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제10장 - 패배(敗北) 1
독로무한
21화. 제10장 - 패배(敗北) 1
다산현에서 시오리, 황주부에서 칠십여 리 떨어진 무창부 끄트머리에 있는 동화현(同和縣)의 송래객잔(松來客棧)!
비록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작은 규모의 객잔이나 제법 운치가 있게 지어진 것이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갈 만한 곳이었
태양이 마지막 힘을 다하는 시각.
객방이 있는 곳과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송래객잔의 주루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객방에 묵고 있는 손님이래 봐야 항상 등에 길쭉한 물건을 하나 매고 다니는 중년사내, 온통 은색 일색으로 차려입어서 그런지 얼음 같은 기운을 풀풀 날리는 미청년과 도착하고부터 내리 방에서 잠만 자고 있는 젊은
청년, 젊은 청년을 방에 집어넣자마자 그길로 휑하니 사라졌다 다음날 웬 예쁜 처녀를 데리고 나타난 노인이 다였다.
그들은 정말 보면 볼수록 이상한 일행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의 젊은 청년은 눈동자 색깔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죽어라 하고 잠만 자댔고
은의무복청년은 늘 방에 혼자 있었다.
처녀를 데려온 갈의노인과 중년사내가 가끔 주루에 앉아 수군거리는 것말고는 식사 한번 다같이 모여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 분위기는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편이었다.
회계대에 앉아 있던 송래객잔의 주인, 만인송은 창가 제일 끄트머리 자리에 앉아 수군대고 있는 회의중년인과 갈의노인을
힐끔 곁눈질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 이틀간, 그러니까 갈의노인이 웬 어여쁜 백의여인을 데려오기 전까지 그들 일행의 모습은 초상집도 그런 초상집이 없을 정도로 침통했다.
그들이 묵고 있는 방, 특히 젊은 청년이 자고 있는 방에는 아예 접근을 못 하게 해서 그 동안 청소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심지어 잠만 자고 있는 청년에게 식사마저도 주지 않았.
처음에는 식사를 방으로 날라 주려 했으나 등에 꾸러미를 맨 회의중년인이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는 통에 그 다음부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눈빛이 어찌나 위압적이고 차갑던지 오금이 다 저릴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된 식사하는 모습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시골에만 묻혀 살아 온 만인송으로서는 밥도 안 먹는 그들이 다만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골이라 하나 대대로 객잔을 하며 잔뼈가 굵은 그이기에 소리도 내지 않고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움직이는
거나, 며칠씩 밥을 안 먹고도 변함없이 깊은
힘이 느껴지는 것들, 뭐 그런 일들을 나름대로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혹, 저들이 바로 사람들이 강호인이라 말하는 그 무인이 아닐?
결국 만인송은 자신의 이상한 손님들이 어떤 사연을 지녔건 간에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한동안 썰렁하던 그들의 분위기는 백의를 맵시있게 차려입은 여인이 오고 나서 화악 바뀌어 이젠 주루에 나와 서로 어울려 가끔씩 식사도 할 정도가 되었다.
만인송은 여인이 오고 나서 살얼음판 같던 객잔의 분위기가 싹 달라진 것에 적이 만족감을 느끼며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
다시 찾아온 평화는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다.
공야선표는 아까부터 주인이 자신들을 힐끔거리자 공연히 의심이 치밀어 회계대 쪽을 날카롭게 한번 쏘아보았다.
순간, 오십 줄에 들어서 서서히 살이 붙어 가는 주인 사내의 뺨에 살짝 경련이 이는 것이 보였다.
공야선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지난 며칠간 살펴본 바대로라면 이곳 주인은 그야말로 백설(白雪)같이
깨끗한 사람이니 사실은 안심해도 좋을 만했다.
“어쩌겠습니까? 도무지 입을 열 생각을 아니 하는데.”
굵직한 음성이 귓가에 닿자 공야선표는 다시 정신을 하후극에게로 집중시켰다.
그들은 지금 몽뇌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지금뿐만 아니라 객잔에 묵은 날부터 앉았다 하면 몽뇌산 얘기였다.
몽뇌산의 키, 몸무게, 허리 둘레, 얼굴 생김새, 발 크기, 무공 수위 등등, 그에 대한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도 그들의 얘깃거리는 오로지 하나였다.
바로!
“휴우`─`! 어떻게 해서 입을 열게 한단 말인가?”
“……!”
대책없는 답답한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야선표의 얘기에 하후극도 할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우우`─`! 의식을 잃고 자리에 누워 있었던 며칠간은 그렇다 치고 몸이 좀 회복되어서도 저
모양이니……!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저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그렇다고 마음대로 저간의 사정을 알려 줄 수도 없고…… 나원, 참!”
“후후! 그런 줄 몰랐는데 정말 대단한 고집불통입니다. 그만한 고집이 무공에 관해서도 변함없는 거라면 장차 무공에도 성취가 기대할 만하겠더군요. 허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대는 공야선표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하후극은 쓴웃음을 흘렸다.
공야선표가 마뜩찮은 기색으로 그를 퉁명스레 나무랐다.
“지금 이 상황에 그래, 자넨 웃음이 나오나? 수십년의 적공(積功)이 이 한 순간에 달려 있는데? 무공 성취가 다 무어야? 에잇!”
“전들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나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자, 그러지
마시고 한 번 더 가보시지요? 당장은 계속 설득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정 안 되면 부분적인 얘기라도 해줘야겠지요. 어서, 일어나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후극은 잔뜩 심기가 불편해져 있는 공야선표를 달랬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공야선표는 몽뇌산이 못마땅해 죽겠다는 듯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한데 계속 입씨름만 하고 있어서야……! 생긴 건 순하게 생겨서 어찌 그리 황소고집이누? 정말 밑도끝도없이 이런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공야선표의 신형은 벌써 주루 문을 나서고 있었다.
하후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천천히, 그러나 민첩한 동작으로 그 뒤를 따랐다.
객방이 있는 뒤채로 가는지 미끄러지듯 주루를 빠져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조심스레 살피며 만인송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회계대에서 가만히 일어난 그는 갑자기 팔다리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휴우`─`! 그 노인양반, 연세가 적지 않겠던데 눈빛이 어쩌면 그렇게 매서울까! 숨도 못 쉬고 앉아 있느라 온몸이 다 결리는구먼! 아이고`─`! 여`─ 엉차!”
구령까지 붙여 가며 만인송은 한참 동안 열심히 몸을 요리조리 비틀었다.
아마 내일이면 팔다리 할 것 없이 몸깨나 쑤시리라!
* * *
‘단전(丹田)으로부터 시작하여 임독이맥(任督二脈)으로 흘러 들어간 기(氣)는 그곳을 기점(起點)으로
해서 다시 곳곳에 있는 기경팔맥(奇經八脈)으로 흩어지니 이것이 바로
진천독공 연마를 위한 운공의 시작이다.'
기경팔맥을 돌아나온 기는 전신에 퍼져 있는 십이정경(十二正經)으로 가게 되니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운공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십이정경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혈도, 즉 발바닥의 용천혈부터 가슴에 있는 명문, 영대, 풍문, 유문혈의 사대중혈(四大重穴)을 지나 정수리의 백회혈까지 세맥 하나 놓치지 않고 고루 순환된
기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양팔이니
화후가 육 성을 넘어서면 이 단계에서 독의 정화를 손바닥으로부터 뽑아 내 환(丸)을 만들 수 있다.
백회혈에서 내려와 일단 수(手)의 양명대장경이 시작되는 콧망울 옆의 영양혈을 지난 기는 목줄기의 천정혈, 어깨의 견우혈, 팔에 있는 비노, 오리,
온유, 삼간 등의 혈도를 지나 손가락 끝에 위치한 상양혈까지 이른다.
손끝까지 힘을 전달한 후 나갈 때는 수태음폐경을 통과하게 되니, 엄지의 소상혈로부터 시작된 기의 흐름은
겨드랑이 쪽의 중부혈까지 단숨에 내달린다.
이 기가 다시 모여 단전으로 되돌아가면 운공은 비로소 일주천(一週天)이 끝난 것이다.
운기행공을 끝낸 몽뇌산은 그의 몸을 희미하게 감싼 채 투명한 빛을 뿌리고 있는 푸른 기운을 코로 천천히 빨아들였다.
처음 진천독경상의 심법을 익힐 때는 많은 고통이 따랐으나 지금은 그저 짜릿할 정도로 온몸의 신경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뿐이었다.
사실 진천독경에서 말하는 기의 순환은 여타 정종심법(正宗心法)과 다른 면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양팔에서 일어나는 기의 순환 자체가 다른 심법과는 역순(逆順)을 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언뜻 들으면 마도의 심법들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실상은 마도에
전해지는 역혈대법(逆血大法)들과도 완전히 상궤(常軌)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무수한 독물, 독초를 섭취해야만 하는 진천독공을 익히는 것 자체가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긴 하지만 특히, 역순으로 이루어지는 팔의 운공은 수련자에게 끝없는 인내를 요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진천독공을 익힌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강한 팔을 갖게 되고, 그것은
장력에 실어 독기를 뿌릴 때 느껴지는 고통으로부터 수련자를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아무튼 운공을 하면서 몽뇌산은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는 의황곡의 묘인아가 무슨 수를 썼는지
자신의 내공이 진일보(進一步)했음을 느꼈다.
비록 만청독수의 최후초식인 만재청독(萬在淸毒)을 시전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화후였으나, 제육수까지는
한번 해볼 만한 정도였다.
정말 생각지 않은 기연이었다.
이를 두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한다던가!
눈을 뜨자마자 몽뇌산은 우선 주위부터 살펴보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그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침상 주위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정말 공력이 늘었군. 그 동안은 운기 중에 독기 조절이 안 된다고 사부님께서 걸핏하면 야단이셨는데, 이젠 걱정 없겠는걸! 이렇게 되면 그 여자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몽뇌산은 애매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일검을 맞은 복수를 해야 할지, 아니면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지……
고개를 흔들며 몽뇌산은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그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이러긴가? 소형제! 우리 피차 시간 낭비는 하지 마세나, 응?”
그러나 공야선표의 간곡한 청도 몽뇌산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공야선표는 오랫동안 강호를 종횡한 고수답게 평소에는 침착하고 노련미 넘치는 사람이었으나 몽뇌산
때문에 하도 놀랄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젠 그 앞에만 앉아도 좀처럼 진정을 하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그의 얼굴은 울화가 치미는 것을 참아 누르느라 많이 상기(上氣)되어 있었다.
그가 화를 삭이느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하후극이 장중한 목소리로 침상 위에 앉아 있는 몽뇌산에게 말을 걸어왔다.
“소형제! 우리를 이해해 주게. 수십 년 공을 들인 일일세. 자네 사부님께서 애초에 자네를 보내셨던 뜻을 생각해서라도
우리에게 말을 해주게나.”
하후극이 말을 맺는 순간, 별안간 몽뇌산의 고개가 휙 돌려졌.
“이 일이 제게 불공평하단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하후극의 과묵해 보이는 얼굴엔 난감한 빛이 가득했다.
“으음`─`! 그래도 우리는 자네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네. 아무튼 자네도 이번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줬으면 하네. 일국의 운명과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야.”
“제 목숨도 달려 있죠.”
“그래서 우리가 자넬 개봉까지 호위하기로 되어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 슬쩍 끼여들던 공야선표의 말은 몽뇌산에 의해 허리가 싹둑 잘리고 말았다.
“호위를 너무 잘 해주셔서 제가 지금 이렇게 누워 있는 거군요?”
“그야……!”
몽뇌산의 매서운 질문에 공야선표는 더듬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제게 회에 대한 얘기를 해주십시오. 저도 돌아가는 사정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네. 그러니 제발 우리에게 진짜 열쇠가 있는 곳을
말해 주게. 이건 고집 피울 일이 아니래두`─`!”
참다 못한 공야선표가 버럭 고함까지 질렀지만 몽뇌산은 묵묵부답일 뿐, 그의 입은
조가비처럼 다물어진 채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몽뇌산에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공야선표를 보며 하후극은 소리없이 한숨을 지었다.
지난 며칠 동안 줄기차게 진짜 열쇠의 행방을 물고늘어졌건만 몽뇌산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온갖 애원과 부탁, 호통과 협박에도 몽뇌산은 굴하지 않았다. 고집이 어찌나 막무가내인지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였다.
하후극은 그가 사부에게 느끼는 서운함이 커서 그럴 거라고 했지만 공야선표가 보기에 이유는 하나였다.
영문도 모르고 남의 일에 휘말려 죽을 뻔한 게 암만 생각해도 억울하단 얘긴데, 기왕 일이 그렇게 된 걸 어쩌란 말인가?
몽뇌산의 사부가 설마 물건을 갖다 주란 말 빼고는 아무 말도 안 해줄 줄 누가 알았는가 말이다. 하기사 공야선표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의 사부도 별로 자신들의 일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하였다.
물론 그의 사부는 자의(自意)로 알기를 거부했다고 하니 몽뇌산과는 처지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거야 사제지간에 알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른 공야선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하후극은 금방이라도 큰 소리가 터질 것 같은 공야선표의 표정을 힐끔 보며 사이에 끼여들었다.
“자자!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세. 하지만 부디 우리 입장에서 생각 좀 해주게. 우린 이만
나감세. 선배님! 가시지요.”
“정말 고집이 고래 심줄보다 질기구나! 말년에 내가 이 무슨 고생인지……!”
고개를 흔들던 공야선표는 몸을 획 돌려 쿵쿵거리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후극도 딴청을 하고 있는 몽뇌산에게 무거운
눈빛을 한번 던지고는 조용히 문을 나섰다.
“아! 마침 치료할 시간인데 말씀이 끝나신 모양이군요?”
하후극은 막 문 앞에 도착한 묘인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주루와 통해 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묘인아는 잠시 그늘져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주시하다가 이내 방으로 들어섰다.
밝은 얼굴을 하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까지 매단 채 묘인아는 숲속의 시냇물같이 상쾌한 음성을 흘려 냈다.
“치료받으실 준비는 되셨나요?”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을 반기는 듯 싱글거리는 몽뇌산을 보며 묘인아는 방문을 닫았다.
21화. 제10장 - 패배(敗北) 1
다산현에서 시오리, 황주부에서 칠십여 리 떨어진 무창부 끄트머리에 있는 동화현(同和縣)의 송래객잔(松來客棧)!
비록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작은 규모의 객잔이나 제법 운치가 있게 지어진 것이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갈 만한 곳이었
태양이 마지막 힘을 다하는 시각.
객방이 있는 곳과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송래객잔의 주루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객방에 묵고 있는 손님이래 봐야 항상 등에 길쭉한 물건을 하나 매고 다니는 중년사내, 온통 은색 일색으로 차려입어서 그런지 얼음 같은 기운을 풀풀 날리는 미청년과 도착하고부터 내리 방에서 잠만 자고 있는 젊은
청년, 젊은 청년을 방에 집어넣자마자 그길로 휑하니 사라졌다 다음날 웬 예쁜 처녀를 데리고 나타난 노인이 다였다.
그들은 정말 보면 볼수록 이상한 일행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의 젊은 청년은 눈동자 색깔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죽어라 하고 잠만 자댔고
은의무복청년은 늘 방에 혼자 있었다.
처녀를 데려온 갈의노인과 중년사내가 가끔 주루에 앉아 수군거리는 것말고는 식사 한번 다같이 모여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 분위기는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편이었다.
회계대에 앉아 있던 송래객잔의 주인, 만인송은 창가 제일 끄트머리 자리에 앉아 수군대고 있는 회의중년인과 갈의노인을
힐끔 곁눈질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 이틀간, 그러니까 갈의노인이 웬 어여쁜 백의여인을 데려오기 전까지 그들 일행의 모습은 초상집도 그런 초상집이 없을 정도로 침통했다.
그들이 묵고 있는 방, 특히 젊은 청년이 자고 있는 방에는 아예 접근을 못 하게 해서 그 동안 청소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심지어 잠만 자고 있는 청년에게 식사마저도 주지 않았.
처음에는 식사를 방으로 날라 주려 했으나 등에 꾸러미를 맨 회의중년인이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는 통에 그 다음부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눈빛이 어찌나 위압적이고 차갑던지 오금이 다 저릴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된 식사하는 모습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시골에만 묻혀 살아 온 만인송으로서는 밥도 안 먹는 그들이 다만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골이라 하나 대대로 객잔을 하며 잔뼈가 굵은 그이기에 소리도 내지 않고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움직이는
거나, 며칠씩 밥을 안 먹고도 변함없이 깊은
힘이 느껴지는 것들, 뭐 그런 일들을 나름대로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혹, 저들이 바로 사람들이 강호인이라 말하는 그 무인이 아닐?
결국 만인송은 자신의 이상한 손님들이 어떤 사연을 지녔건 간에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한동안 썰렁하던 그들의 분위기는 백의를 맵시있게 차려입은 여인이 오고 나서 화악 바뀌어 이젠 주루에 나와 서로 어울려 가끔씩 식사도 할 정도가 되었다.
만인송은 여인이 오고 나서 살얼음판 같던 객잔의 분위기가 싹 달라진 것에 적이 만족감을 느끼며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
다시 찾아온 평화는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다.
공야선표는 아까부터 주인이 자신들을 힐끔거리자 공연히 의심이 치밀어 회계대 쪽을 날카롭게 한번 쏘아보았다.
순간, 오십 줄에 들어서 서서히 살이 붙어 가는 주인 사내의 뺨에 살짝 경련이 이는 것이 보였다.
공야선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지난 며칠간 살펴본 바대로라면 이곳 주인은 그야말로 백설(白雪)같이
깨끗한 사람이니 사실은 안심해도 좋을 만했다.
“어쩌겠습니까? 도무지 입을 열 생각을 아니 하는데.”
굵직한 음성이 귓가에 닿자 공야선표는 다시 정신을 하후극에게로 집중시켰다.
그들은 지금 몽뇌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지금뿐만 아니라 객잔에 묵은 날부터 앉았다 하면 몽뇌산 얘기였다.
몽뇌산의 키, 몸무게, 허리 둘레, 얼굴 생김새, 발 크기, 무공 수위 등등, 그에 대한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도 그들의 얘깃거리는 오로지 하나였다.
바로!
“휴우`─`! 어떻게 해서 입을 열게 한단 말인가?”
“……!”
대책없는 답답한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야선표의 얘기에 하후극도 할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우우`─`! 의식을 잃고 자리에 누워 있었던 며칠간은 그렇다 치고 몸이 좀 회복되어서도 저
모양이니……!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저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그렇다고 마음대로 저간의 사정을 알려 줄 수도 없고…… 나원, 참!”
“후후! 그런 줄 몰랐는데 정말 대단한 고집불통입니다. 그만한 고집이 무공에 관해서도 변함없는 거라면 장차 무공에도 성취가 기대할 만하겠더군요. 허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대는 공야선표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하후극은 쓴웃음을 흘렸다.
공야선표가 마뜩찮은 기색으로 그를 퉁명스레 나무랐다.
“지금 이 상황에 그래, 자넨 웃음이 나오나? 수십년의 적공(積功)이 이 한 순간에 달려 있는데? 무공 성취가 다 무어야? 에잇!”
“전들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나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자, 그러지
마시고 한 번 더 가보시지요? 당장은 계속 설득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정 안 되면 부분적인 얘기라도 해줘야겠지요. 어서, 일어나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후극은 잔뜩 심기가 불편해져 있는 공야선표를 달랬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공야선표는 몽뇌산이 못마땅해 죽겠다는 듯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한데 계속 입씨름만 하고 있어서야……! 생긴 건 순하게 생겨서 어찌 그리 황소고집이누? 정말 밑도끝도없이 이런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공야선표의 신형은 벌써 주루 문을 나서고 있었다.
하후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천천히, 그러나 민첩한 동작으로 그 뒤를 따랐다.
객방이 있는 뒤채로 가는지 미끄러지듯 주루를 빠져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조심스레 살피며 만인송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회계대에서 가만히 일어난 그는 갑자기 팔다리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휴우`─`! 그 노인양반, 연세가 적지 않겠던데 눈빛이 어쩌면 그렇게 매서울까! 숨도 못 쉬고 앉아 있느라 온몸이 다 결리는구먼! 아이고`─`! 여`─ 엉차!”
구령까지 붙여 가며 만인송은 한참 동안 열심히 몸을 요리조리 비틀었다.
아마 내일이면 팔다리 할 것 없이 몸깨나 쑤시리라!
* * *
‘단전(丹田)으로부터 시작하여 임독이맥(任督二脈)으로 흘러 들어간 기(氣)는 그곳을 기점(起點)으로
해서 다시 곳곳에 있는 기경팔맥(奇經八脈)으로 흩어지니 이것이 바로
진천독공 연마를 위한 운공의 시작이다.'
기경팔맥을 돌아나온 기는 전신에 퍼져 있는 십이정경(十二正經)으로 가게 되니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운공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십이정경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혈도, 즉 발바닥의 용천혈부터 가슴에 있는 명문, 영대, 풍문, 유문혈의 사대중혈(四大重穴)을 지나 정수리의 백회혈까지 세맥 하나 놓치지 않고 고루 순환된
기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양팔이니
화후가 육 성을 넘어서면 이 단계에서 독의 정화를 손바닥으로부터 뽑아 내 환(丸)을 만들 수 있다.
백회혈에서 내려와 일단 수(手)의 양명대장경이 시작되는 콧망울 옆의 영양혈을 지난 기는 목줄기의 천정혈, 어깨의 견우혈, 팔에 있는 비노, 오리,
온유, 삼간 등의 혈도를 지나 손가락 끝에 위치한 상양혈까지 이른다.
손끝까지 힘을 전달한 후 나갈 때는 수태음폐경을 통과하게 되니, 엄지의 소상혈로부터 시작된 기의 흐름은
겨드랑이 쪽의 중부혈까지 단숨에 내달린다.
이 기가 다시 모여 단전으로 되돌아가면 운공은 비로소 일주천(一週天)이 끝난 것이다.
운기행공을 끝낸 몽뇌산은 그의 몸을 희미하게 감싼 채 투명한 빛을 뿌리고 있는 푸른 기운을 코로 천천히 빨아들였다.
처음 진천독경상의 심법을 익힐 때는 많은 고통이 따랐으나 지금은 그저 짜릿할 정도로 온몸의 신경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뿐이었다.
사실 진천독경에서 말하는 기의 순환은 여타 정종심법(正宗心法)과 다른 면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양팔에서 일어나는 기의 순환 자체가 다른 심법과는 역순(逆順)을 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언뜻 들으면 마도의 심법들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실상은 마도에
전해지는 역혈대법(逆血大法)들과도 완전히 상궤(常軌)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무수한 독물, 독초를 섭취해야만 하는 진천독공을 익히는 것 자체가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긴 하지만 특히, 역순으로 이루어지는 팔의 운공은 수련자에게 끝없는 인내를 요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진천독공을 익힌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강한 팔을 갖게 되고, 그것은
장력에 실어 독기를 뿌릴 때 느껴지는 고통으로부터 수련자를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아무튼 운공을 하면서 몽뇌산은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는 의황곡의 묘인아가 무슨 수를 썼는지
자신의 내공이 진일보(進一步)했음을 느꼈다.
비록 만청독수의 최후초식인 만재청독(萬在淸毒)을 시전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화후였으나, 제육수까지는
한번 해볼 만한 정도였다.
정말 생각지 않은 기연이었다.
이를 두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한다던가!
눈을 뜨자마자 몽뇌산은 우선 주위부터 살펴보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그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침상 주위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정말 공력이 늘었군. 그 동안은 운기 중에 독기 조절이 안 된다고 사부님께서 걸핏하면 야단이셨는데, 이젠 걱정 없겠는걸! 이렇게 되면 그 여자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몽뇌산은 애매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일검을 맞은 복수를 해야 할지, 아니면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지……
고개를 흔들며 몽뇌산은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그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이러긴가? 소형제! 우리 피차 시간 낭비는 하지 마세나, 응?”
그러나 공야선표의 간곡한 청도 몽뇌산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공야선표는 오랫동안 강호를 종횡한 고수답게 평소에는 침착하고 노련미 넘치는 사람이었으나 몽뇌산
때문에 하도 놀랄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젠 그 앞에만 앉아도 좀처럼 진정을 하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그의 얼굴은 울화가 치미는 것을 참아 누르느라 많이 상기(上氣)되어 있었다.
그가 화를 삭이느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하후극이 장중한 목소리로 침상 위에 앉아 있는 몽뇌산에게 말을 걸어왔다.
“소형제! 우리를 이해해 주게. 수십 년 공을 들인 일일세. 자네 사부님께서 애초에 자네를 보내셨던 뜻을 생각해서라도
우리에게 말을 해주게나.”
하후극이 말을 맺는 순간, 별안간 몽뇌산의 고개가 휙 돌려졌.
“이 일이 제게 불공평하단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하후극의 과묵해 보이는 얼굴엔 난감한 빛이 가득했다.
“으음`─`! 그래도 우리는 자네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네. 아무튼 자네도 이번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줬으면 하네. 일국의 운명과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야.”
“제 목숨도 달려 있죠.”
“그래서 우리가 자넬 개봉까지 호위하기로 되어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 슬쩍 끼여들던 공야선표의 말은 몽뇌산에 의해 허리가 싹둑 잘리고 말았다.
“호위를 너무 잘 해주셔서 제가 지금 이렇게 누워 있는 거군요?”
“그야……!”
몽뇌산의 매서운 질문에 공야선표는 더듬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제게 회에 대한 얘기를 해주십시오. 저도 돌아가는 사정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네. 그러니 제발 우리에게 진짜 열쇠가 있는 곳을
말해 주게. 이건 고집 피울 일이 아니래두`─`!”
참다 못한 공야선표가 버럭 고함까지 질렀지만 몽뇌산은 묵묵부답일 뿐, 그의 입은
조가비처럼 다물어진 채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몽뇌산에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공야선표를 보며 하후극은 소리없이 한숨을 지었다.
지난 며칠 동안 줄기차게 진짜 열쇠의 행방을 물고늘어졌건만 몽뇌산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온갖 애원과 부탁, 호통과 협박에도 몽뇌산은 굴하지 않았다. 고집이 어찌나 막무가내인지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였다.
하후극은 그가 사부에게 느끼는 서운함이 커서 그럴 거라고 했지만 공야선표가 보기에 이유는 하나였다.
영문도 모르고 남의 일에 휘말려 죽을 뻔한 게 암만 생각해도 억울하단 얘긴데, 기왕 일이 그렇게 된 걸 어쩌란 말인가?
몽뇌산의 사부가 설마 물건을 갖다 주란 말 빼고는 아무 말도 안 해줄 줄 누가 알았는가 말이다. 하기사 공야선표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의 사부도 별로 자신들의 일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하였다.
물론 그의 사부는 자의(自意)로 알기를 거부했다고 하니 몽뇌산과는 처지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거야 사제지간에 알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른 공야선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하후극은 금방이라도 큰 소리가 터질 것 같은 공야선표의 표정을 힐끔 보며 사이에 끼여들었다.
“자자!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세. 하지만 부디 우리 입장에서 생각 좀 해주게. 우린 이만
나감세. 선배님! 가시지요.”
“정말 고집이 고래 심줄보다 질기구나! 말년에 내가 이 무슨 고생인지……!”
고개를 흔들던 공야선표는 몸을 획 돌려 쿵쿵거리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후극도 딴청을 하고 있는 몽뇌산에게 무거운
눈빛을 한번 던지고는 조용히 문을 나섰다.
“아! 마침 치료할 시간인데 말씀이 끝나신 모양이군요?”
하후극은 막 문 앞에 도착한 묘인아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주루와 통해 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묘인아는 잠시 그늘져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주시하다가 이내 방으로 들어섰다.
밝은 얼굴을 하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까지 매단 채 묘인아는 숲속의 시냇물같이 상쾌한 음성을 흘려 냈다.
“치료받으실 준비는 되셨나요?”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을 반기는 듯 싱글거리는 몽뇌산을 보며 묘인아는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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