이
가 훨씬 많은 줄 안다는거야. 그리고 넌 그걸 이용해서 날 속여먹으려 했고, 어
때 내말이 틀린가?"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래서 제프는 어깨를 으쓱이며 기분 좋은 얼굴을 해
보였다. 엘프를 말로 누른게 그렇게도 즐겁나? 난 그를 한번 뒤돌아 본 다음 루
나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르네는?"
루나는 날 한번 쓱 돌아보더니 손을 들어 부엌을 가르켰다. 으음, 아침 준비중
인가? 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다음 문앞에서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받
고있는 제프에게 말했다.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따라 오십시오."
"으음. 알았수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우리쪽으로 걸어오다가 나르쉬의 등위에서 가만
히 서있는 두 고렘들을 힐끗 바라보더니 오다말고 제자리에 멈춰서서 앞에 앉
아있는 나르쉬에게 말했다.
"나르쉬양? 부디 제 안전을 보장해 주십시오."
나르쉬는 방긋 웃으며 손을 들어올려서 흔들었다.
"미르, 칼리? 공격하면 안돼."
"크르르르르…."
나르쉬의 말에 두 고렘은 처음 칼이 명령했던거완 달린 숨소리 비슷한 반응을
보였고 이에 나르쉬는 손을 내리고 제프에게 말했다.
"됐어요. 공격하지 않을겁니다."
그녀의 말에 제프는 한숨을 조금 내쉬며 한심한 얼굴로 두 고렘들을 힐끔 바라
보더니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위에 올려져있는 자신의 배낭을 집어들며 말했
다.
"당신은 자러 안갈거요? 피곤하지 않으슈?"
"아. 괜찮아요. 전 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뭐, 맘대로 하쇼. 어차피 여기서 그걸 찾는동안은 당신이 할 일은 없을테니까."
그녀는 쓴 웃음을 지으며 제프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냥 고개만 슬쩍 끄덕이곤
2층 계단으로 향하며 말했다.
"뭐하는 거요? 빨리 방이나 가르쳐 주쇼."
"아, 예."
내가 그의 뒤를 따라 2층 계단으로 올라가자 뒤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르네가 아침 먹을 거니까. 이리사랑 그 녀석도 데리고 오라더군."
"알았다."
난 홀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루나에게 손을 들어주곤 2층 복도를 걸어 들어갔고
내뒤론 한손에 배낭을 든 제프가 따라왔다. 방은 가까운 순서대로 주기로 르네
와 약속했으니까. 이리사들이 묶고있는 방 옆은 칼이 있을거고, 그럼 이방은 비
었겠군. 난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에서 오른쪽 네 번째 방의 문을 열었고 그러자
깔끔하게 정돈된 빈방이 모습을 들어냈다.
"이 방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럼."
"아, 고맙시다. 주인장, 그리고 점심시간에 식사랑 도시락 4개 좀 부탁합시다."
도시락 4개? 어디에 나갈 참인가?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시락 4개요. 알겠습니다."
그는 씩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았고 난 곧바로 몸을 돌려 이리사들
을 부르러 갔다. 으음, 오늘은 왠지 할 일이 많은 것 같아. 그러던 중 난 어느새
이리사들이 묶고있는 방문 앞에 도착할수있었고 그리곤 헛기침을 조금 한 다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냥 문앞에서 이야기하려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잠시 기다리니 곧
문이 열리며 프리드가 나와 날 올려다보았다. 난 녀석에서 손을 들어 보이며 싱
긋 웃어보였다. 흐음, 그러고보니 입고있는 옷이 제법 잘 어울리는걸?
"여어. 좋은 아침이다. 네 어머닌 일어나셨니?"
"아니, 어머니는 아직이다. 너무 피곤했었나 보다. 계속 잔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군, 그땐 꼭 잡아먹을 듯한 얼굴이었는데. 난
무릎을 구부려 녀석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럼, 어머니가 깨어나면 함께 아침 먹으러 내려올래?"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됐다. 난 어머니 곁에서 좀더 자고 싶다."
"그러니? 알았다. 편하게 쉬거라."
난 녀석을 말을 들은 다음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홀로 내려가려고 몸
을 돌렸다. 그때 갑자기 옆방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잠에 취한 얼굴의 칼이 편
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날 발
견하곤 눈을 비비며 말했다.
"후아아암~ 쩝, 음? 아. 한씨? 궁금한게 있는데 물 주전자 어디있소?"
"테이블위에 있습니다. 못보셨나요?"
난 빙긋 웃으며 말했고 그러자 그는 방안으로 고개를 돌려 테이블위를 바라보
더니 뒷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있었군, 미안합니다. 잘 찾아보지도… 응?"
그는 무심결에 내 앞에 서있는 프리드를 발견하게되었고 난 조금 시끄러워 질
것을 각오해야했다. 그렇게 아무말없이 녀석을 내려다보던 칼은 내 예상과는 반
대로 갑자기 손을 내저으며 헐헐 웃더니 말했다.
"어. 이런, 잠이 덜깼나 보군, 르네양을 본 뒤라 그런지 이 꼬마의 귀가 왠지 커
보이는구만, 으암~ 좀 더 잘테니 점심때 봅시다."
그는 그대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나와 프리드는 서로의 얼굴을 멀
뚱히 바라보다가 그냥 작게 웃어보인 다음 각자 서로가 있어야 할곳으로 돌아
갔다. 홀로 내려가니 마침 부엌에서 나온 르네가 물기 묻은 손을 앞치마로 닦으
며 말했다.
"아. 여보 이리사와 프리드는요?"
"많이 피곤했나봐. 않먹겠다는데?"
"그래요? 그럼 할수없군요. 우리들끼리 먹는 수 밖에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곤 홀에서 나르쉬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고있는 루나를
불렀다.
"루나? 아침먹어요. 그리고 나르쉬양? 함께 드실레요? 음식이 많이 남는데."
"제가 끼어도 돼나요?"
나르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고 르네 역시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녀의 말을 들은 나르쉬는 등뒤에 서있는 고렘들에게 뭐라고 말한 다음 루나
와 함께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 아침식사 우리에게도 좀 나눠주시겠습니까?"
모두의 고개가 가게의 문쪽으로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키가 좀 작고 땅
땅한 남자였는데. 아무리봐도 그 모습이 꼭 드워프 같았다. 홀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고있는 드워프는 여행용의 두꺼운 바지에 롱부츠를 신고 그위에
가죽 자켓과 팔엔 방어용 철갑을 끼고있는 모습으로 머리에는 투구를 쓰지 않
은 채였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아주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청년정도일까? 일단 우리집을 찾은 손님인지라 내가 먼저 인사를 건내려고 입
을 열었을 때였다.
"지만트 아저씨!?"
고개를 돌려보니 루나가 놀란 얼굴로 그 젊은 드워프를 바라보고있었고 그러자
그 드워프역시 루나를 알아보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있었구나. 너 찾느라고 내가 나라안을 다 뒤져 다녔다. 녀석아."
루나는 입을 조금 벌린채 놀란 얼굴을 했고 그 드워프는 씨익 웃는얼굴로 루나
를 바라보고있었다. 찾아 다녔다고? 어쨌든 루나나 저 드워프나 서로를 알고있
는 것 같으니까. 난 조금 앞으로 나서며 그 드워프에게 인사를 건내었다.
"아, 어서오십시오. 전 이곳 주인인 한이라고 합니다. 루나를 아십니까?"
"그럼요 알다마다. 내가 가끔씩 저 녀석 기저귀도 갈아주고 했는데 모를 리가
있나. 파하하하!"
말하는 투를 보니 정말 드워프다운 성격이군, 그리고 순간이지만 루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던 것은 아마 르네와 나밖엔 못봤을 거다. 그보다 가끔 루나의 기
저귀를 갈아줬다면 뭐지? 이웃집에 살던 사람인가? 어쨌든 그녀를 알고있는 사
람이 이렇게 직접 찾아오다니 어떻해야하지? 그때 르네가 그에게 다가가가며
말했다.
"일단 앉으세요.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자 지만트라던 드워프는 르네를 잠시 바라보다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아. 르네양이시죠? 역시 그 사람 이야기대로 정말 아름다운신 분이군요."
"절 아시나요?"
"예. 압니다. 알고서 찾아왔으니까요. 아, 그전에 소개시켜줄 친구가 하나있습니
다. 이 친구도 여기에 찾을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이~ 이봐 들어와!"
알고서 찾아왔다고? 어떻게? 우리가 있는곳을 어떻게 알고서 찾아올수있지? 이
런 의문에 휩싸여있을 때 지만트는 문밖으로 고함을 내 질렀고 그러자 잠시후
활짝 열려진 문으로 새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엘프남자가 고개를 조금 내밀더
니 천천히 문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나와 르네에게
한번씩 고개를 숙여보였고 그리곤 조용히 서서 손에 들고있던 피묻은 검을 대
충 수건으로 닦은 다음 검집에 집어넣었다. 옆에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 만트
란 남자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 마귀할멈 집에서 알게된 사이인데. 지금껏 자기 이름 이외엔 아무말도 하지
않더군요. 목적지가 같아서 어떻게 여기까지 함께왔습니다."
마귀할멈? 어라? 난 지만트란 드워프 남자의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르
네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턱을 손으로 받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얼굴
을 해보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 아직 정정하신가 보군요."
난 그녀의 말에 떱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인가 보군, 아직 살아있
었다니. 대단한 기력이야. 그때 지만트가 옆에서서 묵묵히 2층 계단을 바라보고
있던 엘프 청년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어때? 자네가 찾고있다는 그 소중한 것이 여기있나?"
한동안 말이 없던 그 엘프청년은 천천히 입술을 올리더니 그의 물음에 답했다.
"…아. 있어."
그는 계단을 바라보며 말했고 난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슬쩍 돌려보았다. 내
시야엔 2층난간에서 르네가 빌려준 잠옷을 입고 맨발로 서서 이를 들어낸 채
눈을 날카롭게 뜬 모습으로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있는 이리사가 보였다.
왜 저러지? 이리사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알던가?
그순간 난 참으로 얼빠진 말을 하고말았다.
"어라?"
그리고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리사는 2층에서 내려왔다. 한단한단 조심스럽
게, 잠시후 홀에 내려온 그녀는 곧바로 시선도 돌리지 않고 그 백발 엘프에게로
걸어갔고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잠시후 이리
사는 문앞에서있는 그 백발 엘프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 멈춰서더니 그의 얼
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늦었군요."
"……."
백발엘프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녀를 바라보기만했고 그 모습에 화가 났는지
이리사는 갑자기 주먹을 뒤로 당기더니 그의 얼굴을 그대로 갈겨버렸다.
뻐어억!!
굉장한 소리가 났지만, 신음소리는 들리지않았다. 이리사의 주먹은 여성엘프 못
지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남성엘프의 입가에서 붉은 색의 피를 불러냈지만,
상대는 그런것엔 신경도 쓰지않은 모습으로 꿈쩍도 하지않고 그녀의 주먹을 받
아내었다. 하지만, 이리사는 그걸로 끝낼 생각은 하지않았나보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앙! 빠악! 퍼억! 퍽! 으득!
다양한 종류의 소리와 함께 마지막엔 이가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러는
거지? 이리사에게 맏고있던 남자는 마지막에 턱을 맞아서 그런지 휘청하며 뒤
로 넘어질뻔했지만 다리를 뒤로빼서 몸을 다시 세웠다. 이해할수없어. 그 모습
을 본 이리사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한손으로 그의 멱
살을 잡고는 남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연타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 패도 돼는건가? 난 질린 얼굴이 돼어 그녀를 말리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했지만 무언가가 셔츠의 목깃을 잡는 바람에 뒤로
넘어질뻔하곤 겨우 중신을 잡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엔 르네가 내 셔츠 자
락을 잡은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끼어들면 안돼요. 이건 저 두사람의 일이에요. 우린 끼어들 수 없답니다."
"뭐?"
30화. 다크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장미 한송이 10
"…부탁이니 제발 말하지마."
"다크엘프다! 으와! 이럴수가!"
루나의 부탁은 지금 그녀를 보고 호들갑을 떨고있는 제프에게 완전히 무시당했
고 루나는 인상을 쓰며 그를 제지하기 위해 들어올린 손을 이마로 가져다 대고
있었다.
"이제 나온 거니?"
"밖이 시끄러워서 더 잘수가 없었어. 그보다 그 인간 좀 말려봐 턱빠지겠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제프는 입을 크게 벌린 모습으로 손가락을
들어 루나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돌아보자 곧바로 입을 다물고 손을 내
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궁금한게 있는데 대답해 주쇼."
"뭡니까?"
그는 손을들어 루나를 가르키며 말했다.
"당신 딸이요?"
난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루나가 내 딸이라니 그럼 뭐야? 엘프와 인간사이에선
다크엘프가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나르쉬양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에
서있던 루나는 이마를 찡그린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있었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르쉬양은 빙긋 웃는 얼굴로 우리들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
과 내 웃음을 본 제프는 이마에 세로 주름을 만들어 보이더니 다시 한번 더 말
했다.
"웃지만 말고 좀 가르쳐주쇼. 진짜요?"
난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고 대신 루나가 하얀
이를 들어내며 그에게 말했다.
"내 어디가 인간의 피를 이어받은 것처럼 보이나, 비록 인정할순 없지만 그래도
난 내가 다크엘프란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디서 이 나를 너처럼 약하고
겁많은 보통인간에 비유하는거냐."
루나의 차갑고 분노와 증오가 적절히 섞여있는 말투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계속 인간들에게 잡혀있었으니까. 그에대한 증오는 금방 사라질 순 없겠지. 어
쨌든 버림만 받아온 다크엘프의 말에 제프는 화를 내기는커녕 상당히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왔다. 그는 이를 들어내고 독설을 내뱉는 루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
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예쁜데 입은 거친 꼬마군."
"꼬마? 겨우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 주제에 나보고 꼬마라고?
"100년도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 너보단 내가 더 나이가 많아. 꼬마야."
그말에 루나는 "칫" 하는 소릴 내며 고개를 돌렸고 제프는 능글능글 웃으며 말
했다.
"난 알아, 엘프나 인간이나 어릴 땐 다 똑같다는거, 둘 다 어릴 땐 같지만 성인
이 되면 달라지기 시작한다지? 엘프는 성인 되면 그때부터 몸의 시간이 멈추고
죽을때까지 천천히 나이를 먹어, 그런데 인간은 그런 것 없이 계속 같은 속도로
시간이 흘러서 결국엔 100년도 못돼서 꼬부랑 늙은이가 돼서 죽지. 그리고 여기
서 유감스러운 것은 보통 사람들은 어린 엘프 역시 보통 인간의 아이보다 나이
가 훨씬 많은 줄 안다는거야. 그리고 넌 그걸 이용해서 날 속여먹으려 했고, 어
때 내말이 틀린가?"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래서 제프는 어깨를 으쓱이며 기분 좋은 얼굴을 해
보였다. 엘프를 말로 누른게 그렇게도 즐겁나? 난 그를 한번 뒤돌아 본 다음 루
나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르네는?"
루나는 날 한번 쓱 돌아보더니 손을 들어 부엌을 가르켰다. 으음, 아침 준비중
인가? 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다음 문앞에서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받
고있는 제프에게 말했다.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따라 오십시오."
"으음. 알았수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우리쪽으로 걸어오다가 나르쉬의 등위에서 가만
히 서있는 두 고렘들을 힐끗 바라보더니 오다말고 제자리에 멈춰서서 앞에 앉
아있는 나르쉬에게 말했다.
"나르쉬양? 부디 제 안전을 보장해 주십시오."
나르쉬는 방긋 웃으며 손을 들어올려서 흔들었다.
"미르, 칼리? 공격하면 안돼."
"크르르르르…."
나르쉬의 말에 두 고렘은 처음 칼이 명령했던거완 달린 숨소리 비슷한 반응을
보였고 이에 나르쉬는 손을 내리고 제프에게 말했다.
"됐어요. 공격하지 않을겁니다."
그녀의 말에 제프는 한숨을 조금 내쉬며 한심한 얼굴로 두 고렘들을 힐끔 바라
보더니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위에 올려져있는 자신의 배낭을 집어들며 말했
다.
"당신은 자러 안갈거요? 피곤하지 않으슈?"
"아. 괜찮아요. 전 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뭐, 맘대로 하쇼. 어차피 여기서 그걸 찾는동안은 당신이 할 일은 없을테니까."
그녀는 쓴 웃음을 지으며 제프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냥 고개만 슬쩍 끄덕이곤
2층 계단으로 향하며 말했다.
"뭐하는 거요? 빨리 방이나 가르쳐 주쇼."
"아, 예."
내가 그의 뒤를 따라 2층 계단으로 올라가자 뒤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르네가 아침 먹을 거니까. 이리사랑 그 녀석도 데리고 오라더군."
"알았다."
난 홀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루나에게 손을 들어주곤 2층 복도를 걸어 들어갔고
내뒤론 한손에 배낭을 든 제프가 따라왔다. 방은 가까운 순서대로 주기로 르네
와 약속했으니까. 이리사들이 묶고있는 방 옆은 칼이 있을거고, 그럼 이방은 비
었겠군. 난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에서 오른쪽 네 번째 방의 문을 열었고 그러자
깔끔하게 정돈된 빈방이 모습을 들어냈다.
"이 방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럼."
"아, 고맙시다. 주인장, 그리고 점심시간에 식사랑 도시락 4개 좀 부탁합시다."
도시락 4개? 어디에 나갈 참인가?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시락 4개요. 알겠습니다."
그는 씩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았고 난 곧바로 몸을 돌려 이리사들
을 부르러 갔다. 으음, 오늘은 왠지 할 일이 많은 것 같아. 그러던 중 난 어느새
이리사들이 묶고있는 방문 앞에 도착할수있었고 그리곤 헛기침을 조금 한 다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냥 문앞에서 이야기하려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잠시 기다리니 곧
문이 열리며 프리드가 나와 날 올려다보았다. 난 녀석에서 손을 들어 보이며 싱
긋 웃어보였다. 흐음, 그러고보니 입고있는 옷이 제법 잘 어울리는걸?
"여어. 좋은 아침이다. 네 어머닌 일어나셨니?"
"아니, 어머니는 아직이다. 너무 피곤했었나 보다. 계속 잔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군, 그땐 꼭 잡아먹을 듯한 얼굴이었는데. 난
무릎을 구부려 녀석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럼, 어머니가 깨어나면 함께 아침 먹으러 내려올래?"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됐다. 난 어머니 곁에서 좀더 자고 싶다."
"그러니? 알았다. 편하게 쉬거라."
난 녀석을 말을 들은 다음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홀로 내려가려고 몸
을 돌렸다. 그때 갑자기 옆방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잠에 취한 얼굴의 칼이 편
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날 발
견하곤 눈을 비비며 말했다.
"후아아암~ 쩝, 음? 아. 한씨? 궁금한게 있는데 물 주전자 어디있소?"
"테이블위에 있습니다. 못보셨나요?"
난 빙긋 웃으며 말했고 그러자 그는 방안으로 고개를 돌려 테이블위를 바라보
더니 뒷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있었군, 미안합니다. 잘 찾아보지도… 응?"
그는 무심결에 내 앞에 서있는 프리드를 발견하게되었고 난 조금 시끄러워 질
것을 각오해야했다. 그렇게 아무말없이 녀석을 내려다보던 칼은 내 예상과는 반
대로 갑자기 손을 내저으며 헐헐 웃더니 말했다.
"어. 이런, 잠이 덜깼나 보군, 르네양을 본 뒤라 그런지 이 꼬마의 귀가 왠지 커
보이는구만, 으암~ 좀 더 잘테니 점심때 봅시다."
그는 그대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나와 프리드는 서로의 얼굴을 멀
뚱히 바라보다가 그냥 작게 웃어보인 다음 각자 서로가 있어야 할곳으로 돌아
갔다. 홀로 내려가니 마침 부엌에서 나온 르네가 물기 묻은 손을 앞치마로 닦으
며 말했다.
"아. 여보 이리사와 프리드는요?"
"많이 피곤했나봐. 않먹겠다는데?"
"그래요? 그럼 할수없군요. 우리들끼리 먹는 수 밖에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곤 홀에서 나르쉬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고있는 루나를
불렀다.
"루나? 아침먹어요. 그리고 나르쉬양? 함께 드실레요? 음식이 많이 남는데."
"제가 끼어도 돼나요?"
나르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고 르네 역시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녀의 말을 들은 나르쉬는 등뒤에 서있는 고렘들에게 뭐라고 말한 다음 루나
와 함께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 아침식사 우리에게도 좀 나눠주시겠습니까?"
모두의 고개가 가게의 문쪽으로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키가 좀 작고 땅
땅한 남자였는데. 아무리봐도 그 모습이 꼭 드워프 같았다. 홀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고있는 드워프는 여행용의 두꺼운 바지에 롱부츠를 신고 그위에
가죽 자켓과 팔엔 방어용 철갑을 끼고있는 모습으로 머리에는 투구를 쓰지 않
은 채였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아주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청년정도일까? 일단 우리집을 찾은 손님인지라 내가 먼저 인사를 건내려고 입
을 열었을 때였다.
"지만트 아저씨!?"
고개를 돌려보니 루나가 놀란 얼굴로 그 젊은 드워프를 바라보고있었고 그러자
그 드워프역시 루나를 알아보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있었구나. 너 찾느라고 내가 나라안을 다 뒤져 다녔다. 녀석아."
루나는 입을 조금 벌린채 놀란 얼굴을 했고 그 드워프는 씨익 웃는얼굴로 루나
를 바라보고있었다. 찾아 다녔다고? 어쨌든 루나나 저 드워프나 서로를 알고있
는 것 같으니까. 난 조금 앞으로 나서며 그 드워프에게 인사를 건내었다.
"아, 어서오십시오. 전 이곳 주인인 한이라고 합니다. 루나를 아십니까?"
"그럼요 알다마다. 내가 가끔씩 저 녀석 기저귀도 갈아주고 했는데 모를 리가
있나. 파하하하!"
말하는 투를 보니 정말 드워프다운 성격이군, 그리고 순간이지만 루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던 것은 아마 르네와 나밖엔 못봤을 거다. 그보다 가끔 루나의 기
저귀를 갈아줬다면 뭐지? 이웃집에 살던 사람인가? 어쨌든 그녀를 알고있는 사
람이 이렇게 직접 찾아오다니 어떻해야하지? 그때 르네가 그에게 다가가가며
말했다.
"일단 앉으세요.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자 지만트라던 드워프는 르네를 잠시 바라보다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아. 르네양이시죠? 역시 그 사람 이야기대로 정말 아름다운신 분이군요."
"절 아시나요?"
"예. 압니다. 알고서 찾아왔으니까요. 아, 그전에 소개시켜줄 친구가 하나있습니
다. 이 친구도 여기에 찾을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이~ 이봐 들어와!"
알고서 찾아왔다고? 어떻게? 우리가 있는곳을 어떻게 알고서 찾아올수있지? 이
런 의문에 휩싸여있을 때 지만트는 문밖으로 고함을 내 질렀고 그러자 잠시후
활짝 열려진 문으로 새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엘프남자가 고개를 조금 내밀더
니 천천히 문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나와 르네에게
한번씩 고개를 숙여보였고 그리곤 조용히 서서 손에 들고있던 피묻은 검을 대
충 수건으로 닦은 다음 검집에 집어넣었다. 옆에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 만트
란 남자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 마귀할멈 집에서 알게된 사이인데. 지금껏 자기 이름 이외엔 아무말도 하지
않더군요. 목적지가 같아서 어떻게 여기까지 함께왔습니다."
마귀할멈? 어라? 난 지만트란 드워프 남자의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르
네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턱을 손으로 받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얼굴
을 해보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 아직 정정하신가 보군요."
난 그녀의 말에 떱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인가 보군, 아직 살아있
었다니. 대단한 기력이야. 그때 지만트가 옆에서서 묵묵히 2층 계단을 바라보고
있던 엘프 청년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어때? 자네가 찾고있다는 그 소중한 것이 여기있나?"
한동안 말이 없던 그 엘프청년은 천천히 입술을 올리더니 그의 물음에 답했다.
"…아. 있어."
그는 계단을 바라보며 말했고 난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슬쩍 돌려보았다. 내
시야엔 2층난간에서 르네가 빌려준 잠옷을 입고 맨발로 서서 이를 들어낸 채
눈을 날카롭게 뜬 모습으로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있는 이리사가 보였다.
왜 저러지? 이리사가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알던가?
그순간 난 참으로 얼빠진 말을 하고말았다.
"어라?"
그리고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리사는 2층에서 내려왔다. 한단한단 조심스럽
게, 잠시후 홀에 내려온 그녀는 곧바로 시선도 돌리지 않고 그 백발 엘프에게로
걸어갔고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잠시후 이리
사는 문앞에서있는 그 백발 엘프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 멈춰서더니 그의 얼
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늦었군요."
"……."
백발엘프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녀를 바라보기만했고 그 모습에 화가 났는지
이리사는 갑자기 주먹을 뒤로 당기더니 그의 얼굴을 그대로 갈겨버렸다.
뻐어억!!
굉장한 소리가 났지만, 신음소리는 들리지않았다. 이리사의 주먹은 여성엘프 못
지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남성엘프의 입가에서 붉은 색의 피를 불러냈지만,
상대는 그런것엔 신경도 쓰지않은 모습으로 꿈쩍도 하지않고 그녀의 주먹을 받
아내었다. 하지만, 이리사는 그걸로 끝낼 생각은 하지않았나보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앙! 빠악! 퍼억! 퍽! 으득!
다양한 종류의 소리와 함께 마지막엔 이가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러는
거지? 이리사에게 맏고있던 남자는 마지막에 턱을 맞아서 그런지 휘청하며 뒤
로 넘어질뻔했지만 다리를 뒤로빼서 몸을 다시 세웠다. 이해할수없어. 그 모습
을 본 이리사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한손으로 그의 멱
살을 잡고는 남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연타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 패도 돼는건가? 난 질린 얼굴이 돼어 그녀를 말리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했지만 무언가가 셔츠의 목깃을 잡는 바람에 뒤로
넘어질뻔하곤 겨우 중신을 잡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엔 르네가 내 셔츠 자
락을 잡은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끼어들면 안돼요. 이건 저 두사람의 일이에요. 우린 끼어들 수 없답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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