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선택
Pride
16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선택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항상 뻔뻔하고 자신 만만한 녀석이기에 별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녀석 때문에 알아차린게 아니다. 진영이 주변 사람들의 긴장된 표정과 잔뜩 굳어진 행동들이 단적으로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진영이는......... 오히려 이상하리 만치 느긋해 보였다.
"왜냐니..."
왜 그리 태연하냐고ㅡ, 묻는 내 질문에 진영이는 웃으며 반문했다.
"나 같이 철저히 악한 길을 택한 사람은 두 가지 부류야. 목표가 있어서 그걸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가 다른 길을 택하기에 이미....... 무기력해져서 다른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사람이 있어. 전자는 항상 긴장하지. 언젠가 끝이 보이니까, 그게 두려울 거야. 왜냐면.....목표가 있으니까. 그 목표를 잃게 되는게 두려울 거야. 하지만 후자는 단지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 끝난다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잃을게 없어. 정말 두려운게 뭔지 알아? 그건,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 계속된다는 거야. 그게 가장 끔찍해. 그러니까, 끝이 보일수록 웃을 수 밖에 없어. 난.......후자야."
그 순간만큼은 진영이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은 무표정이었다.
타인이게 지독하리만치 혹독하고, 스스로에게 어떤 규제도 가하지 않으며 철저히 자기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그의 모습이 사실은, 그저 되는대로 자신을 내몬 것에 불과하다는, 어쩌면 지극히 자학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저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나에게, 또 다른 타인에게 어떤 짓을 하던, 그건 어차피 사진영이란 인간이 원래 그렇게 사악하고, 그렇게 지독한 인간이니까.......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했지만 저런 자학적인 모습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조차.........진심이면서, 그토록 비틀리고 일그러진 행태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왜......
"이시현이란 사람이야. 계속 거절하기는 하지만, 일단 주소를 알아냈으니까, 그 집에서 진을 치는 방법밖에 없어."
"알았어. 그럼 지금 간다."
얼핏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니까.
단 한번 본적이 있다. 미국에서.
그럼, 이승현 인가?
일부러 진영이를 자극하며 맞았던 것도 다 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은........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움직이고 있다.
이시현과 담판을 지으러 갔던 진영이는 별다르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결렬된 건가.....
그럼에도 진영이는 별다르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쳇. 정말 이렇게 별거 아니었다니-"
"뭐가?"
"우리 아버지."
"지독한 인간이었는데-."
"................."
"뭐, 엄마라는 여자가 날 고아원에 버린 것 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말이야, 자기 아들이 뻔히 어디 있는줄 알면서 10년 동안 날 내버려두었었어."
"왜...?"
"그야, 별로 아쉬울게 없으니까."
"................"
"그러다 싹이 보였겠지. 피라는게 어딜 가는게 아니니 그 더러운 성질하며 폭력적인 걸 그대로 닮아 항상 학교고 고아원이고 뒤집어 놓곤 했으니까. 용케도 잊어 버리지 않고 큰 사고 칠 때 쯤 되니까 찾아오더라고."
"................"
"아버지가 정말로 무서웠어. 내가 조금이라도 반항할라치면 인정사정없이 거의 죽을 때 까지 팼으니까."
"..............."
"그때는 내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꼈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너무 우습잖아. 키득키득-"
혼자 내버려둔 채 방을 나왔다.
기분이 나쁘다.
"아파-"
"아, 미안"
"다리 아직 아파. 그러니까 그렇게 누르지마."
"그래-"
진영이는 살짝 위치를 바꿔, 다리를 내 다리사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친 다리로 입술을 가져가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올라오는 느낌에 몸이 저절로 힘이 들어가버린다.
"긴장하지마. 괜찮아-"
항상 하는 말. 같이 잘 때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이 행위가 내게는 역겹고 증오스러운 것이기에 테크닉 따위로 조금 전율하고 느낀다 해도 근본적인 거부감을 어찌할 수 있는건 아니다.
이런걸 트라우마라고 하던가....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섹스가 아니라........이 놈이 싫은 거다.
"너........섹스가 무서워서 그런거 아니지."
속으로 곱씹던 생각들을 지울 새도 없이 물어오는 바람에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무서워서가 아니야. 단지, 내가 싫을 뿐이지. 그렇지?"
"좋을 이유가 없는건 분명해."
"...........그럼....왜야."
"................."
"왜 나를 택했어?"
"................."
"나를 싫어하면서, 왜 일부러 날 택하고, 날 자극하는 거야?"
"최악을 선택하기 싫어서 차악을 선택한 것 뿐이야."
"................."
"말했잖아. 내가 널 선택한 이유같은거 생각하지마. 그냥 너희 둘 다에게 당하는데 지쳤을 뿐이야."
그 날 이후 진영이는 매.우. 바빠졌다.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직접 몸으로 뛰며 구역을 정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여러 개가 여기저기 넘보던 다른 조직들로 넘어간 것 같은데, 진영이가 직접 몸으로 뛰며 조직의 건재함을 알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나 갈까.....이미 풍지박산이 난 것 같은데-
처음 며칠은 상당히 성과가 좋은 것 같았다. 그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몸에 하나하나 상처를 달고 왔다. 그리고 어젯밤 얼굴에 칼자국을 만들어왔다.
거기에서는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차마.......손을 내밀어 닦아주지는 못한 채 인상을 찌푸리고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스스로 닦아내었다.
"별거 아니야."
그래, 정말 별거 아니지.
네가 그 상처를 낸 상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대충 상상이 가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당한 상처에 비하면 정말....아무 것도 아닐 꺼야. 그렇지? 넌 그를 죽였을 테니까.
힘겨운 싸움들이 계속되었다.
상처는 이제 하나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칼침을 맞고 돌아왔으니까.
그 상처를 보고 두렵거나 걱정스럽지 않았다. 그냥 동정이 안가서가 아니다.
저렇게 크게 상처를 입으면 이제..........당분간은 싸우러 돌아다니지 않을테니까. 차라리 잘된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생각에 스스로 기분이 나빠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게 바로........내가 원하던건데....바로 내가 그렇게 되길 바란건데....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절대 두 마리를 다 상대하지 않을 거야. 한 쪽만을 유인하거나 몰아서 집요하게 공격해야지'
그랬다. 첫 상대로 진영이를 지목했고, 이승현이 뭔가를 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 것도 잃을게 없다면서, 뭣하러 이렇게 집요하게 싸우는 거야. 그냥 내버려둬."
내 입에서 멋대로 나온 말이다.
나를 거의 반은 죽여놓았던 인물이 매일매일 상처를 달고 오고, 이렇게 칼맞은 것까지 보는게 속 시원할 텐데.......거지같이 약한 마음이 그걸 참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정말 그러면 될텐데 말이야."
진영이는 자신을 비웃듯이 단지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 지겨....이넘의 엔티카 왜 일케 용량이 적냐....--+
-------------------------------------------------
"너 몸도 좋아졌으니까, 다시 일 시작하자."
"네......."
"저번 영화는 아깝지만 뭐, 기회가 그것만 있는건 아니니까-"
"아무거나 괜찮아요."
진영이가 누워 있는 동안 그 옆에 있고 싶지 않았다. 답지 않게 누워있는 그 꼴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같잖은 동정심을 갖는 나의 뇌구조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열받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이렇게 그 자식과 만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특히.......아직까지 아주 가까운 사이로 소문이 난 우리로서는 예전처럼 자주 토크쇼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정말 한수민씨는 오랜만이네요. 살도 많이 빠지시고- 그렇죠 이승현씨?"
"네, 상당히 몸이 좋은 편이었는데, 쉬는 동안 아팠나 봅니다."
"그래요. 그런 말 많이 들으셨죠? 수민씨?"
"몸이 좋다는 말이요? 하하....그렇기는 하죠"
속으로 불끈 솟는 것이 있었지만 꾸욱 눌러참았다.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갑작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러고보니 항상 수민씨랑 승현씨가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봤어요. 두 분이 친하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요?"
"데뷔 때부터 줄곧 도와주었습니다. 형이요."
"그래요? 승현씨가 좋은 선배였나 보군요."
"도와주기는요. 그저 이것저것 잘 통해서요."
가증스러운 말을 들으며 속으로 코웃음 치는 순간, 허벅지에 슬며시 그의 손이 놓여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참을 그 손을 떼지 않았다.
"음, 두 분이서 여행도 자주 다니셨다던데-"
"네, 여기저기 함께 다녔던 기억이 많군요."
슬며시 그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을 뿐 떼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길-
"특히 기억나는 곳 있으세요?"
"미국에 김석현씨 뮤직비디오 촬영 때 함께 갔었죠."
떨어졌다.
"아, 저도 그 뮤직비디오 아주 인상깊게 봤어요.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렇습니까? 역시 노래가 좋았으니까요."
"물론 노래도 좋았지만-"
안심하는 찰나 다시 손이 무릎께에 놓여졌다. 손가락으로 슬슬 원을 그리며..........명백히 성적인 메시지로 가득한 그것을 참아내야 했다. 토크쇼 내내 내 몸을 기어다니는 손길을 분명하게 인식하며 애써 태연한 척 웃어야 했다.
"끝이 보이잖아. 뭘 더 이상 망설이지?"
"................"
"네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과거로 돌릴 수 있어. 너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그러니까- 돌아와"
"실수라니-"
"네가 그 녀석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잘 알아."
"그래서?"
"스스로 자학하는게 아니라면 이제 그만하라고."
"..........모든게.......그렇게 당신 마음대로 될거라고 생각하지마."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난 당신 얼굴 보는게 구역질나. 당신한테 이런말 듣는다는 것 자체도 끔찍하다고. 더 이상 내 일에 관여하지마."
"어째서야. 왜.......나나 그 녀석이나 너에게 똑같은 짓을 했어. 그런데 왜 그녀석이지?"
"궁금해?"
"그래. 왜 그녀석인지 궁금해. 정말로"
그래...궁금하겠지.
"인간이 자기 자신은 사랑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
"그건 배신 때문이야. 사랑을 주고 믿음을 주고 신뢰했던 대상이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 때문에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거야."
"................."
"중요한건 진영이가 어떻다는게 아니야. 당신은..........내가 가장 신뢰하고 따랐던 사람이야. 가장 애정을 가진 상대였어. 나를 정말로 크게 상처 입힌건......그런 당신이란 사람이 배신했다는 거야. 가장 저질적인 방법으로. 그것도 비겁하게 진영이를 방패삼아서. 둘 다 똑같다고 하지마. 당신이란 사람 난 존경하기까지 했어. 당신의 그 프라이드며, 그 확신에 찬 행동들, 항상 당당했고 비겁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고 그래서 당신은 빛났었어. 그런 당신을 내가 얼마나............."
"................"
"얼마나..........좋아했는지 알아?"
"................"
"그런데 그런 당신이.......인간이 정말 끔찍한 존재란걸 나에게 알려주었어."
"어딜 가는 거야?"
"아.....일이 생겼어. 기다리지 말고 자."
"너, 다 낳지도 않았잖아. 그 상처-"
"이 정도는 괜찮아."
왜 일까.
나가려는 그를 자꾸만 붙잡게 된다.
"중요한 일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 네가 그렇게 뭔가 열심히 하는거 이상해."
"피곤한데 쉬어라. 얼마 안 걸릴 거야."
말린다고 들을 인간이 아니지....
내 스스로가 웃긴다는 생각에, 나가는 진영이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모두....자신이 자초한 일인데. 어차피.
"아........생각해봤어."
나가려다 말고 갑자기 멈춰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 말이야, 왜 이렇게 이 조직을 살리고 싶어지는지......생각해봤어."
".............."
"아마......잃고 싶지 않은게 생겨서 그런가봐"
그날........그렇게 나간 진영이는.........집으로 오지 못했다.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 채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
16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선택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항상 뻔뻔하고 자신 만만한 녀석이기에 별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녀석 때문에 알아차린게 아니다. 진영이 주변 사람들의 긴장된 표정과 잔뜩 굳어진 행동들이 단적으로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진영이는......... 오히려 이상하리 만치 느긋해 보였다.
"왜냐니..."
왜 그리 태연하냐고ㅡ, 묻는 내 질문에 진영이는 웃으며 반문했다.
"나 같이 철저히 악한 길을 택한 사람은 두 가지 부류야. 목표가 있어서 그걸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가 다른 길을 택하기에 이미....... 무기력해져서 다른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사람이 있어. 전자는 항상 긴장하지. 언젠가 끝이 보이니까, 그게 두려울 거야. 왜냐면.....목표가 있으니까. 그 목표를 잃게 되는게 두려울 거야. 하지만 후자는 단지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 끝난다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잃을게 없어. 정말 두려운게 뭔지 알아? 그건,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 계속된다는 거야. 그게 가장 끔찍해. 그러니까, 끝이 보일수록 웃을 수 밖에 없어. 난.......후자야."
그 순간만큼은 진영이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은 무표정이었다.
타인이게 지독하리만치 혹독하고, 스스로에게 어떤 규제도 가하지 않으며 철저히 자기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그의 모습이 사실은, 그저 되는대로 자신을 내몬 것에 불과하다는, 어쩌면 지극히 자학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저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나에게, 또 다른 타인에게 어떤 짓을 하던, 그건 어차피 사진영이란 인간이 원래 그렇게 사악하고, 그렇게 지독한 인간이니까.......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했지만 저런 자학적인 모습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조차.........진심이면서, 그토록 비틀리고 일그러진 행태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왜......
"이시현이란 사람이야. 계속 거절하기는 하지만, 일단 주소를 알아냈으니까, 그 집에서 진을 치는 방법밖에 없어."
"알았어. 그럼 지금 간다."
얼핏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니까.
단 한번 본적이 있다. 미국에서.
그럼, 이승현 인가?
일부러 진영이를 자극하며 맞았던 것도 다 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은........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움직이고 있다.
이시현과 담판을 지으러 갔던 진영이는 별다르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결렬된 건가.....
그럼에도 진영이는 별다르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쳇. 정말 이렇게 별거 아니었다니-"
"뭐가?"
"우리 아버지."
"지독한 인간이었는데-."
"................."
"뭐, 엄마라는 여자가 날 고아원에 버린 것 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말이야, 자기 아들이 뻔히 어디 있는줄 알면서 10년 동안 날 내버려두었었어."
"왜...?"
"그야, 별로 아쉬울게 없으니까."
"................"
"그러다 싹이 보였겠지. 피라는게 어딜 가는게 아니니 그 더러운 성질하며 폭력적인 걸 그대로 닮아 항상 학교고 고아원이고 뒤집어 놓곤 했으니까. 용케도 잊어 버리지 않고 큰 사고 칠 때 쯤 되니까 찾아오더라고."
"................"
"아버지가 정말로 무서웠어. 내가 조금이라도 반항할라치면 인정사정없이 거의 죽을 때 까지 팼으니까."
"..............."
"그때는 내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꼈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너무 우습잖아. 키득키득-"
혼자 내버려둔 채 방을 나왔다.
기분이 나쁘다.
"아파-"
"아, 미안"
"다리 아직 아파. 그러니까 그렇게 누르지마."
"그래-"
진영이는 살짝 위치를 바꿔, 다리를 내 다리사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친 다리로 입술을 가져가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올라오는 느낌에 몸이 저절로 힘이 들어가버린다.
"긴장하지마. 괜찮아-"
항상 하는 말. 같이 잘 때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이 행위가 내게는 역겹고 증오스러운 것이기에 테크닉 따위로 조금 전율하고 느낀다 해도 근본적인 거부감을 어찌할 수 있는건 아니다.
이런걸 트라우마라고 하던가....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섹스가 아니라........이 놈이 싫은 거다.
"너........섹스가 무서워서 그런거 아니지."
속으로 곱씹던 생각들을 지울 새도 없이 물어오는 바람에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무서워서가 아니야. 단지, 내가 싫을 뿐이지. 그렇지?"
"좋을 이유가 없는건 분명해."
"...........그럼....왜야."
"................."
"왜 나를 택했어?"
"................."
"나를 싫어하면서, 왜 일부러 날 택하고, 날 자극하는 거야?"
"최악을 선택하기 싫어서 차악을 선택한 것 뿐이야."
"................."
"말했잖아. 내가 널 선택한 이유같은거 생각하지마. 그냥 너희 둘 다에게 당하는데 지쳤을 뿐이야."
그 날 이후 진영이는 매.우. 바빠졌다.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직접 몸으로 뛰며 구역을 정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여러 개가 여기저기 넘보던 다른 조직들로 넘어간 것 같은데, 진영이가 직접 몸으로 뛰며 조직의 건재함을 알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나 갈까.....이미 풍지박산이 난 것 같은데-
처음 며칠은 상당히 성과가 좋은 것 같았다. 그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몸에 하나하나 상처를 달고 왔다. 그리고 어젯밤 얼굴에 칼자국을 만들어왔다.
거기에서는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차마.......손을 내밀어 닦아주지는 못한 채 인상을 찌푸리고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스스로 닦아내었다.
"별거 아니야."
그래, 정말 별거 아니지.
네가 그 상처를 낸 상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대충 상상이 가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당한 상처에 비하면 정말....아무 것도 아닐 꺼야. 그렇지? 넌 그를 죽였을 테니까.
힘겨운 싸움들이 계속되었다.
상처는 이제 하나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칼침을 맞고 돌아왔으니까.
그 상처를 보고 두렵거나 걱정스럽지 않았다. 그냥 동정이 안가서가 아니다.
저렇게 크게 상처를 입으면 이제..........당분간은 싸우러 돌아다니지 않을테니까. 차라리 잘된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생각에 스스로 기분이 나빠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게 바로........내가 원하던건데....바로 내가 그렇게 되길 바란건데....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
'절대 두 마리를 다 상대하지 않을 거야. 한 쪽만을 유인하거나 몰아서 집요하게 공격해야지'
그랬다. 첫 상대로 진영이를 지목했고, 이승현이 뭔가를 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 것도 잃을게 없다면서, 뭣하러 이렇게 집요하게 싸우는 거야. 그냥 내버려둬."
내 입에서 멋대로 나온 말이다.
나를 거의 반은 죽여놓았던 인물이 매일매일 상처를 달고 오고, 이렇게 칼맞은 것까지 보는게 속 시원할 텐데.......거지같이 약한 마음이 그걸 참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정말 그러면 될텐데 말이야."
진영이는 자신을 비웃듯이 단지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 지겨....이넘의 엔티카 왜 일케 용량이 적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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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몸도 좋아졌으니까, 다시 일 시작하자."
"네......."
"저번 영화는 아깝지만 뭐, 기회가 그것만 있는건 아니니까-"
"아무거나 괜찮아요."
진영이가 누워 있는 동안 그 옆에 있고 싶지 않았다. 답지 않게 누워있는 그 꼴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같잖은 동정심을 갖는 나의 뇌구조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열받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이렇게 그 자식과 만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특히.......아직까지 아주 가까운 사이로 소문이 난 우리로서는 예전처럼 자주 토크쇼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정말 한수민씨는 오랜만이네요. 살도 많이 빠지시고- 그렇죠 이승현씨?"
"네, 상당히 몸이 좋은 편이었는데, 쉬는 동안 아팠나 봅니다."
"그래요. 그런 말 많이 들으셨죠? 수민씨?"
"몸이 좋다는 말이요? 하하....그렇기는 하죠"
속으로 불끈 솟는 것이 있었지만 꾸욱 눌러참았다.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갑작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러고보니 항상 수민씨랑 승현씨가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봤어요. 두 분이 친하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요?"
"데뷔 때부터 줄곧 도와주었습니다. 형이요."
"그래요? 승현씨가 좋은 선배였나 보군요."
"도와주기는요. 그저 이것저것 잘 통해서요."
가증스러운 말을 들으며 속으로 코웃음 치는 순간, 허벅지에 슬며시 그의 손이 놓여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참을 그 손을 떼지 않았다.
"음, 두 분이서 여행도 자주 다니셨다던데-"
"네, 여기저기 함께 다녔던 기억이 많군요."
슬며시 그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을 뿐 떼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길-
"특히 기억나는 곳 있으세요?"
"미국에 김석현씨 뮤직비디오 촬영 때 함께 갔었죠."
떨어졌다.
"아, 저도 그 뮤직비디오 아주 인상깊게 봤어요.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렇습니까? 역시 노래가 좋았으니까요."
"물론 노래도 좋았지만-"
안심하는 찰나 다시 손이 무릎께에 놓여졌다. 손가락으로 슬슬 원을 그리며..........명백히 성적인 메시지로 가득한 그것을 참아내야 했다. 토크쇼 내내 내 몸을 기어다니는 손길을 분명하게 인식하며 애써 태연한 척 웃어야 했다.
"끝이 보이잖아. 뭘 더 이상 망설이지?"
"................"
"네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과거로 돌릴 수 있어. 너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그러니까- 돌아와"
"실수라니-"
"네가 그 녀석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잘 알아."
"그래서?"
"스스로 자학하는게 아니라면 이제 그만하라고."
"..........모든게.......그렇게 당신 마음대로 될거라고 생각하지마."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난 당신 얼굴 보는게 구역질나. 당신한테 이런말 듣는다는 것 자체도 끔찍하다고. 더 이상 내 일에 관여하지마."
"어째서야. 왜.......나나 그 녀석이나 너에게 똑같은 짓을 했어. 그런데 왜 그녀석이지?"
"궁금해?"
"그래. 왜 그녀석인지 궁금해. 정말로"
그래...궁금하겠지.
"인간이 자기 자신은 사랑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
"그건 배신 때문이야. 사랑을 주고 믿음을 주고 신뢰했던 대상이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 때문에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거야."
"................."
"중요한건 진영이가 어떻다는게 아니야. 당신은..........내가 가장 신뢰하고 따랐던 사람이야. 가장 애정을 가진 상대였어. 나를 정말로 크게 상처 입힌건......그런 당신이란 사람이 배신했다는 거야. 가장 저질적인 방법으로. 그것도 비겁하게 진영이를 방패삼아서. 둘 다 똑같다고 하지마. 당신이란 사람 난 존경하기까지 했어. 당신의 그 프라이드며, 그 확신에 찬 행동들, 항상 당당했고 비겁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고 그래서 당신은 빛났었어. 그런 당신을 내가 얼마나............."
"................"
"얼마나..........좋아했는지 알아?"
"................"
"그런데 그런 당신이.......인간이 정말 끔찍한 존재란걸 나에게 알려주었어."
"어딜 가는 거야?"
"아.....일이 생겼어. 기다리지 말고 자."
"너, 다 낳지도 않았잖아. 그 상처-"
"이 정도는 괜찮아."
왜 일까.
나가려는 그를 자꾸만 붙잡게 된다.
"중요한 일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 네가 그렇게 뭔가 열심히 하는거 이상해."
"피곤한데 쉬어라. 얼마 안 걸릴 거야."
말린다고 들을 인간이 아니지....
내 스스로가 웃긴다는 생각에, 나가는 진영이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모두....자신이 자초한 일인데. 어차피.
"아........생각해봤어."
나가려다 말고 갑자기 멈춰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 말이야, 왜 이렇게 이 조직을 살리고 싶어지는지......생각해봤어."
".............."
"아마......잃고 싶지 않은게 생겨서 그런가봐"
그날........그렇게 나간 진영이는.........집으로 오지 못했다.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 채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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