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제7장 - 접근(接近) 2
독로무한
16화. 제7장 - 접근(接近) 2
그의 차림은 좀 독특했다.
푸른 옷을 입고 은은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관모에다 손에 든 불진까지.
그런 차림은 한 곳이 아니라면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었
청의인은 그가 방금 전해 받은 전서의 내용을 꼼꼼히 암기한 후에 그것을 촛불에 천천히 불태웠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날아드는 전서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 불태운 후 그가 가는 곳은 한 군데였다.
그곳으로 가기 전, 언제나처럼 그는 방문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 후 불진을 한번
허공에 대고 탁 털어 냈다.
그리고는 이내 방문 앞에 펼쳐진 길다란 회랑으로 나섰다.
상당히 작은 편에 속하는 그의 키 몇 배는 될 듯한 기둥들이 주욱 늘어서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호화로운 전각을 나서자, 청의인은 반듯하게 깔린 청석길을 따라 공들여 가꾸어진 정원을 쓱쓱 스쳐 지나갔다.
“유(兪) 공공(公公)! 바쁘신가 보군요?”
마주 오던 젊은 상궁이 아는 체를 하자 청의인은 입 속으로 웅얼웅얼대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데, 가만!
방금 젊은 상궁이 그를 부른 호칭은……?
유 공공이라……
공공이란 황실의 환관들을 일컬음인데, 그렇다면……?
“아! 도(途) 상궁(上宮)!”
잠시 멈춰 서지도 않고 바삐 걸어가는 그를 도 상궁이란 젊은 여인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으나
청의인, 유송남은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노야 앞에만 서면 어쩐지 당황하기 일쑤라 제대로 된 보고를 한 적이 없으니, 연습한 것을
하나라도 더 잊기 전에 빨리 가야만 그나마 실수를 덜 할 수 있다!
유송남의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 하나였다.
발걸음을 빨리 한 덕에 유송남은 금세 원하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야께서 계시는 으리으리한 건물을 보자 유송남은 갑자기 보고할 준비가 하나도 안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운 것을 까먹기라도 하면 어쩌나!’
유송남이 오색으로 단장된 지붕과 아름드리 붉은 기둥, 팔각 무늬가 정교한 문을 보고 망설이는 순간, 문 앞을 지키던 나이 어린 환관 하나가 가늘고 길게 끌리는 목소리로 유송남을 서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룁니다`─ 유 공공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라.”
나이가 든 것 같기도 하고 젊은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남녀구분조차 애매한 목소리가 문턱을 넘었다.
“드시지요.”
유송남은 긴장감에 입도 뻥긋 못 한 채 고개만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노야…… 보, 보고드릴 것이 있어서, 에헴! 죄송합니다. 왔습니다. 에…… 그러니까 보고드릴 것은 당문에서 온 소식입니다. 험험! 죄송합니다. 목이 메어서……”
“쯧쯧! 언제쯤 되야 보고할 것을 정리해서 한 번에 주욱 말할 수 있겠느냐?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소심(小心)할까!”
정면에 놓인 커다란 탁자 앞에 앉아 잔뜩 쌓인 문서 더미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한 백발의 황의노인이
탄식하듯 그를 꾸짖었다.
황의노인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얼굴 곳곳에는 작은 검버섯이 피어나고 있었다. 얄팍한 입술은 고집을 보여 주듯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하얗게 세기 시작한 눈썹은 빳빳하게 일 자로 뻗어 있었다.
강퍅하게 튀어나온 광대뼈가 참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유송남은 노인의 꾸중에 고개를 숙이며 얼굴만 붉혔다.
창피한 마음에 어찌나 잡아당겼던지 불진의 털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발끝을 내려다보며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고 서 있는 그에게 황의노인이 모호하지만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로 뒷얘기를 재촉했다.
“그래, 당문에서 뭐라고 소식이 왔더냐?”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일에 열중하고 있는 노인을 향해 유송남은 환한 미소를 가득 떠올리며 얼굴을 발딱 들었다.
“용형초 한 가지만 빼고 마독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독초들을 다 구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아주 수확이 커서 사모초, 황자초, 마화초 등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었다는군요. 그런데……”
“그런데?”
“아무래도 완성 시기가 좀 늦어질 것 같답니다. 독초들을 가지고 오는 길에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자들의 방해를 받아……”
유송남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들이라고 생각된다더냐?”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일이 그렇게 된 게 자신의 탓인 양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는 유송남을 한번 힐끔 본 황의노인이 혼자말 비슷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마독의 완성을 바라고는 있지만 그 시기를 늦추겠다? 어지간히도 준비할 게 많은가 보군.”
“그야 그곳에 들어가자면 자기들도 준비를 단단히…… 읍! 노, 노야!”
유송남은 매서운 눈길로 가만히 자기를 쳐다보는 황의노인의 모습에 입을 틀어막았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의외로 노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노야! 다시는 천총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엄마야!”
울상을 한 채 입을 막고 발을 동동 구르는 그에게 황의노인의 한숨이 쏟아졌다.
유송남에겐 바늘방석이 아니라 송곳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황의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송남!”
“예? 예, 노야!”
유송남은 주인의 발치에서 명을 기다리는 순하디순한 강아지처럼 재깍 대답했다.
“물건은 잘 가고 있는 중이라더냐?”
“몇 차례 사소한 충돌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옥합을 가져 오는 사람의 능력이 생각보다 대단한가 봅니다. 아직까지
적의 주력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설령 그들이 나타난다
해도 두 분 공봉께서 직접 나서고 계신데, 무슨 일이야 있으려구요.”
“그래, 그 두 사람이면 믿을 만하지. 하나 조심이란 백번 해도 나쁜 게 아니다. 공봉들은
물론이고 개봉의 황 대인에게도 물건을 받기 전까진 안심해선
안 된다고 얘기해라. 섣불리 우리 세력을 노출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이르고!”
황의노인은 엄하게 당부했다.
그가 이번 일에 이십 년 동안 들인 공을 생각하면 백번 당부해도 충분치가 않았다.
“예! 심려치 마십시오. 남경의 왕야께서도 이번 일은 잘될 거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한데 거참,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군! 정말 불가사의(不可思議)야!”
유송남의 얼굴이 슬며시 황의노인의 얼굴로 향했다.
“노야, 무슨 말씀이신지?”
황의노인이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전혀 감도 안 잡히는 듯 유송남은 눈가에 잔주름이 매달렸다.
“송남, 네 얘기다. 나와 그냥 말을 주고받을 때는 그렇게 술술 잘도 얘기하면서, 어째서 보고만
하려고 하면 말을 더듬는지…… 이거야말로 불가사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황의노인이 엄격해 보이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걸고 그를 건너다보자 유송남은 마주보기조차 민망스러운 듯 자꾸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온통 붉게 물든 그의 얼굴을 보며 황의노인의 웃음은 더 짙어져만 갔다.
이곳은 대명의 황도(皇都) 북경.
만인이 우러르는 황제의 성인 자금성의 심처였다.
* * *
몽뇌산은 외산현을 떠난 지 이틀 만에 무창부(武昌府)가 바로 인접해 있는 황주부 황주성(黃州城)
부근에 이르고 있었다.
하후극을 만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알아보니 이미 하후극은 다화객잔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대강 식사를 마친 몽뇌산은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주인을 깨워 하남성(河南省)으로
가는 길을 알아본 후 곧바로 외산현을 떠났다.
황주성까지 오는 길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이틀 동안 아무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은 덕분에 몽뇌산은
발길을 재촉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굳이 황주성 내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던 몽뇌산은 황주성의 동쪽 외곽에 자리한 다산현(茶山縣)으로 들어섰다.
옛부터 차(茶)가 많이 나서 이름도 다산(茶山)인 산을 끼고 마을이 생겨났기에 그 일대를 다산현이라고 부른다는
게 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인의 설명이었다.
몽뇌산은 간혹 뛰어다니는 개 몇 마리와 아이들만 보일 뿐 한적하기 짝이 없는 시골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마을에 들어서서 얼마 가지 않아 시내가 하나 보이고 그 위로 나무다리가 놓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멀리서 보던 것보다 의외로 시내의 폭이 넓어 어림잡아도 이(二) 장(丈)은 넘어 보이는 게, 거의 작은 강이라고 할 만했다.
게다가 근자에 비가 왔었는지 누런 흙탕물이 제법 세차게 콸콸 소리내며 흐르는 모습이, 마치 작은 황하(黃河)를
보는 것만 같았다.
누군지 제법 필력(筆力)이 있는 자의 솜씨로 보이는 ‘향천교(香川橋)’라는 글이 목교(木橋) 앞 비석(碑石)에 번듯하게 쓰여 있었다.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던 몽뇌산은 한적하던 주위가 갑작스레 부산스러워지자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
어느 집에 경사(慶事)가 있는지 목교 맞은편에서 혼인하러 가는 신부(新婦)의 행렬이 나타나 막
다리 가까이에 이르고 있었다.
몽뇌산은 피리에다 징을 쳐가며 여유있게 전진하고 있는 울긋불긋한 행렬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그의 신형이 성큼 다리 위로 올라섰다.
행렬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16화. 제7장 - 접근(接近) 2
그의 차림은 좀 독특했다.
푸른 옷을 입고 은은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관모에다 손에 든 불진까지.
그런 차림은 한 곳이 아니라면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었
청의인은 그가 방금 전해 받은 전서의 내용을 꼼꼼히 암기한 후에 그것을 촛불에 천천히 불태웠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날아드는 전서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 불태운 후 그가 가는 곳은 한 군데였다.
그곳으로 가기 전, 언제나처럼 그는 방문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 후 불진을 한번
허공에 대고 탁 털어 냈다.
그리고는 이내 방문 앞에 펼쳐진 길다란 회랑으로 나섰다.
상당히 작은 편에 속하는 그의 키 몇 배는 될 듯한 기둥들이 주욱 늘어서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호화로운 전각을 나서자, 청의인은 반듯하게 깔린 청석길을 따라 공들여 가꾸어진 정원을 쓱쓱 스쳐 지나갔다.
“유(兪) 공공(公公)! 바쁘신가 보군요?”
마주 오던 젊은 상궁이 아는 체를 하자 청의인은 입 속으로 웅얼웅얼대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데, 가만!
방금 젊은 상궁이 그를 부른 호칭은……?
유 공공이라……
공공이란 황실의 환관들을 일컬음인데, 그렇다면……?
“아! 도(途) 상궁(上宮)!”
잠시 멈춰 서지도 않고 바삐 걸어가는 그를 도 상궁이란 젊은 여인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으나
청의인, 유송남은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노야 앞에만 서면 어쩐지 당황하기 일쑤라 제대로 된 보고를 한 적이 없으니, 연습한 것을
하나라도 더 잊기 전에 빨리 가야만 그나마 실수를 덜 할 수 있다!
유송남의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 하나였다.
발걸음을 빨리 한 덕에 유송남은 금세 원하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야께서 계시는 으리으리한 건물을 보자 유송남은 갑자기 보고할 준비가 하나도 안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운 것을 까먹기라도 하면 어쩌나!’
유송남이 오색으로 단장된 지붕과 아름드리 붉은 기둥, 팔각 무늬가 정교한 문을 보고 망설이는 순간, 문 앞을 지키던 나이 어린 환관 하나가 가늘고 길게 끌리는 목소리로 유송남을 서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룁니다`─ 유 공공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라.”
나이가 든 것 같기도 하고 젊은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남녀구분조차 애매한 목소리가 문턱을 넘었다.
“드시지요.”
유송남은 긴장감에 입도 뻥긋 못 한 채 고개만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노야…… 보, 보고드릴 것이 있어서, 에헴! 죄송합니다. 왔습니다. 에…… 그러니까 보고드릴 것은 당문에서 온 소식입니다. 험험! 죄송합니다. 목이 메어서……”
“쯧쯧! 언제쯤 되야 보고할 것을 정리해서 한 번에 주욱 말할 수 있겠느냐?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소심(小心)할까!”
정면에 놓인 커다란 탁자 앞에 앉아 잔뜩 쌓인 문서 더미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한 백발의 황의노인이
탄식하듯 그를 꾸짖었다.
황의노인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얼굴 곳곳에는 작은 검버섯이 피어나고 있었다. 얄팍한 입술은 고집을 보여 주듯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하얗게 세기 시작한 눈썹은 빳빳하게 일 자로 뻗어 있었다.
강퍅하게 튀어나온 광대뼈가 참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유송남은 노인의 꾸중에 고개를 숙이며 얼굴만 붉혔다.
창피한 마음에 어찌나 잡아당겼던지 불진의 털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발끝을 내려다보며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고 서 있는 그에게 황의노인이 모호하지만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로 뒷얘기를 재촉했다.
“그래, 당문에서 뭐라고 소식이 왔더냐?”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일에 열중하고 있는 노인을 향해 유송남은 환한 미소를 가득 떠올리며 얼굴을 발딱 들었다.
“용형초 한 가지만 빼고 마독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독초들을 다 구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아주 수확이 커서 사모초, 황자초, 마화초 등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었다는군요. 그런데……”
“그런데?”
“아무래도 완성 시기가 좀 늦어질 것 같답니다. 독초들을 가지고 오는 길에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자들의 방해를 받아……”
유송남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들이라고 생각된다더냐?”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일이 그렇게 된 게 자신의 탓인 양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는 유송남을 한번 힐끔 본 황의노인이 혼자말 비슷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마독의 완성을 바라고는 있지만 그 시기를 늦추겠다? 어지간히도 준비할 게 많은가 보군.”
“그야 그곳에 들어가자면 자기들도 준비를 단단히…… 읍! 노, 노야!”
유송남은 매서운 눈길로 가만히 자기를 쳐다보는 황의노인의 모습에 입을 틀어막았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의외로 노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노야! 다시는 천총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엄마야!”
울상을 한 채 입을 막고 발을 동동 구르는 그에게 황의노인의 한숨이 쏟아졌다.
유송남에겐 바늘방석이 아니라 송곳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황의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송남!”
“예? 예, 노야!”
유송남은 주인의 발치에서 명을 기다리는 순하디순한 강아지처럼 재깍 대답했다.
“물건은 잘 가고 있는 중이라더냐?”
“몇 차례 사소한 충돌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옥합을 가져 오는 사람의 능력이 생각보다 대단한가 봅니다. 아직까지
적의 주력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설령 그들이 나타난다
해도 두 분 공봉께서 직접 나서고 계신데, 무슨 일이야 있으려구요.”
“그래, 그 두 사람이면 믿을 만하지. 하나 조심이란 백번 해도 나쁜 게 아니다. 공봉들은
물론이고 개봉의 황 대인에게도 물건을 받기 전까진 안심해선
안 된다고 얘기해라. 섣불리 우리 세력을 노출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이르고!”
황의노인은 엄하게 당부했다.
그가 이번 일에 이십 년 동안 들인 공을 생각하면 백번 당부해도 충분치가 않았다.
“예! 심려치 마십시오. 남경의 왕야께서도 이번 일은 잘될 거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한데 거참,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군! 정말 불가사의(不可思議)야!”
유송남의 얼굴이 슬며시 황의노인의 얼굴로 향했다.
“노야, 무슨 말씀이신지?”
황의노인이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전혀 감도 안 잡히는 듯 유송남은 눈가에 잔주름이 매달렸다.
“송남, 네 얘기다. 나와 그냥 말을 주고받을 때는 그렇게 술술 잘도 얘기하면서, 어째서 보고만
하려고 하면 말을 더듬는지…… 이거야말로 불가사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황의노인이 엄격해 보이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걸고 그를 건너다보자 유송남은 마주보기조차 민망스러운 듯 자꾸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온통 붉게 물든 그의 얼굴을 보며 황의노인의 웃음은 더 짙어져만 갔다.
이곳은 대명의 황도(皇都) 북경.
만인이 우러르는 황제의 성인 자금성의 심처였다.
* * *
몽뇌산은 외산현을 떠난 지 이틀 만에 무창부(武昌府)가 바로 인접해 있는 황주부 황주성(黃州城)
부근에 이르고 있었다.
하후극을 만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알아보니 이미 하후극은 다화객잔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대강 식사를 마친 몽뇌산은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주인을 깨워 하남성(河南省)으로
가는 길을 알아본 후 곧바로 외산현을 떠났다.
황주성까지 오는 길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이틀 동안 아무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은 덕분에 몽뇌산은
발길을 재촉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굳이 황주성 내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던 몽뇌산은 황주성의 동쪽 외곽에 자리한 다산현(茶山縣)으로 들어섰다.
옛부터 차(茶)가 많이 나서 이름도 다산(茶山)인 산을 끼고 마을이 생겨났기에 그 일대를 다산현이라고 부른다는
게 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인의 설명이었다.
몽뇌산은 간혹 뛰어다니는 개 몇 마리와 아이들만 보일 뿐 한적하기 짝이 없는 시골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마을에 들어서서 얼마 가지 않아 시내가 하나 보이고 그 위로 나무다리가 놓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멀리서 보던 것보다 의외로 시내의 폭이 넓어 어림잡아도 이(二) 장(丈)은 넘어 보이는 게, 거의 작은 강이라고 할 만했다.
게다가 근자에 비가 왔었는지 누런 흙탕물이 제법 세차게 콸콸 소리내며 흐르는 모습이, 마치 작은 황하(黃河)를
보는 것만 같았다.
누군지 제법 필력(筆力)이 있는 자의 솜씨로 보이는 ‘향천교(香川橋)’라는 글이 목교(木橋) 앞 비석(碑石)에 번듯하게 쓰여 있었다.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던 몽뇌산은 한적하던 주위가 갑작스레 부산스러워지자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
어느 집에 경사(慶事)가 있는지 목교 맞은편에서 혼인하러 가는 신부(新婦)의 행렬이 나타나 막
다리 가까이에 이르고 있었다.
몽뇌산은 피리에다 징을 쳐가며 여유있게 전진하고 있는 울긋불긋한 행렬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그의 신형이 성큼 다리 위로 올라섰다.
행렬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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