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제2장 중부대륙의 살육자 로보 2
하프 블러드 : 1권 - 오우거의 피를 깨우지 마라
4화. 제2장 중부대륙의 살육자 로보 2
"이런 나쁜 자식…."
입술을 깨문 단테스가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콘쥬러스를 향해 휘두를 수는 없었다.
"꼼짝하지 마라. 목이 분리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시퍼렇게 날이 선 두 자루의 장검이 어느새 단테스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놀랍게도 검을 들이댄 자는 이곳까지 함께 왔던 동료들이었다. 힘겹게 혈로를 뚫고 온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뜻밖의 배신에 단테스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애, 애초부터 나, 날 살려두지 아, 않을 셈으로 끌어들였군."
숨이 턱까지 차올라 말이 띄엄의엄 흘러나왔다. 경솔했다는 자괴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은 완벽한 함정에 빠진 상태였다.
그런 단테스를 들여다보며 콘쥬러스가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으니 달게 운명을 받아들이게. 죽기 전에 펜슬럿의 왕녀를 안아볼 수 있을 테니 그리 섭섭하진 않을 거야."
"도, 독을 먹인 것인가?"
"엄밀히 말해 독은 아니야. 극히 효과가 좋은 흥분제의 일종이지. 하지만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점에서 독이나 다름없는 약이지. 탈레스가 만들어낸 회심의 걸작이니 영광으로 생각하게."
지금껏 단테스를 인도하던 흑마법사가 앞으로 쓱 나섰다. 마법사의 얼굴에는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자부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아직까지 이름을 짓진 못했소.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소. 당신은 이제 생명이 다할 때까지 몸속의 정(精)을 한꺼번에 쏟아 붓게 될 것이오. 극도의 쾌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테니 가는 길이 그리 고통스럽진 않을 것이오."
"이… 이…."
단테스는 치를 떨었다. 약효가 올랐는지 눈동자까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치밀어 오르는 욕구로 인해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이렇게 삶을 마, 마감할 순 없어. 내, 내가 어떻게 사, 살아왔는데…."
하지만 이성을 쥐고 있는 끈은 조금씩 단테스의 손을 벗어나고 있었다.
쨍그렁
손에서 힘없이 검이 떨어졌다. 머리칼을 움켜쥔 단테스가 몸을 비비꼬았다.
"으으으…."
급격히 타오르는 욕화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둘러싼 사내들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단테스가 결코 오래 버털 수 없다는 사실을.
"크아아!"
난데없이 단테스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눈동자에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다. 흠칫 놀란 사내들이 재빨리 검을 거뒀지만 움직임이 워낙 급작스러웠기 때문에 단테스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모면할 수 없었다.
슈각
허리와 어깨가 길게 베어져 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성을 완전히 잃은 단테스는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마구 괴성을 지르며 마차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린속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콘쥬러스가 혀를 찼다.
"상처를 입히면 곤란한데…."
"죄, 죄송합니다."
사내들이 송구스럽다는 듯 몸을 떨었지만 콘쥬러스는 더 이상 질책하지 않았다. 대신 흑마법사 탈레스가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끊임없이 뭔가를 웅얼거리는 것을 보니 뭔가 마법을 발현시키려는 것 같았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마차 속을 들여다보던 탈레스가 주문영창을 했다.
"디스펠(dispel, 해제)."
주문 영창이 끝남과 동시에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까아아악!"
탈레스가 레오니아 왕녀에게 걸어놓았던 마법을 풀어버린 것이다. 무려 백 일 만에 감각이 회복된 비운의 왕녀. 단테스가 겁탈을 시작했는지 그녀의 비명소리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마차 문을 닫은 탈레스가 서둘러 콘쥬러스에게 다가왔다.
"모두 끝났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콘쥬러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을랐다.
"혹시나 단테스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소?"
"치사량의 두 배에 달하는 분량을 썼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테스는 모든 힘을 소진한 다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탄로 난다면 큰일이 벌어지오."
"생체실험 결과 쾌락분을 복용한 사람은 이성이 완벽히 마비되더군요. 추격대가 당도하더라도 단테스의 입에서는 단 한 마디의 말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테스의 최후는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내성이 강한 오우거라도 걸려들 정도의 분량을 썼으니까요."
"알겠소."
고개를 끄덕인 콘쥬러스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먼저 철수하라. 곧 뒤따라갈 것이다."
"옛."
이미 주위는 말끔히 정돈된 다음이었다. 임무를 마친 정보부 요원들이 소리 없이 철수하고 있었다. 지금껏 단테스를 따라다니던 사내들도 거기에 끼어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죄책감 따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럼 잘 가거라, 단테스."
한참동안 마차를 응시하던 콘쥬러스가 몸을 돌렸다. 흑마법사 탈레스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그곳에는 열락이 휘몰아치는 마차 한 대만이 남겨졌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
콘쥬러스는 깜짝 놀랐다. 수하들이 철수한 길로 들어섰는데 난데없이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왔기 때문이다.
그는 걸음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아래에 내동댕이쳐진 둥그런 물체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것은 몸통에서 뽑혀 나온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스, 스탠리!"
석 달 동안 단테스를 따라다니며 훌륭히 임부를 수행했던 마루스 제3기사단의 기사 스탠리는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콘쥬러스는 검을 뽑아든 채 조심스럽게 머리통이 놓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크게 뜨여진 스탠리의 눈동자에는 경악과 공포가 가득했다.
놀랍게도 그의 목은 잘린 것이 아니라 통째로 뽑혀진 것이었다. 그 증거로 거칠게 뜯겨나간 살점 아래로 척수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가온 탈레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상처 부위를 살폈다.
"엄청난 힘으로 뽑힌 것이로군요. 사람의 짓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사람의 목을 단숨에 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몬스터는 오직 하나, 오우거뿐입니다."
주위를 살피던 탈레스의 눈이 빛났다. 그는 흑마법사답게 끔찍한 모습에도 별달리 동요하지 않았다.
"저기 스탠리의 몸통이 걸려 있군요."
탈레스가 가리킨 곳을 쳐다본 콘쥬러스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갔다. 지면에서 족히 4.5미터는 될 듯한 나뭇가지에 맥없이 걸쳐져있는 몸통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맥없이 늘어진 팔다리를 타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우거의 짓입니다. 스탠리의 목을 뽑은 뒤 나중에 먹기 위해 나무 위로 던져버 린 것 같군요."
콘쥬러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 건장한 편은 아니었지만 스탠리의 체중은 최소한 80킬로그램이 넘었다. 그런 인간의 몸을 저 높은 나뭇가지 위로 던져 올릴 수 있다니…
"믿을 수 없군. 명색이 기사인데 한낱 오우거 따위에게 당하다니 말이오."
"숲 속의 오우거는 숲 밖의 오우거보다 적어도 세 배는 위험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황을 보니 오우거는 요원들의 뒤를 따라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위험합니다."
그 말을 듣자 콘쥬러스는 다급해졌다.
"서두릅시다. 요원들을 더 이상 잃어서는 아니되오."
"알겠습니다."
그러나 수하들을 구하려는 콘쥬러스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수하들이 달려간 길을 짚어가던 그는 계속해서 요원들의 시신을 목격해야 했다.
단 하나도 예외가 없었다. 뽑혀진 머리통이 맥없이 나뒹굴고 있었으며 그들의 몸통은 높은 나뭇가지 위에 척 걸쳐져 있었다.
스탠리와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모건을 비롯해서 자신이 지휘하던 요원들까지 계속해서 분리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상황으로 보아 요원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오우거에게 하나씩 당한 것 같았다. 동료가 사라지는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이동한 흔적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익숙한 얼굴들이 혀를 빼어 문 채 머리통만 남아 나뒹구는 것을 보던 콘쥬러스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수하들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었기에 그는 다급히 몸을 날렸다.
그러나 요원들은 단 한 명도 오우거의 마수를 피해내지 못했다. 임무에 투입되었던 마지막 요원인 부관의 머리통을 발견한 콘쥬러스는 뇌리가 하얗게 식어 가는 것을 느쪘다.
"훈련받은 요원들이 이처럼 허무하게 당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상황을 보아하니 평범한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히 트윈헤드는 아닙니다. 멍청한 트윈헤드는 이처럼 치밀하게 사냥할 수 없지요. 제 짐작으론 매우 노련한 절정기의 수컷 오우거로 생각됩니다."
"상관없소. 놈은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것이오."
콘쥬러스의 눈동자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모두들 아끼던 부하들이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잃을 자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탈레스의 예리한 지적으로 인해 콘쥬러스는 겨우 이성을 되찾을 수있었다.
"이미 부근에 추적대가 우글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목에 포착되고 싶으십니까?"
"그렇군."
맥이 탁 풀린 콘쥬러스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 피비린내와 함께 역한 노린내가 섞여 있었다. 맹수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콘쥬러스가 고개를 흔들며 씁쓸히 웃었다.
"아마도 놈이 우리까지 사냥하려는 것 같군요."
"오우거 따윌 상대할 시간은 없습니다. 공간이동으로 서둘러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법을 쓴다면 종적이 드러나지 않겠소?"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탈레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왕녀의 몸에 마법을 건 흔적이 남아있으니 추적대도 이쪽에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추적하진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범인인 단테스가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후, 알겠소."
콘쥬러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탈레스의 말대로 공간이동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당면한 상황에선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콘쥬러스가 동의하자 탈레스가 그 즉시 좌표책을 꺼내어 들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그리 먼 곳으로 워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놈들에게 4,5서클 정도의 중급 마법사로 인식시켜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시오."
"그럼."
탈레스의 주문영창이 시작되었다. 눈부신 광휘가 그들의 몸을 감쌌다.
번쩍
잠시 후 둘의 몸은 그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직후 바로 옆에 위치한 풀숲에서 거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크르르르
풀숲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실루엣 하나가 튀어나왔다. 4미터가 넘어 보이는 신장, 적갈색 동체에서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거대한 오우거가 바로 실루엣의 정체였다.
덩치에 비해 현저히 작은 머리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옆으로 좍 찢어진 입은 얼굴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상반신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콘쥬러스의 수하들을 전멸시킨 문제의 그 오우거인 듯했다.
콘쥬러스와 탈레스가 사라진 곳으로 다가온 오우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공간이동으로 사라져 버린 둘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캬아아악
화가 난다는 듯 오우거는 또다시 괴성을 터뜨렸다. 핏발 선 눈동자에서 분노의 빛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바로 눈앞에서 사냥감 둘이 사라져버렸으니 화가 단단히 난 것이다.
잘 훈련된 마루스의 정보부 요원 여덟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전멸시킨 오우거. 거기에 두 명의 기사가 끼어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평범한 녀석이 아니었다.
사실 오우거는 엄청난 악명을 가진 거물이었다. 트루베니아의 인간들이 놈에게 붙여 준 별칭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중부대륙의 살육자 로보.
그것이 바로 오우거의 이름이었다. 물론 인간들이 붙여준 이름을 인지할 리는 만무했지만 아무튼 놈은 로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지금껏 중부대륙의 인간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준 존재였다.
눈에 불을 켜고 숲을 두리번거리던 로보는 오래지 않아 수색을 포기했다. 기민한 감각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것을 보니 인간들이 부근에 없는 것이 확실했다. 사라지기 전에 덮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로보는 연신 콧김을 내뿜었다.
훅훅
탈레스의 짐작대로 로보는 매우 노련한 절정기의 수컷이었다. 지금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을 잡아먹온 탓에 녀석에겐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로보의 종적을 찾아낸 인간은 없었다. 로보는 그만큼이나 교활하고 또한 영리한 오우거였다.
통상적으로 오우거는 앞뒤 가리지 않는 폭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단순했다. 피를 볼 경우 오우거는 마치 버서커(狂戰士)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미쳐 날뛰게 된다.
그것은 오우거가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했지만 또한 최대의 단점이 되었다. 상대가 적건 많건 상관없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앞뒤 가릴 것 없이 공격을 퍼부었기에 의외로 쉽게 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헤아릴 수 없는 오우거가 병사들의 포위망에 갇혀 처참하게 죽어갔다. 신은 오우거에게 엄청난 힘을 준 대신 저급한 지능과 단순한 사고방식을 갖게 만들었고, 그 탓에 인간들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우거를 사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보는 평범한 오우거와는 달랐다. 로보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인간들의 손에 잡혀 죽었다. 그래서 로보는 어릴 때부터 도주를 거듭하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의 어린 오우거가 그만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밀림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오우거는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이 유난히 강한 종족이다. 한 배에 하나, 드물게 둘이 태어날 만큼 번식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우거는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철저히 보호하는 몬스터였다. 그래야만 종족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갖은 고초를 겪으며 모진 목숨을 이어나간 로보. 하지만 성년이 되자 로보는 같은 또래의 오우거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만큼 강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로보가 수많은 위기를 넘겨가며 터득한 생존본능 때문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로보는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도주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 매복하여 쫓아오는 적을 하나씩 암습했다. 맹수의 본능을 가진 로보에겐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었고 의외로 효과가 컸다.
하지만 그 또래의 다른 오우거들은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피를 볼 경우 오우거는 상대가 많건 적건, 강하건 약하건 상관없이 미친 듯 공격해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오우거의 행동패턴이었다.
그 차이점으로 인해 로보는 헤아릴 수 없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부대륙의 살육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로보의 목에는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생존본능을 지닌 로보는 그리 어렵지 않게 현상금을 노리고 뒤를 쫓는 용병들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로보가 결코 숲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밀림 속에서 로보를 위협할 만한 적은 없었다.
콰르르르
나직하게 기성을 지른 로보는 머뭇거림 없이 몸을 돌렸다. 사냥감이 아직까지 남아있었기에 마차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이미 사냥을 마친 인간 여덟은 다른 짐승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나뭇가지에 걸쳐놓았다. 마차 속에 있는 인간 둘을 마저 사냥한다면 보금자리에 숨어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념으로 로보는 바람처럼 숲을 갈랐다. 그 어떤 몬스터나 짐승도 따를 수 없는 속도였다. 한 번의 도약으로 십 미터가 넘는 거리를 간단히 좁히며 로보는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숲 속을 달려 나갔다.
4화. 제2장 중부대륙의 살육자 로보 2
"이런 나쁜 자식…."
입술을 깨문 단테스가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콘쥬러스를 향해 휘두를 수는 없었다.
"꼼짝하지 마라. 목이 분리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시퍼렇게 날이 선 두 자루의 장검이 어느새 단테스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놀랍게도 검을 들이댄 자는 이곳까지 함께 왔던 동료들이었다. 힘겹게 혈로를 뚫고 온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뜻밖의 배신에 단테스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애, 애초부터 나, 날 살려두지 아, 않을 셈으로 끌어들였군."
숨이 턱까지 차올라 말이 띄엄의엄 흘러나왔다. 경솔했다는 자괴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은 완벽한 함정에 빠진 상태였다.
그런 단테스를 들여다보며 콘쥬러스가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으니 달게 운명을 받아들이게. 죽기 전에 펜슬럿의 왕녀를 안아볼 수 있을 테니 그리 섭섭하진 않을 거야."
"도, 독을 먹인 것인가?"
"엄밀히 말해 독은 아니야. 극히 효과가 좋은 흥분제의 일종이지. 하지만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점에서 독이나 다름없는 약이지. 탈레스가 만들어낸 회심의 걸작이니 영광으로 생각하게."
지금껏 단테스를 인도하던 흑마법사가 앞으로 쓱 나섰다. 마법사의 얼굴에는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자부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아직까지 이름을 짓진 못했소.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소. 당신은 이제 생명이 다할 때까지 몸속의 정(精)을 한꺼번에 쏟아 붓게 될 것이오. 극도의 쾌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테니 가는 길이 그리 고통스럽진 않을 것이오."
"이… 이…."
단테스는 치를 떨었다. 약효가 올랐는지 눈동자까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치밀어 오르는 욕구로 인해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이렇게 삶을 마, 마감할 순 없어. 내, 내가 어떻게 사, 살아왔는데…."
하지만 이성을 쥐고 있는 끈은 조금씩 단테스의 손을 벗어나고 있었다.
쨍그렁
손에서 힘없이 검이 떨어졌다. 머리칼을 움켜쥔 단테스가 몸을 비비꼬았다.
"으으으…."
급격히 타오르는 욕화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둘러싼 사내들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단테스가 결코 오래 버털 수 없다는 사실을.
"크아아!"
난데없이 단테스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눈동자에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다. 흠칫 놀란 사내들이 재빨리 검을 거뒀지만 움직임이 워낙 급작스러웠기 때문에 단테스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모면할 수 없었다.
슈각
허리와 어깨가 길게 베어져 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성을 완전히 잃은 단테스는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마구 괴성을 지르며 마차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린속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콘쥬러스가 혀를 찼다.
"상처를 입히면 곤란한데…."
"죄, 죄송합니다."
사내들이 송구스럽다는 듯 몸을 떨었지만 콘쥬러스는 더 이상 질책하지 않았다. 대신 흑마법사 탈레스가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끊임없이 뭔가를 웅얼거리는 것을 보니 뭔가 마법을 발현시키려는 것 같았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마차 속을 들여다보던 탈레스가 주문영창을 했다.
"디스펠(dispel, 해제)."
주문 영창이 끝남과 동시에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까아아악!"
탈레스가 레오니아 왕녀에게 걸어놓았던 마법을 풀어버린 것이다. 무려 백 일 만에 감각이 회복된 비운의 왕녀. 단테스가 겁탈을 시작했는지 그녀의 비명소리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마차 문을 닫은 탈레스가 서둘러 콘쥬러스에게 다가왔다.
"모두 끝났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콘쥬러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을랐다.
"혹시나 단테스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소?"
"치사량의 두 배에 달하는 분량을 썼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테스는 모든 힘을 소진한 다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탄로 난다면 큰일이 벌어지오."
"생체실험 결과 쾌락분을 복용한 사람은 이성이 완벽히 마비되더군요. 추격대가 당도하더라도 단테스의 입에서는 단 한 마디의 말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테스의 최후는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내성이 강한 오우거라도 걸려들 정도의 분량을 썼으니까요."
"알겠소."
고개를 끄덕인 콘쥬러스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먼저 철수하라. 곧 뒤따라갈 것이다."
"옛."
이미 주위는 말끔히 정돈된 다음이었다. 임무를 마친 정보부 요원들이 소리 없이 철수하고 있었다. 지금껏 단테스를 따라다니던 사내들도 거기에 끼어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죄책감 따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럼 잘 가거라, 단테스."
한참동안 마차를 응시하던 콘쥬러스가 몸을 돌렸다. 흑마법사 탈레스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그곳에는 열락이 휘몰아치는 마차 한 대만이 남겨졌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
콘쥬러스는 깜짝 놀랐다. 수하들이 철수한 길로 들어섰는데 난데없이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왔기 때문이다.
그는 걸음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아래에 내동댕이쳐진 둥그런 물체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것은 몸통에서 뽑혀 나온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스, 스탠리!"
석 달 동안 단테스를 따라다니며 훌륭히 임부를 수행했던 마루스 제3기사단의 기사 스탠리는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콘쥬러스는 검을 뽑아든 채 조심스럽게 머리통이 놓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크게 뜨여진 스탠리의 눈동자에는 경악과 공포가 가득했다.
놀랍게도 그의 목은 잘린 것이 아니라 통째로 뽑혀진 것이었다. 그 증거로 거칠게 뜯겨나간 살점 아래로 척수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가온 탈레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상처 부위를 살폈다.
"엄청난 힘으로 뽑힌 것이로군요. 사람의 짓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사람의 목을 단숨에 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몬스터는 오직 하나, 오우거뿐입니다."
주위를 살피던 탈레스의 눈이 빛났다. 그는 흑마법사답게 끔찍한 모습에도 별달리 동요하지 않았다.
"저기 스탠리의 몸통이 걸려 있군요."
탈레스가 가리킨 곳을 쳐다본 콘쥬러스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갔다. 지면에서 족히 4.5미터는 될 듯한 나뭇가지에 맥없이 걸쳐져있는 몸통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맥없이 늘어진 팔다리를 타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우거의 짓입니다. 스탠리의 목을 뽑은 뒤 나중에 먹기 위해 나무 위로 던져버 린 것 같군요."
콘쥬러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 건장한 편은 아니었지만 스탠리의 체중은 최소한 80킬로그램이 넘었다. 그런 인간의 몸을 저 높은 나뭇가지 위로 던져 올릴 수 있다니…
"믿을 수 없군. 명색이 기사인데 한낱 오우거 따위에게 당하다니 말이오."
"숲 속의 오우거는 숲 밖의 오우거보다 적어도 세 배는 위험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황을 보니 오우거는 요원들의 뒤를 따라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위험합니다."
그 말을 듣자 콘쥬러스는 다급해졌다.
"서두릅시다. 요원들을 더 이상 잃어서는 아니되오."
"알겠습니다."
그러나 수하들을 구하려는 콘쥬러스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수하들이 달려간 길을 짚어가던 그는 계속해서 요원들의 시신을 목격해야 했다.
단 하나도 예외가 없었다. 뽑혀진 머리통이 맥없이 나뒹굴고 있었으며 그들의 몸통은 높은 나뭇가지 위에 척 걸쳐져 있었다.
스탠리와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모건을 비롯해서 자신이 지휘하던 요원들까지 계속해서 분리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상황으로 보아 요원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오우거에게 하나씩 당한 것 같았다. 동료가 사라지는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이동한 흔적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익숙한 얼굴들이 혀를 빼어 문 채 머리통만 남아 나뒹구는 것을 보던 콘쥬러스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수하들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었기에 그는 다급히 몸을 날렸다.
그러나 요원들은 단 한 명도 오우거의 마수를 피해내지 못했다. 임무에 투입되었던 마지막 요원인 부관의 머리통을 발견한 콘쥬러스는 뇌리가 하얗게 식어 가는 것을 느쪘다.
"훈련받은 요원들이 이처럼 허무하게 당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상황을 보아하니 평범한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히 트윈헤드는 아닙니다. 멍청한 트윈헤드는 이처럼 치밀하게 사냥할 수 없지요. 제 짐작으론 매우 노련한 절정기의 수컷 오우거로 생각됩니다."
"상관없소. 놈은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것이오."
콘쥬러스의 눈동자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모두들 아끼던 부하들이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잃을 자들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탈레스의 예리한 지적으로 인해 콘쥬러스는 겨우 이성을 되찾을 수있었다.
"이미 부근에 추적대가 우글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목에 포착되고 싶으십니까?"
"그렇군."
맥이 탁 풀린 콘쥬러스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 피비린내와 함께 역한 노린내가 섞여 있었다. 맹수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콘쥬러스가 고개를 흔들며 씁쓸히 웃었다.
"아마도 놈이 우리까지 사냥하려는 것 같군요."
"오우거 따윌 상대할 시간은 없습니다. 공간이동으로 서둘러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법을 쓴다면 종적이 드러나지 않겠소?"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탈레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왕녀의 몸에 마법을 건 흔적이 남아있으니 추적대도 이쪽에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추적하진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범인인 단테스가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후, 알겠소."
콘쥬러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탈레스의 말대로 공간이동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당면한 상황에선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콘쥬러스가 동의하자 탈레스가 그 즉시 좌표책을 꺼내어 들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그리 먼 곳으로 워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놈들에게 4,5서클 정도의 중급 마법사로 인식시켜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시오."
"그럼."
탈레스의 주문영창이 시작되었다. 눈부신 광휘가 그들의 몸을 감쌌다.
번쩍
잠시 후 둘의 몸은 그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직후 바로 옆에 위치한 풀숲에서 거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크르르르
풀숲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실루엣 하나가 튀어나왔다. 4미터가 넘어 보이는 신장, 적갈색 동체에서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거대한 오우거가 바로 실루엣의 정체였다.
덩치에 비해 현저히 작은 머리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옆으로 좍 찢어진 입은 얼굴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상반신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콘쥬러스의 수하들을 전멸시킨 문제의 그 오우거인 듯했다.
콘쥬러스와 탈레스가 사라진 곳으로 다가온 오우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공간이동으로 사라져 버린 둘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캬아아악
화가 난다는 듯 오우거는 또다시 괴성을 터뜨렸다. 핏발 선 눈동자에서 분노의 빛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바로 눈앞에서 사냥감 둘이 사라져버렸으니 화가 단단히 난 것이다.
잘 훈련된 마루스의 정보부 요원 여덟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전멸시킨 오우거. 거기에 두 명의 기사가 끼어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평범한 녀석이 아니었다.
사실 오우거는 엄청난 악명을 가진 거물이었다. 트루베니아의 인간들이 놈에게 붙여 준 별칭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중부대륙의 살육자 로보.
그것이 바로 오우거의 이름이었다. 물론 인간들이 붙여준 이름을 인지할 리는 만무했지만 아무튼 놈은 로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지금껏 중부대륙의 인간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준 존재였다.
눈에 불을 켜고 숲을 두리번거리던 로보는 오래지 않아 수색을 포기했다. 기민한 감각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것을 보니 인간들이 부근에 없는 것이 확실했다. 사라지기 전에 덮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로보는 연신 콧김을 내뿜었다.
훅훅
탈레스의 짐작대로 로보는 매우 노련한 절정기의 수컷이었다. 지금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을 잡아먹온 탓에 녀석에겐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로보의 종적을 찾아낸 인간은 없었다. 로보는 그만큼이나 교활하고 또한 영리한 오우거였다.
통상적으로 오우거는 앞뒤 가리지 않는 폭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단순했다. 피를 볼 경우 오우거는 마치 버서커(狂戰士)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미쳐 날뛰게 된다.
그것은 오우거가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했지만 또한 최대의 단점이 되었다. 상대가 적건 많건 상관없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앞뒤 가릴 것 없이 공격을 퍼부었기에 의외로 쉽게 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헤아릴 수 없는 오우거가 병사들의 포위망에 갇혀 처참하게 죽어갔다. 신은 오우거에게 엄청난 힘을 준 대신 저급한 지능과 단순한 사고방식을 갖게 만들었고, 그 탓에 인간들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우거를 사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보는 평범한 오우거와는 달랐다. 로보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인간들의 손에 잡혀 죽었다. 그래서 로보는 어릴 때부터 도주를 거듭하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의 어린 오우거가 그만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밀림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오우거는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이 유난히 강한 종족이다. 한 배에 하나, 드물게 둘이 태어날 만큼 번식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우거는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철저히 보호하는 몬스터였다. 그래야만 종족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갖은 고초를 겪으며 모진 목숨을 이어나간 로보. 하지만 성년이 되자 로보는 같은 또래의 오우거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만큼 강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로보가 수많은 위기를 넘겨가며 터득한 생존본능 때문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로보는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도주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 매복하여 쫓아오는 적을 하나씩 암습했다. 맹수의 본능을 가진 로보에겐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었고 의외로 효과가 컸다.
하지만 그 또래의 다른 오우거들은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피를 볼 경우 오우거는 상대가 많건 적건, 강하건 약하건 상관없이 미친 듯 공격해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오우거의 행동패턴이었다.
그 차이점으로 인해 로보는 헤아릴 수 없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부대륙의 살육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로보의 목에는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생존본능을 지닌 로보는 그리 어렵지 않게 현상금을 노리고 뒤를 쫓는 용병들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로보가 결코 숲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밀림 속에서 로보를 위협할 만한 적은 없었다.
콰르르르
나직하게 기성을 지른 로보는 머뭇거림 없이 몸을 돌렸다. 사냥감이 아직까지 남아있었기에 마차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이미 사냥을 마친 인간 여덟은 다른 짐승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나뭇가지에 걸쳐놓았다. 마차 속에 있는 인간 둘을 마저 사냥한다면 보금자리에 숨어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념으로 로보는 바람처럼 숲을 갈랐다. 그 어떤 몬스터나 짐승도 따를 수 없는 속도였다. 한 번의 도약으로 십 미터가 넘는 거리를 간단히 좁히며 로보는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숲 속을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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