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제7장 - 접근(接近) 1

등록 2026.10.12 8.8천자 조회 1 좋아요 0 댓글 0 15세 이상 이용가
독로무한
15화. 제7장 - 접근(接近) 1


외산현 시골 마을의 밤은 낮보다 훨씬 아름다운 구석이 있었다.
두 동문 사형제는 뜰에 내려앉는 달빛에 온몸을 적시며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한참 만에 하후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한 얘기를 모두 들었겠구나.”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은의 차림의 사람이 하후극 쪽으로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혁무빙의 아름다운 얼굴이 어둠 속에서 창백한 빛을 발했.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두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하후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그때의 일은 이미 털어 버렸다. 그날의 일 중 아직 마음속에 남겨 두고 있는 것은 사부님께서 해주신 말씀뿐이다.”
“옳으신 말씀이지요.”
혁무빙은 다시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그래, 너는 이미 깨닫고 있었구나. 나는 얼마 전에야 그 말이 진실로 옳다는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문에는 돌아오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벌써 십 년이나 떠나 계셨습니다.”
순식간에 머리 위를 가로질러 어둠 속 저 멀리로 사라지는 유성(流星)을 바라보며 하후극은 나직하게 답했다.
“내 나름대로의 완성을 이루기 전에는 강호를 더 떠돌 생각이다. 사부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려라.”
“지금 하고 계신 일도 검도를 위함입니까?”
하후극을 돌아보는 혁무빙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차갑게 타오르는 그 눈빛을 똑바로 마주보며 하후극은 굳은 음성을 내뱉었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으나 나름대로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너는 신경 쓸 것 없다.”
“아까 그 친구, 저도 아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죠. 왜 그를 뒤쫓으시는 겁니까?”
혁무빙은 직선적으로 질문을 던지고서 하후극의 반응을 날카롭게 주시했다.
“그래, 불쑥 산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그의 종적을 잠시 놓친 사이 너를 만났던 게로구나.
그럼 음양쌍마도 네가 죽였겠구나. 놀라운 솜씨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쩐지! 그
동안 또 발전했군그래.”
하후극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말씀을 다른 데로 돌리시는군요, 사형!”
“너답지 않구나. 너는 본래 검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 아니더냐? 나에게 마음쓸 것
없다. 혹여 네가 그날의 일로 미안한 마음에서 이러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 주고 싶구나. 실력이
뒤떨어지면 패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걸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못나지는 않았다.”
하후극의 말은 몽뇌산에게 하던 것과는 달리 찬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사형제 사이에 서먹서먹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하후극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조금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후…… 그만 가보거라. 너를 만나 반가웠으나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멀리 나가지 않으마. 사부님께는 그냥 잘 지내더라고만 말씀드려라.”
그 말을 끝으로 하후극은 망설임없이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혁무빙은 한동안 하후극이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며 석상(石像)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듯한 작은 한숨 소리는 바람 소리였을까?
밤은 말없이 깊어만 갔다.
* * *
“아아악! 에고고…… 나 죽는다! 엄마아……!”
산적도 아플 땐 별수없이 엄마를 찾는가 보다.
도곤은 별로 크지 않은 객방 안을 온통 헤집으며 거의 발광(發狂)에 가깝게 몸부림을 쳐댔다.
그의 곁에 빙 둘러앉아 있던 동료들은 난데없는 그의 발작에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치였다.
한 손에는 술, 다른 손에는 구운 오리다리를 하나씩 든 채 그들은 사전에 의논이라도 한 듯 똑같이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술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그들의 벌어진 입은 할말을 잃은 그들 대신에 도곤이 갑자기 왜 저러는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는 무언의 말을 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막 도곤이 팔자에도 없는 하인 생활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장봉황에게서 빼앗아 온 돈으로 거창하게 한판 벌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술을 한 모금 마시자마자 저 난리였다.
평소 산채에서도 내로라 하는 말술을 자랑하던 도곤의 저런 모습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배를 움켜잡고 온 방안을 떼구루루 구르고 있는 도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보였다.
“형님! 왜 그러슈?”
개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수습한 관삼이 코끝이 빨개진 채 물었다.
“배, 배가…… 아이고! 내 배야!”
도곤은 엉금엉금 기어가 침상다리를 붙들고는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이잉? 갑자기 웬 배탈? 거 이상하네…… 술이 쉰 건가?”
“어? 술이 쉬었다구? 난 맛있기만 한데?”
“너한테 맛없는 것도 있냐?”
술이 쉬어서 배탈이 난 게 아니냐는 관삼의 의견을 둘러싸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해대는 통에 방안은
금세 시장바닥으로 화했다.
거기에 악을 써대는 도곤의 목소리까지 합류(合流)하고 보니, 이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 도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숨넘어가는 소리가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그들의 입을 막았다.
“억!”
순간적으로 방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입을 꾹 다물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곤을 지켜보던 관삼 등은 별안간 예고도 없이 도곤이 벌떡 일어나자
다들 몸을 움찔거렸다.
“혀, 형님! 이젠 괜찮……?”
“비켜!”
조심스레 묻는 관삼의 말을 사정없이 가로막는 한소리 외침과 함께 도곤은 빛살같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도곤의 행동은 너무나 급작스러운 것이라 방에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멀거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대략 한 식경 가량 흘렀을까. 일행 중 나이도 제일 어리고 독산채의 산적 계보상으로도 가장
막내인 초군영(楚君英)이 궁둥이를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나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말하면서도 벌써 반쯤 몸을 일으키는 것이, 불화살 맞은 멧돼지처럼 밖으로 뛰쳐 나간 채 종무소식(終無消息)인 도곤을 두고 슬슬 걱정이 이는 눈치였다.
“그래! 한번 나가 봐라.”
관삼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초군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막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끼기긱`─`!
객방 문이 열리며 기진맥진한 도곤의 모습이 놀라서 휘둥그래진 초군영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형님!”
초군영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하얗게 질린 도곤의 얼굴과 맥없이 풀린 눈동자, 거칠하게 말라
있는 입술을 차례로 훑어 내렸다.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힘없이 문짝을 붙잡고 기대 있는 도곤을 향해 관삼이 속삭이듯 물었다.
“형님! 왜 그러고 서 있수? 혹, 누구에게 당하기라도……?”
아닌게아니라 지금 도곤의 모습은 강호의 고수와 한 사나흘 쉬지 않고 기의 대결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보였다.
기력(氣力)이 완전히 소진(消盡)되어 보이는 그를 향해 잔뜩 긴장해서 묻는
관삼의 질문이 들리지도 않는지, 도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중병을 앓고 난 환자처럼 힘겹게 문턱을 넘어 방안에 발을 디디던 도곤의 움직임이 누가 마혈이라도 점한 듯 별안간 딱 멈춰졌다.
그러더니 이내 도곤은 아랫배를 움켜쥐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로 돌아섰다.
돌아서자마자 냅다 달려나가는 도곤을 쳐다보며 너나할것없이 느끼는 의문은 바로 하나였다.
“같이 마셔 놓고 형님만 왜 저러는 건데?”
모두의 의문을 대변하듯 관삼이 코끝을 문지르며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나 딱히 답을 찾아 내지 못한 그들은 한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멀뚱멀뚱 눈만 맞추고 있었다.
이제껏 문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초군영이 밖으로 다시 나가 보려는 찰나 손 하나가 툭, 하고 문턱을 짚었다.
“엇! 형님!”
초군영은 얼른 무릎을 꿇으며 방안으로 기어 들어오는 도곤을 부축했다.
그 잠깐 사이 몰라볼 정도로 푸석해진 도곤의 얼굴을 놀라는 눈으로 쳐다보며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할말을 찾지 못했다.
초군영의 부축을 받고 들어와 방바닥에 대(大) 자로 뻗은 도곤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 헉헉…… 그 괴상한 자식이 준 게 정말 독인가 봐. 헤에헥! 그 의원 영감탱이의 말을 믿는
게 아닌데…… 결국 독이 발작하고 만 거야.”
“하지만 형님 말대로라면 그 독은 두 달 후에나 해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으니 아직 한 달이나 남았지
않소? 그리고 내가 보기엔 좀 탈진해
보이는 거말고는 별로 독이 발작한 것 같진 않은데?”
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기운없이 중얼대는 도곤의 넋두리에 관삼이 제법 날카롭게 이의를 제기했다.
순간, 탁 풀어진 도곤의 눈동자가 겨우 초점을 맞춰 관삼에게 내리꽂혔다.
그 와중에도 노려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은 게, 기운만 있었다면 폭발하기 일보직전(一步直前) 같았다.
“너, 그래! 네 일이 아니라 이거지? 싸가지없는 놈! 네놈도 측간에서 한 식경 넘도록 몸에 든 거 다 뽑아
내고 있어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헉헉…… 임마, 사람이 진실만 말하고 사냐? 네놈이 우리 고객(顧客)들을
을러댈 때 ‘다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조금만 나눠 갖자는 거야!’ 한다고 해서 진짜 그대로 하냔 말이다!”
“그건 도 형님의 말이 일리가 있네. 그 자식이 해약을 안 먹으면 두 달 후에 발작한다고 그래 놓고 그게 실은 한 달이었을 수도 있잖아. 도
형님을 보니 아무래도 한 달이 맞는 것 같아. 안 그래?”
전에 주루에서 마구간지기 노릇을 했던 정일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름대로 심각하게 의견을 말했다.
없는 기운 있는 기운 다 짜내서 관삼에게 한바탕 퍼부어댔던 도곤은 흐리멍텅하게 풀려서
더 작아 보이는 눈을 있는 대로 치켜뜨며 정일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죽으라고 아주 염불을 해라, 해! 켁켁! 아이고오…… 기운없어라! 이러다 정말 내일 당장 죽는 거 아닌가 몰라.”
“그럼, 어떻게 하지? 형님, 어떻게 할 거유?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을라우?”
관삼이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는 도곤을 채근하고 나섰
“해약도 없는데 그럼 어쩌냐?”
“혹시 그 장, 무슨 새라는 자식이 몰래 놈에게서 해약을 받아 놓지 않았을까?”
관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곤이 자리에서 발딱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거야! 그 두 놈은 그러고도 남아. 찜 쪄 먹을 놈들! 나 간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비틀거리며 문을 나서는 도곤의 모습은 너무나 필사적(必死的)이어서
감히 누구도 그를 붙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로지 초군영만이 문 앞까지 졸졸 따라나서며 머뭇머뭇 도곤을 만류했다.
“형님! 지금은 몸이 말이 아니니 기력이나 회복한 다음에 떠나는 게……”
슬쩍 옷소매를 부여잡는 초군영의 손을 뿌리치다 말고 앞으로 풀썩 꼬꾸라지려던 도곤의 몸이 문짝을 붙잡으며 그 자리에서 굳어들었다.
“또, 또 시작이다! 으윽! 엄마야……!”
미친 듯이 측간을 향해 돌진(突進)하는 도곤의 등뒤로 심히 걱정스러운 듯한 동료들의 눈빛이 따라붙었다.
어쨌거나 도곤은 결국 사흘 뒤에야 간신히 장봉황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떠나면서 며칠 새 핼쑥해진 얼굴로 도곤이 중얼거린 말은 이랬다.
“그놈의 꿈은 역시 개꿈이었어. 너희도 꿈에 금빛 찬란한 거조가 나타나면 단단히 몸조심해야 해!”

* * *
도곤의 꿈을 개꿈으로 만든 장본인!
도곤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사이 장봉황도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모용도도가 놓고 간 그 말은 그 동안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는지는 몰라도 사람으로 치자면 족히 보름간은
요양을 해야 될 만큼 기진맥진해 있었다.
아마 말〔馬〕한테 입이라도 있다면 모용도도에게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하루밤낮을 얘기하리라.
한시라도 빨리 모용도도의 뒤를 쫓아가고 싶어 몸이 단 장봉황에게 그 말은 골칫거리 그 자체였다.
어디다 맡기고 가자니 모용도도를 만났을 때 면목이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데리고 가자니 지쳐서 달리지도 못하는 말이란 짐밖에 안 되는 존재였다.
어깨에 둘러메지도 못하는 짐!
하는 수 없이 돈을 잔뜩 쏟아 부어 원기 회복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먹이고 나서야 겨우 이틀 만에 길을 떠날 수가 있었다.
장봉황은 이제 제법 기운을 차린 그 말 위에 앉아 개봉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달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모용도도의 화려하고 도도하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보면 얼마나 미안해 할까? 미안한 만큼 더 반가워하겠지?
또, 이렇게 기운 넘치는 모습으로 나타난 말을 보게 되면 자신의 인정많고 자상한 성품에 얼마나 감동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가 자신에게 반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 장봉황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눈까지 지그시 감은 채 행복한 상상에 젖어 있느라 그는 자신의 코앞에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달리는 말 위에서 한눈을 팔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일이 벌어졌다.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로 도배를 하고 있던 장봉황은 갑자기 한 줄기 미풍이
스치는 느낌을 받은 순간, 자신의 몸이 붕 날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그는 몸이 두둥실 날아오르는 그 느낌을 자신의 행복감 때문이라고 여겼다.
왜, 날아오를 것 같은 행복감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이란 말도 몸소 체험해야만 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절망감이 아니라 눈앞이 노래지는 충격이었지만 어쨌거나 고통스럽다는 데선 일치했다.
쿵!
사람은 항상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고 아버지께선 늘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의미는 사람에겐 높은 이상과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지금 장봉황은 하늘이 아니라 땅을 보고 있었다. 아니, 땅도 보이지 않았다.
땅바닥에 얼굴을 정통으로 박은 사람의 눈에 무엇이 보이
죽은 듯 엎어져 있는 그의 목덜미에 뭔가 뜨뜻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혹시 피?’
오락가락하는 정신 속에서도 장봉황은 심장이 덜컥했다.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봉황의 날개는 펴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길가에서 허무하게……’
아니나다를까 몸이 점차 싸늘하게 식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만사가 귀찮아졌다.
어서 몸을 일으켜서 상처를 살피고 도움을 청할 방도라도 찾아봐야겠는데 어차피 죽을 거면 괜히 힘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뜨뜻한 그 무엇이 목을 타고 내려와 뺨을 적시자 장봉황은 죽음을 실감했다.
장봉황의 입가에 그 액체가 느껴졌다.
그 찐득거리는 야릇한 맛!
그리고 속이 울렁거리는 묘한 냄새!
장봉황은 죽어 가는 사람답지 않게 번개같은 동작으로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좀 어지러웠지만 별 무리 없이 몸을 세운 그의 눈에 꼬리를 흔들며 푸들거리는 모용도도의 말〔馬〕이 들어왔
그놈은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며 그 큰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장봉황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태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저놈의 원수 같은 말이 달리다 말고 갑작스레 멈춰 서는 바람에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 있던 자신은 그대로 앞으로 튕겨져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히게 된 것이다.
저놈의 말이 갑자기 멈춰 선 이유?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 길가에 난 풀이라도 봤겠지!
아니면 관도에 늘어선 나무 사이로 길 잃은 암말이라도 보았든가!
장봉황은 자신이 한 순간이라도 죽음을 생각했다는 걸 떠올리자 저놈의 말을 죽이고만 싶었다.
싸늘히 식어 가는 몸?
누구든지 한겨울에 땅바닥에 배를 깔고 잠깐이라도 엎드려 있어 보아라. 식는 정도가 아니라 어는 듯한 추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덜미에서 흐르던 피는?
바로 이 부분이 그가 가장 화나는 부분이었다.
저 괘씸한 짐승이 자신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도 모자라 저 커다란 혓바닥으로 자신의 목을 핥았다는 사실이 그의 기분을 더욱더 더럽게 만들었다.
그의 몸이 주체할 수 없는 살기로 부들부들 떨렸다.
완전히 망가져 버렸을 자신의 우아한 모습을 생각하자 저놈의 말을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장봉황은 음산한 눈빛으로 말에게 다가갔다.
말은 그의 모습을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멍청해 보이는 그 모습이 장봉황의 화를 더 부채질했다.
‘저런 멍청한 말 때문에 나의 기품있는 모습이……’
그의 내심을 알 리 없는 말이 다정한 울음 소리를 내며 그에게 한걸음 다가서자 장봉황은 제자리에 우뚝
멈추고 말았다.
분노로 가득 찼던 그의 머릿속에 비로소 이성의 소리가 울렸다.
‘안 돼! 저 말은 모용 소저의 말이야!’
모용도도의 얼굴이 떠오르자 장봉황은 말을 죽이려던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내란 인내를 최대한 쥐어짜는 한편, 장봉황은 애써 자신의 지금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자신의 몰골이 얼마나 가관일지 눈에 선했지만 생각해 봐야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연녹색 화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신태비범한 모습은 간데없이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얼굴엔 껄쭉한
말의 침이나 묻히고 있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장봉황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고 나서 먼지를 세심하게 털어 내더니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말 위에 다시 올라탔다.
매무새를 다듬을 만한 마을을 찾고자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장봉황은 말의 뒤통수를 가끔 노려보았다.
‘이놈을 모용 소저에게 달래서 그냥 확 죽여 버려?’
멀리 마을이 보이자 말에 대한 복수 방법을 궁리하던 그의 머릿속엔 도대체 목욕을 몇
번이나 해야 이 찜찜한 기분이 사라질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생각에 장봉황은 아까 그가 말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느꼈던 그
미풍에 대한 것은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그 가볍게 스치던 미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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