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나를 지켜줘
Pride
14화. 나를 지켜줘
"제안을 하나 하겠어. 나를 지켜줘. 그럼 날 네 뜻대로 해도 좋아."
거절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100%의 확신이 있었다. 그는 절대 거절하지 못한다.
"좋아. 네가 내 것이 되어준다면 이제 더 이상 나 이외에 아무도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겠어. 그 누.구.도."
그가 내민 손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가는 손목.
얼마든지 꺾일 것 같은 손인데 나는 저 손에 몇 번이나 무너졌었다.
"믿겠어."
내가 내민 손은 진영이 손에 잡혀진 채 그의 입가로 당겨졌다. 입술이 내려앉았지만 그 시선만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보며 결과가 어떻게되는 가의 두려움보다 이제, 이제야 겨우 내 의지가 내 인생에 개입되었다는데 안도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아무 것도 예견하지 못한 채 오직 타인의 의지로 뭔가가 결정되고 그걸 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은 치가 떨린다. 그래, 망가지더라도 내 의지로 망가지겠어. 타락하더라도 내 의지로.
그를 만났을 때 막상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진영이를 선택했다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가 낭패감에 젖어 화를 참고 있든, 기가막혀하든, 진영이가 의기양양해 하든, 그를 비웃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낭패한 얼굴을 더 굴욕적으로 만들어주고 싶고 그 의기양양한 얼굴은 철저히 일그러뜨리겠다는 그런 결의만이 가득 찼을 뿐이다.
오만한 인간들...
타인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망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더럽고 추한 인간들.
내가 정말로 강한 인간이었다면 죽일 수도 있었다. 그게 가장 깔끔하겠지.
하지만 죽도록 끔찍한 저 인종들에게조차 칼을 들이댈 자신은 없다. 결국 그렇게 치떨리는 일들을 당해놓고도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았던 거다. 내 인생을.
"난 너의 이 표정이 좋아. 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상처받은 듯한 표정이 나를 자극하거든."
"빨리 끝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랬지."
"그래서 때릴 거야?"
"뭐, 네가 몇 대 때린다고 맞고만 있겠어? 나도 혼자서는 의외로 네가 벅차다고. 그리고.....고작 몇 대 맞는 정도로 너한테 크게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래. 맞아.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내려와. 아파"
"웃기지마. 몇 대 맞는 걸로 꿈쩍도 안하면서 이 정도로 엄살이야?"
제기랄. 얼마다 해댈려고.
"알았어. 알았다고 겁먹지마. 이제 넌 내거니까 거칠게 다루지 않을 거야. 나 의외로 부드럽다고."
진영이는 그 말대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부드러움으로 나를 안았다. 그 거칠고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그러나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드는 것은 불쾌함과 분노뿐이었다.
이후로 진영이가 나에게 다정하면 할수록, 그 명백하게 연인을 대하는 태도를 할수록 그 분노는 더더욱 쌓여만 갔다.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수록 격렬한 증오가 치솟았다.
진심이면서. 이렇게 진심이면서........진심이면서 나를.......
용서할 수 없어. 그러니까 더욱 용서할 수 없어.
네 본성대로 하라고. 그래야 나도 마음먹은 대로 할수 있으니까.
"영화하나 들어왔다. 이승현이 출연한다는게 좀 걸리지만 어쩔래? 아무래도 놓치기는 아까워서 말이야."
당분간이기는 했지만 전혀 방송국에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았기에 매니져는 자기가 쉬라고 해놓고도 초조한 듯했다. 제의가 들어오자마자 냉큼 집어온걸 보니.
"해야죠."
"그, 그래? 그래....그럼 OK한다?"
"네."
영화는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다. 시작부터 매스컴이 크게 관심을 보였고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어도 비중있는 역에 캐스팅된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게 뭐야."
"아....."
"너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잖아!"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잖아. 넌 매일 1시나 되서야 날 불러냈고, 보자마자 달려드는데 우리가 제대로 된 대화나 할 시간이 있었어?"
"좋아, 좋아. 그건 내 잘못이라고 해. 하지만 왜 하필 그 자식이 나오는 영화냐고?"
"별로, 상관없잖아 이제.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이번 영화 절대 놓칠 수 없는 대작이야. 그리고 더 이상 공백은 나도 위험해."
".............."
분한 듯이 노려보는 눈이 예전 같으면 무섭겠지만 지금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렇게 무신경하게 있자 역시나 자신이 스스로 매달려 온다.
귓가로 키스를 하며 목줄기를 애무하는 폼이 나를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것 같다.
"포기해 응?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역이 생길거야."
"싫어."
"수민아."
"싫다고 했어."
"고집부리지마. 그 자식이 너 가만히 둘것 같아? 게다가 난 바빠서 촬영장에 내내 지킬 수가 없다고."
"찍을 거야."
"한.수.민. 고집 피울래? 차라리 다른 걸 기다려. 다른 역 얼마든지 맞게 해줄게. 그 녀석하고 같이 있는 것 절대 못 봐. 알잖아?"
"다른 건 별로 관심없어."
"너-"
"찍을 거야. 네가 아무리 말려도 찍을거라고. 게다가 이건 일이야. 앞으로 이런 식으로 그 자식 피하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아."
"누가 그걸 몰라? 좋아. 그러면 몇 명 붙여 두겠어."
"미쳤어? 내가 뭣하러 그런걸 달고 다녀야해? 그런 식으로 광고하고 다니기 싫어."
"말들어!"
"싫어."
퍽-
사정없이 바닥에 널부러졌다.
역시나..........
잘해주네 뭐네 말해봤자 이렇게 열받게 하면 바로 폭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녀석들을 자극하는 건 아주 쉽다.
하지만, 제길..... 얼굴을 때리다니 턱이 어긋나지나 않았을까 염려가 될 정도다.
라고 생각하는 찰자 다시 구둣발에 차여 뒤로 넘어갔다. 이어지는 구타. 덤벼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저 성질에 적당히 끝나지 않는다. 그냥 몸을 둥글게 말고 고스란히 다 맞아주었다.
"너 이방에서 꼼짝도 하지마. 알았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대나 맞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거울을 보니 다행히 처음 맞은 것만 빼고는 얼굴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 온몸이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중요한건 얼굴이다. 게다가 저 녀석............힘써서 때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아픈건 아픈거다. 아픔 때문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피곤했던지 의외로 쉽게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뜨자 둔감한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커피향.
"일어났어?"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온몸이 아팠다. 운동을 해서 더 단련을 시켜야 할래나...
인상을 쓰자 침대 위에 걸터앉는 무게가 느껴졌다.
"아, 아프냐?"
"................"
"잠깐 기다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약상자를 찾는 것 같다. 그리고 목표물을 찾아내자 곧장 다가와 뭔가를 찾아 내 몸 여기저기에 바른다.
".......미안해.......제길, 절대 널 때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만 못 참고...미안....내가 성급했어."
".................."
"수민아....."
"................"
"저, 저기 배고프지? 밥차리라고 할까?"
찰나적으로 그 미안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 그래서 그 손을 뿌리치고 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었다. 우.......갑자기 움직였더니 겨드랑이가 욱씬거린다.
미친놈, 자상한 척 하기는......사람을 개패 듯이 패놓고....
순간적으로 들었던 그 마음을 씻어 버리기 위해 속으로 거친 욕을 해대며 다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수민아, 내가 손댄건 정말 잘못한거지만........너도 다시 생각해. 아직은 안된다고. 그 자식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위인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아예 너한테 손대는건 꿈도 못 꾸도록 단단히 손봐준 후....."
"나가"
".............."
"혼자 있고 싶어."
굳이 내가 나가지 말라고 해도, 그 바쁜 녀석은 나갈 수밖에 없었다.
느지막한 오전시간에야 그 녀석이 나간걸 확인하고 부리나케 그 집을 나왔다.
"너 얼굴이 또 왜이래?"
"부딪혔어요. 이거 적당히 가려질 것 같죠?"
"그래, 뭐.... 그런데 대본이나 제대로 보고 온거야?"
"그럼요."
촬영장 한구석에서 화장을 받고 다시 대본을 드려다 보려고 할 때 그가 나타났다. 여전히 화려하게 눈에 띄는 인간.
굳이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질긴 인종이다. 하지만 프로인 걸까. 막상 연기를 할 때 그는 추호도 그런 빛을 내비치지 않았다.
"너 내 말이 우습게 들렸냐?"
"...........언제왔어? 오늘은 일찍이네?"
"오늘 거기 왜 나간 거야."
"말했잖아. 그 영화 찍을 거야."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못 기다려"
"너........이러지마라. 나 지금 많이 참고 있다."
"..............."
"나가지마."
"..............."
"알겠어?"
"..............."
"대답해 한수민."
"너야말로 왜 이런 일로 열을 내고 그래. 난 분명히 날 지켜달라고 했지, 내 일에 간섭하라고 하지는 않았어. 정도껏 해!"
"너..........지금 일부러 내 성질 긁는 거냐? 너 답지 않아. 왜 이렇게 반항적이야?"
"나 답지 않다니. 그럼 내가 일부러 애처럼 굴고 있다는 뜻이야?"
"그렇잖아. 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어. 내가 하는 말은 다 따라 주었잖아."
".......물론 그때는 너에게 맞춰주었지.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넌 친구가 아니니까."
"그게 뭐야."
"그럴 가치를 못 느껴."
짝-
말이 끝나자 마자, 손이 날라왔고, 그때부터 시작됐다. 집요한 구타가.
하지만 알고 있다. 아직은...이 정도는 정말 무섭게 화내는게 아니다. 그 처음에 재수없다고 여겼던 자기중심적이고 지독히도 오만하고 더러운 성질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연기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업을 이어간 그의 생활. 그런 생활이 그저 내 일상 속에서 투명하게 보여져서 그 속에서 그의 잔인성이 매일 새롭게 각인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알 수 있다. 정말 아주 많이 화를 눌러 죽이고 있다는 것을. 그가 진짜로 화냈을 때 어느 정도로 발광하는 지 알기 때문에 아직 내가 원하는 만큼 그를 자극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정도가 아니야. 난 말이야 널 미치게 만들거야. 정말 미치도록 몰아가서 네 그 간교한 머리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구타 이후에 이어지는 강간과 같은 성교도 이제는 슬슬 익숙해져야 한다. 이 정도로 힘들어해서는 안돼.
"다시 한번 경고한다. 그 영화 찍지마."
아침에 널부러져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찍을 거야."
그를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흥분은 하지 않은 듯했다.
"너.........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거야."
"찍고싶어."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가버린 진영이가 조금쯤 나에게 꺾여 준거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정말 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끝까지 고집을 피우지 못하는 거다.
1라운드는 나의 승리였다.
진영이는 끝내 내가 영화 촬영하는걸 막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의 조직원 몇 명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연달은 두 번의 구타 이후 확실히 기가 죽어있었다. 자신이 쉽게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기라도 한 걸까?
웃기고 있어. 강간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반 죽여놓더니......새삼스레 마음이 약해진척 하는 꼴이 우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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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어?"
"응?"
"기분이 좋아 보여."
"아....별일 아니야. 우리집 꼴통이 사고쳤거든. 젠장, 내가 그 뒤치닥 거리를 해야 하게 생겼어."
".....형?"
"형은 무슨-. 하지만 우리집 꼰대가 은근히 첫째 아들이라고 무지 생각해. 그러니 나라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무슨 일인데?"
"어떤 년 강간하다가 혀 짤렸어."
"............"
"푸하하하하하하- 세상에, 그 나불대던 입이 이제야 조용해질 것 같아."
황당함에 할말을 잃었지만....그 강간이란 단어에는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그 형에 그 동생이군.
"다 먹었어? 그럼 나가자"
하고 내 손을 잡아 끌었을 때 지끈 거리며 통증이 느껴졌다.
"윽-"
맞은 지 하루 밖에 안됐으니 상처가 아물려면 꽤 오래 걸릴 것 같다. 제길 거친 액션 씬도 있는데....
"괘, 괜찮아?"
".............."
내가 대답이없자, 그때부터 안절부절 했다.
이 멍청아. 그럼 그렇게 맞고 내가 하루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고 있을줄 알았냐?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모는 내내 계속 흘깃흘깃 내 안색을 살폈다.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지만 지금 저 놈 속이 타들어가는게 느껴진다. 흥, 원래대로 하라고. 네가 언제 이런거 신경쓰는 인간이었어?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닌 녀석이.
녀석은 그렇게도 시간이 없으면서 다음날도 전날처럼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주고 내 눈치를 슬슬 보며 이것저것 선물을 건네 왔다. 유치하게 빨간 장미 다발까지 얹어서.
아무튼 폭력을 사용하는 인간들이란 이렇게 다 똑같은 지 모르겠다. 흥분해서 자기 분에 못이겨 미친 듯이 때리다가도 이렇게 막상 뒤로는 미안해 어쩔줄 모르고 그 이전의 몇 배는 잘해주려고 한다. 양심은 있는 건지....
이거.... 완전히 매맞고 사는 마누라의 전형 아닌가...나 참..
"너 이거 왜이래."
분장실에 잠시 앉아 있을 때 어느 샌가 그 자식이 들어와 팔을 걷어냈다.
응? 밖에는 사람이 있을텐데........보디가드가 오늘은 2명이었던가?
그가 걷어낸 한쪽 팔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용케도 봤군.
"상관마."
"상관말라니.........그 자식이 때린 거냐?"
"............."
"도대체 왜."
윽-
"놔!"
어느새 내 셔츠를 잡아채서 앞을 활짝 열어 제꼈다. 며칠동안 온몸을 상처로 장식해왔기에 그가 보고 짓는 표정이 예상되었다.
"개.....자식."
이를 악문 새로 중얼거리는 폼이 상당히 열받은거 같다. 흥........열이 받기라도 하냐?
"비켜."
그의 팔을 쳐내고 일어섰다.
"너 바보야? 왜 맞고 사는 거야?"
뭐?
뭐라고?
왜 맞고 사냐고? 네가 그 말을 하는 거야 지금?
하-참나-
"그야.......... 맞고 사는게 짐승처럼 돌림빵 당하는 것 보다 낳으니까."
"..............."
문을 닫고 나오며 천천히 단추를 채우다가 익숙한 시선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
진영이....
"어..왜, 왠 일이야?"
"왜 혼자야? 이 자식들은 어딜-"
진영이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등뒤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이유를 알아버렸고.
눈치 빠른 녀석이 얼마나 앞서서 짐작을 할지 뻔한 이야기다.
다행히 그 자리에서 폭발하지는 않았다. 촬영현장에는 어느 연예방송에서 취재를 나와있었고,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런걸 염려 하다니.........아직 이성을 잃지는 않았군.
"몇 번이야."
아까 그 보디가드 두 명이, 초죽음 되도록 맞는 것을 지켜봤다. 지치지도 않는지 쉬지도 않고 사람을 때렸다. 그 중 한 명은 다리가 한쪽 부러지는걸 목격했다.
"그 자식이 너한테 손 댄게 몇 번이냐고 물었어."
"................."
"왜 말못해?"
".................."
"오늘이 처음 아니지? 그런 식으로 그 자식들 따돌리고 몇 번이나 몸 섞었던 거지 그렇지?"
"................."
"왜 반항 안했냐고는 묻지 않겠어. 하지만 왜 나에게 말 안했어?"
"................."
"그럼 내가 영화 못하게 할 것 같어서 그랬던거야? 고작 그것 때문에 그렇게 당하고 있었어?"
"................."
"말해, 그 자식이 어떻게 했냐니까?"
"................"
"너 나보고 지켜달라고 했잖아? 다시는 그 자식이 손 못대게 지켜달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말해. 그 자식이 다시는 영화 따위 찍지 못할 정도로 뭉개놓을 테니까."
"..........나.....이 영화 찍고 싶어."
"뭐?"
"그러니까 이번엔 그냥 내버려두라고. 그 사람 만한 배우 없어."
그제서야......... 그는 평소의 그 미친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대를 잔인하게 짖이기는.
몇 번을 갈구고 흥분시킬 때야 간신히 폭발하던 그 모습은 확실히 지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게 얼마나 절제된 폭력이었던가.......
서너 번 내 머리가 벽에 부딪히고,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뭉개지고 갈비뼈가 몇 개 부러졌다. 이빨이 서 너개는 나갔고, 방안에 있던 의자로 몇 번이고 내 다리를 내리찍어버렸다.
14화. 나를 지켜줘
"제안을 하나 하겠어. 나를 지켜줘. 그럼 날 네 뜻대로 해도 좋아."
거절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100%의 확신이 있었다. 그는 절대 거절하지 못한다.
"좋아. 네가 내 것이 되어준다면 이제 더 이상 나 이외에 아무도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겠어. 그 누.구.도."
그가 내민 손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가는 손목.
얼마든지 꺾일 것 같은 손인데 나는 저 손에 몇 번이나 무너졌었다.
"믿겠어."
내가 내민 손은 진영이 손에 잡혀진 채 그의 입가로 당겨졌다. 입술이 내려앉았지만 그 시선만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보며 결과가 어떻게되는 가의 두려움보다 이제, 이제야 겨우 내 의지가 내 인생에 개입되었다는데 안도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아무 것도 예견하지 못한 채 오직 타인의 의지로 뭔가가 결정되고 그걸 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은 치가 떨린다. 그래, 망가지더라도 내 의지로 망가지겠어. 타락하더라도 내 의지로.
그를 만났을 때 막상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진영이를 선택했다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가 낭패감에 젖어 화를 참고 있든, 기가막혀하든, 진영이가 의기양양해 하든, 그를 비웃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낭패한 얼굴을 더 굴욕적으로 만들어주고 싶고 그 의기양양한 얼굴은 철저히 일그러뜨리겠다는 그런 결의만이 가득 찼을 뿐이다.
오만한 인간들...
타인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망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더럽고 추한 인간들.
내가 정말로 강한 인간이었다면 죽일 수도 있었다. 그게 가장 깔끔하겠지.
하지만 죽도록 끔찍한 저 인종들에게조차 칼을 들이댈 자신은 없다. 결국 그렇게 치떨리는 일들을 당해놓고도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았던 거다. 내 인생을.
"난 너의 이 표정이 좋아. 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상처받은 듯한 표정이 나를 자극하거든."
"빨리 끝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랬지."
"그래서 때릴 거야?"
"뭐, 네가 몇 대 때린다고 맞고만 있겠어? 나도 혼자서는 의외로 네가 벅차다고. 그리고.....고작 몇 대 맞는 정도로 너한테 크게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래. 맞아.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내려와. 아파"
"웃기지마. 몇 대 맞는 걸로 꿈쩍도 안하면서 이 정도로 엄살이야?"
제기랄. 얼마다 해댈려고.
"알았어. 알았다고 겁먹지마. 이제 넌 내거니까 거칠게 다루지 않을 거야. 나 의외로 부드럽다고."
진영이는 그 말대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부드러움으로 나를 안았다. 그 거칠고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그러나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드는 것은 불쾌함과 분노뿐이었다.
이후로 진영이가 나에게 다정하면 할수록, 그 명백하게 연인을 대하는 태도를 할수록 그 분노는 더더욱 쌓여만 갔다.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수록 격렬한 증오가 치솟았다.
진심이면서. 이렇게 진심이면서........진심이면서 나를.......
용서할 수 없어. 그러니까 더욱 용서할 수 없어.
네 본성대로 하라고. 그래야 나도 마음먹은 대로 할수 있으니까.
"영화하나 들어왔다. 이승현이 출연한다는게 좀 걸리지만 어쩔래? 아무래도 놓치기는 아까워서 말이야."
당분간이기는 했지만 전혀 방송국에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았기에 매니져는 자기가 쉬라고 해놓고도 초조한 듯했다. 제의가 들어오자마자 냉큼 집어온걸 보니.
"해야죠."
"그, 그래? 그래....그럼 OK한다?"
"네."
영화는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다. 시작부터 매스컴이 크게 관심을 보였고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어도 비중있는 역에 캐스팅된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게 뭐야."
"아....."
"너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잖아!"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잖아. 넌 매일 1시나 되서야 날 불러냈고, 보자마자 달려드는데 우리가 제대로 된 대화나 할 시간이 있었어?"
"좋아, 좋아. 그건 내 잘못이라고 해. 하지만 왜 하필 그 자식이 나오는 영화냐고?"
"별로, 상관없잖아 이제.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이번 영화 절대 놓칠 수 없는 대작이야. 그리고 더 이상 공백은 나도 위험해."
".............."
분한 듯이 노려보는 눈이 예전 같으면 무섭겠지만 지금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렇게 무신경하게 있자 역시나 자신이 스스로 매달려 온다.
귓가로 키스를 하며 목줄기를 애무하는 폼이 나를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것 같다.
"포기해 응?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역이 생길거야."
"싫어."
"수민아."
"싫다고 했어."
"고집부리지마. 그 자식이 너 가만히 둘것 같아? 게다가 난 바빠서 촬영장에 내내 지킬 수가 없다고."
"찍을 거야."
"한.수.민. 고집 피울래? 차라리 다른 걸 기다려. 다른 역 얼마든지 맞게 해줄게. 그 녀석하고 같이 있는 것 절대 못 봐. 알잖아?"
"다른 건 별로 관심없어."
"너-"
"찍을 거야. 네가 아무리 말려도 찍을거라고. 게다가 이건 일이야. 앞으로 이런 식으로 그 자식 피하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아."
"누가 그걸 몰라? 좋아. 그러면 몇 명 붙여 두겠어."
"미쳤어? 내가 뭣하러 그런걸 달고 다녀야해? 그런 식으로 광고하고 다니기 싫어."
"말들어!"
"싫어."
퍽-
사정없이 바닥에 널부러졌다.
역시나..........
잘해주네 뭐네 말해봤자 이렇게 열받게 하면 바로 폭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녀석들을 자극하는 건 아주 쉽다.
하지만, 제길..... 얼굴을 때리다니 턱이 어긋나지나 않았을까 염려가 될 정도다.
라고 생각하는 찰자 다시 구둣발에 차여 뒤로 넘어갔다. 이어지는 구타. 덤벼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저 성질에 적당히 끝나지 않는다. 그냥 몸을 둥글게 말고 고스란히 다 맞아주었다.
"너 이방에서 꼼짝도 하지마. 알았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대나 맞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거울을 보니 다행히 처음 맞은 것만 빼고는 얼굴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 온몸이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중요한건 얼굴이다. 게다가 저 녀석............힘써서 때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아픈건 아픈거다. 아픔 때문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피곤했던지 의외로 쉽게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뜨자 둔감한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커피향.
"일어났어?"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온몸이 아팠다. 운동을 해서 더 단련을 시켜야 할래나...
인상을 쓰자 침대 위에 걸터앉는 무게가 느껴졌다.
"아, 아프냐?"
"................"
"잠깐 기다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약상자를 찾는 것 같다. 그리고 목표물을 찾아내자 곧장 다가와 뭔가를 찾아 내 몸 여기저기에 바른다.
".......미안해.......제길, 절대 널 때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만 못 참고...미안....내가 성급했어."
".................."
"수민아....."
"................"
"저, 저기 배고프지? 밥차리라고 할까?"
찰나적으로 그 미안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 그래서 그 손을 뿌리치고 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었다. 우.......갑자기 움직였더니 겨드랑이가 욱씬거린다.
미친놈, 자상한 척 하기는......사람을 개패 듯이 패놓고....
순간적으로 들었던 그 마음을 씻어 버리기 위해 속으로 거친 욕을 해대며 다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수민아, 내가 손댄건 정말 잘못한거지만........너도 다시 생각해. 아직은 안된다고. 그 자식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위인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아예 너한테 손대는건 꿈도 못 꾸도록 단단히 손봐준 후....."
"나가"
".............."
"혼자 있고 싶어."
굳이 내가 나가지 말라고 해도, 그 바쁜 녀석은 나갈 수밖에 없었다.
느지막한 오전시간에야 그 녀석이 나간걸 확인하고 부리나케 그 집을 나왔다.
"너 얼굴이 또 왜이래?"
"부딪혔어요. 이거 적당히 가려질 것 같죠?"
"그래, 뭐.... 그런데 대본이나 제대로 보고 온거야?"
"그럼요."
촬영장 한구석에서 화장을 받고 다시 대본을 드려다 보려고 할 때 그가 나타났다. 여전히 화려하게 눈에 띄는 인간.
굳이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질긴 인종이다. 하지만 프로인 걸까. 막상 연기를 할 때 그는 추호도 그런 빛을 내비치지 않았다.
"너 내 말이 우습게 들렸냐?"
"...........언제왔어? 오늘은 일찍이네?"
"오늘 거기 왜 나간 거야."
"말했잖아. 그 영화 찍을 거야."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못 기다려"
"너........이러지마라. 나 지금 많이 참고 있다."
"..............."
"나가지마."
"..............."
"알겠어?"
"..............."
"대답해 한수민."
"너야말로 왜 이런 일로 열을 내고 그래. 난 분명히 날 지켜달라고 했지, 내 일에 간섭하라고 하지는 않았어. 정도껏 해!"
"너..........지금 일부러 내 성질 긁는 거냐? 너 답지 않아. 왜 이렇게 반항적이야?"
"나 답지 않다니. 그럼 내가 일부러 애처럼 굴고 있다는 뜻이야?"
"그렇잖아. 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어. 내가 하는 말은 다 따라 주었잖아."
".......물론 그때는 너에게 맞춰주었지.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넌 친구가 아니니까."
"그게 뭐야."
"그럴 가치를 못 느껴."
짝-
말이 끝나자 마자, 손이 날라왔고, 그때부터 시작됐다. 집요한 구타가.
하지만 알고 있다. 아직은...이 정도는 정말 무섭게 화내는게 아니다. 그 처음에 재수없다고 여겼던 자기중심적이고 지독히도 오만하고 더러운 성질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연기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업을 이어간 그의 생활. 그런 생활이 그저 내 일상 속에서 투명하게 보여져서 그 속에서 그의 잔인성이 매일 새롭게 각인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알 수 있다. 정말 아주 많이 화를 눌러 죽이고 있다는 것을. 그가 진짜로 화냈을 때 어느 정도로 발광하는 지 알기 때문에 아직 내가 원하는 만큼 그를 자극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정도가 아니야. 난 말이야 널 미치게 만들거야. 정말 미치도록 몰아가서 네 그 간교한 머리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구타 이후에 이어지는 강간과 같은 성교도 이제는 슬슬 익숙해져야 한다. 이 정도로 힘들어해서는 안돼.
"다시 한번 경고한다. 그 영화 찍지마."
아침에 널부러져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찍을 거야."
그를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흥분은 하지 않은 듯했다.
"너.........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거야."
"찍고싶어."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가버린 진영이가 조금쯤 나에게 꺾여 준거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정말 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끝까지 고집을 피우지 못하는 거다.
1라운드는 나의 승리였다.
진영이는 끝내 내가 영화 촬영하는걸 막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의 조직원 몇 명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연달은 두 번의 구타 이후 확실히 기가 죽어있었다. 자신이 쉽게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기라도 한 걸까?
웃기고 있어. 강간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반 죽여놓더니......새삼스레 마음이 약해진척 하는 꼴이 우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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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어?"
"응?"
"기분이 좋아 보여."
"아....별일 아니야. 우리집 꼴통이 사고쳤거든. 젠장, 내가 그 뒤치닥 거리를 해야 하게 생겼어."
".....형?"
"형은 무슨-. 하지만 우리집 꼰대가 은근히 첫째 아들이라고 무지 생각해. 그러니 나라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무슨 일인데?"
"어떤 년 강간하다가 혀 짤렸어."
"............"
"푸하하하하하하- 세상에, 그 나불대던 입이 이제야 조용해질 것 같아."
황당함에 할말을 잃었지만....그 강간이란 단어에는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그 형에 그 동생이군.
"다 먹었어? 그럼 나가자"
하고 내 손을 잡아 끌었을 때 지끈 거리며 통증이 느껴졌다.
"윽-"
맞은 지 하루 밖에 안됐으니 상처가 아물려면 꽤 오래 걸릴 것 같다. 제길 거친 액션 씬도 있는데....
"괘, 괜찮아?"
".............."
내가 대답이없자, 그때부터 안절부절 했다.
이 멍청아. 그럼 그렇게 맞고 내가 하루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고 있을줄 알았냐?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모는 내내 계속 흘깃흘깃 내 안색을 살폈다.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지만 지금 저 놈 속이 타들어가는게 느껴진다. 흥, 원래대로 하라고. 네가 언제 이런거 신경쓰는 인간이었어?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닌 녀석이.
녀석은 그렇게도 시간이 없으면서 다음날도 전날처럼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주고 내 눈치를 슬슬 보며 이것저것 선물을 건네 왔다. 유치하게 빨간 장미 다발까지 얹어서.
아무튼 폭력을 사용하는 인간들이란 이렇게 다 똑같은 지 모르겠다. 흥분해서 자기 분에 못이겨 미친 듯이 때리다가도 이렇게 막상 뒤로는 미안해 어쩔줄 모르고 그 이전의 몇 배는 잘해주려고 한다. 양심은 있는 건지....
이거.... 완전히 매맞고 사는 마누라의 전형 아닌가...나 참..
"너 이거 왜이래."
분장실에 잠시 앉아 있을 때 어느 샌가 그 자식이 들어와 팔을 걷어냈다.
응? 밖에는 사람이 있을텐데........보디가드가 오늘은 2명이었던가?
그가 걷어낸 한쪽 팔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용케도 봤군.
"상관마."
"상관말라니.........그 자식이 때린 거냐?"
"............."
"도대체 왜."
윽-
"놔!"
어느새 내 셔츠를 잡아채서 앞을 활짝 열어 제꼈다. 며칠동안 온몸을 상처로 장식해왔기에 그가 보고 짓는 표정이 예상되었다.
"개.....자식."
이를 악문 새로 중얼거리는 폼이 상당히 열받은거 같다. 흥........열이 받기라도 하냐?
"비켜."
그의 팔을 쳐내고 일어섰다.
"너 바보야? 왜 맞고 사는 거야?"
뭐?
뭐라고?
왜 맞고 사냐고? 네가 그 말을 하는 거야 지금?
하-참나-
"그야.......... 맞고 사는게 짐승처럼 돌림빵 당하는 것 보다 낳으니까."
"..............."
문을 닫고 나오며 천천히 단추를 채우다가 익숙한 시선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
진영이....
"어..왜, 왠 일이야?"
"왜 혼자야? 이 자식들은 어딜-"
진영이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등뒤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이유를 알아버렸고.
눈치 빠른 녀석이 얼마나 앞서서 짐작을 할지 뻔한 이야기다.
다행히 그 자리에서 폭발하지는 않았다. 촬영현장에는 어느 연예방송에서 취재를 나와있었고,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런걸 염려 하다니.........아직 이성을 잃지는 않았군.
"몇 번이야."
아까 그 보디가드 두 명이, 초죽음 되도록 맞는 것을 지켜봤다. 지치지도 않는지 쉬지도 않고 사람을 때렸다. 그 중 한 명은 다리가 한쪽 부러지는걸 목격했다.
"그 자식이 너한테 손 댄게 몇 번이냐고 물었어."
"................."
"왜 말못해?"
".................."
"오늘이 처음 아니지? 그런 식으로 그 자식들 따돌리고 몇 번이나 몸 섞었던 거지 그렇지?"
"................."
"왜 반항 안했냐고는 묻지 않겠어. 하지만 왜 나에게 말 안했어?"
"................."
"그럼 내가 영화 못하게 할 것 같어서 그랬던거야? 고작 그것 때문에 그렇게 당하고 있었어?"
"................."
"말해, 그 자식이 어떻게 했냐니까?"
"................"
"너 나보고 지켜달라고 했잖아? 다시는 그 자식이 손 못대게 지켜달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말해. 그 자식이 다시는 영화 따위 찍지 못할 정도로 뭉개놓을 테니까."
"..........나.....이 영화 찍고 싶어."
"뭐?"
"그러니까 이번엔 그냥 내버려두라고. 그 사람 만한 배우 없어."
그제서야......... 그는 평소의 그 미친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대를 잔인하게 짖이기는.
몇 번을 갈구고 흥분시킬 때야 간신히 폭발하던 그 모습은 확실히 지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게 얼마나 절제된 폭력이었던가.......
서너 번 내 머리가 벽에 부딪히고,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뭉개지고 갈비뼈가 몇 개 부러졌다. 이빨이 서 너개는 나갔고, 방안에 있던 의자로 몇 번이고 내 다리를 내리찍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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